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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태안군

[스크랩] 태안...마애 삼존불

by 임병기(선과) 2008.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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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당진. 고구려를 경유 중국으로 향하는 길이 차단되어 백제민들의 중국 출입 루트다. 그곳에 위치한 기업체 출장 업무를 마치고 그냥 복귀하는 것은 옛님 쥔장 위치를 망각한 처사기에 옛기억을 더듬어 태안 마애삼존불을 참배하러 갔다.

 

백화산에서 바라본 서해

 

충남 태안 백화산 마애삼존불. 서해안의 지리적 위치 때문에 불교 공인전부터 민간에는 불교가 널리 전파되었다고 알려진 백제 땅의 길목에 자리잡고 있다. 백제 최초 마애 삼존불이라는 이름이 아니라도 유명한 학자,작가들에 의해 수많은 논문,여행기가 발표되어 내글이 사족이 되더라도 겁없이 한줄 남겨야겠다.

 

태을암

 

태을? 


 

태을암 중정에 고식의 주초가 여럿 보인다. 태일전의 부재일까? 태을암의 부재일까?

 

 

태을동천. 동천은 도교의 이상세계를 의미한다. 그렇담 태을은 뭘까?

 

자료에 의하면 국조 단군의 영정을 봉안했던 '태일전'이 삼존불 뒤쪽에 있었다고 한다. "태일전은 도교 신앙과 관련을 갖는 것인데, 조선 초기부터 45년마다 한 번씩 아홉 방위를 뜻하는 구궁(九宮)을 차례로 천궁(遷宮)하면서 명산을 가려 '태일(太一)'이라는 이름의 전각을 짓고 왕실의 안녕과 번영, 국태민안을 위해 임금이 향을 내려 제사를 지낸 곳이다.

경북 의성 빙산(氷山)에 자리잡았던 태일전은 매년 정월 대보름에 고을 수령이 제관이 되어 제를 지냈던 곳. 태일전은 1478년(성종 10년) 충청도 태안 백화산으로 옮겨지게 된다. 북두칠성 별자리와의 방위를 엄격하게 따져 명산을 가리고 가려 태일전을 지었으니, 태안의 백화산은 전국에서 몇 개 되지 않는 신령한 명산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이다."...야후 검색

 

모르긴해도 백화산이 명산이라는 의미보다는 잦은 외구의 출몰을 국조의 힘으로 물리치려는 상징은 아니었을까?


 

일소계? 마애불에 위해를 가한 유생들의 철없는 행위인지, 심오한 의미를 가졌는지 알 수 없지만 내 입가엔 비실비실 실소만 나오더라.


마애불 전각 후면

 

마애불에도 전각이 있었던 흔적이 없진 않지만 현재의 모습은 꼴 사납다. 자연스럽게 경사진 바위면이 비바람을 슬며시 피할 수도 있었지만 이중의 보호각을 세웠다. 하지만 지금처럼 앞뒤를 틀어막고 영어의 몸으로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태안 마애삼존불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많은 문화유산은 오랜세월을 민초들과 함께 동고동락한  죄로 무기징역을 구형받고 감금되어 있다. 잘난 우리들에 의해서...


 

갇혀진 몸도 서글픈데 왜색풍 석등은 누구를 위한 공양구일까? 설마 태안 반도를 통해 백제땅을 침입한 왜구의 영혼을 위무할려고? 하루빨리 전각은 해체, 재복원하고 석등은 백제계열로 바꾸어야야 한다.

 

또하나 삼존불은 강도가 약해 보인다. 그런대도 전각뒤로 보이는 길은 군부대 트럭 주 출입도로다. 시간이 문제이지 삼존불 붕괴는 명약관화 해보인다. 영원히 후손에게 물려줄 백제 최초 삼존불이며 유례가 없는 배치를 우리에게 남겨준 귀한 문화유산 보호가 시급하지 않을까?


 

주옥같은 감상문중의 하나를 가져왔다.(출처를 잊어버렸다)

 

"태안의 마애삼존불은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친근하면서도 소박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더구나 일반적인 삼존불형식은 중앙에 본존불을 모시고 좌우에 협시보살을 배치하는데, 태안 마애삼존불은 중앙에 보살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불상을 배치한 독특한 형식으로 주목되고 있다.

 

때문에 그동안 이 태안마애삼존불은 보물로 지정되어 보존하고 있었으나, 근래에 서산마애불보다 더 오랜 고식의 조각수법을 보이는 등 시대가 더 올라가는 것으로 판단되어 국보로 승격, 재지정하게 되었다."

 


 

"더욱이 좌우의 불상은 큼직하고 중앙의 보살은 상대적으로 작아 특이한 구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좌우의 불상은 기본적인 형태가 같은데, 다만 오른쪽 불상의 얼굴이 뚜렷하고 좀더 사실적으로 표현되었으며, 두손의 인상(印相)이 시무외여원인을 한 모습이 약간 다를 뿐입니다.

 

왼쪽 불상은 소발의 머리에 팽이모양의 육계가 표현되어 있습니다. 얼굴은 살이 붙어 양감이 있고 근육이 팽창되어 강건한 인상을 보여주고 있는데 가는 눈, 꽉 다문 입과 보조개, 큼직한 코, 팽창한 빰과 함께 만면에 미소가 번지고 있어 고졸하고 장중한 인상을 풍깁니다. 신체 역시 장대하여 얼굴과 잘 조화되고 있지만, 얼굴은 신체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작아 서로 대비를 이룹니다"


 

이러한 점은 중국의 북제 불상(北齊佛像) 내지 수불상(隋佛像)의 장대한 양식 계열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좀더 위풍당당하게 부처의 위엄을 명쾌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통견의 불의도 두껍고 힘있게 처리되었으며 앞자락이나 두 팔에 걸쳐 내린 옷자락도 묵직하게 표현되어 부처의 위엄을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두 손은 가슴부근에 평행되게 모아 오른손은 손바닥을 보이면서 손가락을 굽히고 왼손은 보주를 살짝 잡고 있는데, 능숙한 기량에는 미치지 못하는 고졸성을 보여줍니다. 띠매듭은 중국과는 다른 우리나라 불상의 형식적 특징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중앙의 보살은 기본적으로 좌우 두 불상의 특징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지만 좀 더 여성적이며 부드러운 느낌이 드는데, 이 점은 서산마애삼존불상(瑞山磨崖三尊佛像)의 오른쪽 협시보살과 비교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능숙한 기량과 세련된 아름다움까지는 진행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대좌는 단판연꽃무늬로 날카롭고 분명한 연꽃을 표현하고 있어 백제 연꽃무늬의 전형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태안 백화산 마애삼존불--서산 마애 삼존불--예산 화전리 사면불을 답사하시면 어렴풋하게 그림이 그려질 겁니다. 백제의 고민, 삼국시대의 시대상황, 석조미술의 양식, 정설이 아니라도 님들의 그림을 백지위에 그려보세요.

 

2007.06.12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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