경상북도/봉화군

[스크랩] 봉화...만산고택

임병기(선과) 2008. 6. 7. 18:35
728x90

 

우리가 답사길에 만나는 사람이 살지 않는 고택에서 허허로운 감정과 처연함, 애닯음을 많이 접했을 것이다. 허물어진 담장, 뒤틀린 기왓장, 키만큼 자란 잡초더미에 쌓인 집에서는 우리의 마음마져 무너져내리곤 했었다. 

경북 봉화군 춘양면 만산고택은 지금까지의 답사한 퇴락한 종갓집이 아니라 어쩌면 오늘을 살아가는 고택의 방향을 제시하는 모델로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우리나라 대표적인 십승지에 자리한 고택에서 우리는 한옥의 미와 공간구성 등을  살펴볼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종손의 말씀을 들으며 전통문화체험을 원하는 일반인에게 문을 열어놓고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행랑채.솟을대문

 

고종 15년(1878년)  문신 만산(晩山) 강용(姜鎔)이 건립하였다. 만산 선생은  통정대부. 중추원 의관. 도산서원 원장을 지냈으나, 1905년 이후 망국의 한을 학문으로 달래며 자택 뒷산에 망미대를 쌓고 국운회복의 념을 읊었다고 한다. 만산고택은낙동강 상류 운곡천이 흐르고 있는 의양리 남쪽에 얕은 산을 등지고 동향하였다.

 

비교적 긴 11칸짜리 행랑채 한 가운데 솟을대문을 지나면 넓은 사랑마당이 펼쳐진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서실


사랑마당을 들어서면 좌측에 공부방인 서실이 자리하고 있다. 때마침 다른 손님을 모시고 마당으로 나오신 종손 강백기 님께서 서실에 걸린  ‘한묵청연(翰墨淸緣)은 학문에 정진하라는 의미이며 영친왕이 8세 때 쓴 글씨 탁본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칠유헌


우측에는 낮은 토담이 쌓인 다른 별당 칠유헌이 자리한다. 강 선생님은 칠유헌 현판과 주련은 전국 사찰 본산에 독특한 서체로 편액을 많이 남긴 해강 김규진의 글이라고 말씀하신다.

 

해강이 영친왕의 스승이며, 고암 이응로의 스승이 아니냐고 말씀드리자 서예하시는 분이냐고 물으시며 명함을 주셨다.  춘양목으로 지은 별당은 고택체험을 할 수 있으며 숙박비용은 종손에게 감히 여쭐수 없었으며 예약을 하면 종가집 아침도 먹을 수 있다고 한다.(054-672-3206 강백기님)

 

‘백석산방(白石山房)’과 ‘사물재(四勿齋)’라는 글귀도 있다. 산방이라 함은 선비의 여유로운 거처를 뜻함이요, ‘예(禮)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행하지도 말라’라는 사물은 논어에서 따온 말이라고 한다.


칠유헌은 가을도 좋겠지만 고운 꽃이 심겨진 담벼락을 타고 넘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여름날 대청에 누어 마냥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  집이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만산. 사랑채 당호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백토가 깔린 사랑마당을 안은 세벌대 기단, 5칸 사랑채에는 대원군 글씨로 알려진 당호 '만산' 편액과 ‘정와(靖窩)’, ‘존양재(存養齋))’라고 쓴 편액이 걸려있다. 본래 마당이 백토가 아니라 사랑채를 밝게하기 위해 뿌린듯 하다. 우리 한옥은 마당에서 반사된 빛이 방과 마루에 전달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사랑채는 2칸 대청· 2칸 사랑방· 1칸의 방(?)으로 이루어졌으며 안동지방에서 흔히 보이는 누마루와 불천위가 아니라도 사묘도 보이지 않는다. 2칸 사랑방 앞에는 툇마루를 내고 대청옆으로는 안채와 통하도록 하였다.

 

기단은 조선후기에는 의미가 퇴색되었지만 권위의 상징도 있지만 자연환경 즉 강우량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만산고택의 기단은 장대석을 놓았음에도 낮은 까닭은 봉화지방이 남부지방에 비해 강수량이 적음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안채 후원(?)과 마당에는 종부의 심성을 보여주듯 들꽃이 가득하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안채로 통하는 중문과 후원 쪽문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사랑채에서 안채로 통할 수 있는 마루와 방. 사랑채 좌우에는  중문으로 안채와 구분하였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만산고택의 안채는  작은 안마당을 둘러싼 북부 산간지방의 전형인 ㅁ자 구조다. 인기척이 없어 감히 과객이 남녀유별한 안채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어 살짝 사진만 찍고 물러나왔지만 , 요즘 흔치 않은 신주단지를 눈에 담지 못하고 나온 것이 후회 막급이다. 

우리문화유산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민속신앙의 하나인 신주 단지는 마루 구석에 모시며 가족의 제액초복, 기자,다산을 빌었던 신성한 제단이었다. 기회를 잡아 하룻밤 묵으면서 종갓집에 구전되어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신주단지에 얽힌 아름답고 경외스런 숨은 미담과 더불어......

2007.08.13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메모 :
728x90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