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창녕군

[스크랩] 창녕...영산 만년교. 영산 석빙고

임병기(선과) 2008. 6. 6.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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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다음날. 문을 연 음식점이 잘 있겠는가? 별수 없이 만년교 근처에서 자장면으로 허기를 달랬다.

경주에 버금가는 불교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최근까지 주목받지 못한 고을이 창녕이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문화유산 보고인 창녕 영산에는 3.1절을 전후하여 3.1 문화제가 거행된다. 진주 개천제와 더불어 순수 민간단체가 기획하고 집행하는 축제로서 시연되는  행사를 군청홈에서 가져왔다.

 

3.1 민속문화제

 

취지 :
  - 도내 최초 3·1독립운동 발상지인 영산지방의 항일 애국선열들의 호국충절과 자유수호의 높은 민족혼을
    후손에게 널리 고취시키고,
  - 우리고장의 대표적인 전통 민속놀이인 중요 무형문화재 제25호 영산쇠머리대기와 제26호 영산 줄다리기
    등의 시연을 통하여 우리문화의 우수성을 대내외에 알리는 한편, 전통문화계승 및 민족 문화창달에 기여
    하며 군민화합 대축제로 승화시키기 위하여 1961년부터 매년 개최하고 있다.

 

기간 :  매년2.28 (또는 2.29)일 부터 3.3까지
장소 : 영산면 일원 ( 주행사장 : 무형문화재 놀이마당)

행사내용 :
    ㅇ 민속행사 : 쇠머리대기 , 줄다리기등 14종
    ㅇ 문화예술행사 : 시조경창대회등 9종
    ㅇ 체육행사 : 짚공차기등 3종

 

중요 무형문화재 25호로 지정 받기전에 「쇠머리대기」「牛戰(우전)」「목우전(木牛戰)」「나무쇠 싸움」등으로 불렸던 쇠머리대기는, 많은 군중이 참여할 수 있는 대중 민속놀이로 참여의식이 매우 강하게 작용하는 무형 문화재이다.

①유래-언제, 무엇 때문에 쇠머리대기가 생겼는지 확실한 것은 알 수가 없다. 다만 전해오는 말로서 몇가지 유래가 있다. 그 하나는 이곳 영산을 사이에 두고 영축산과 함박산의 산세가 마치 두 마리의 큰 소가 서로 마주 겨루는 형상이라 해서 산살을 풀어 주기 위해서 이 놀이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또 옛부터 소싸움을 즐기던 이곳 조상이 나무로 소의 형상을 만들어 싸움을 붙였다는 추측도 내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유래를 뒷받침해 주는 아무런 문헌도 없다. 5천년 역사상 항시 외부로부터 침략만 당해 오던 조상의 민속놀이 중에 전투놀이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는데, 이곳 영산의 쇠머리대기만이 독특한 전투놀이로 오랜 전통을 이어 받아 내려 오고 있다.

②형태-나무소는 생나무와 세 가닥의 짚줄로서 만들어지는데 머리부분과 몸부분으로 만들어진다. 근래에 만들어지는 나무소의 크기는 대략 다음과 같다. 머리높이 460㎝,머리가로 480㎝, 몸길이 500㎝ 그러나 옛 조상은 위의 크기의 두 배가 더 되는 거대한 나무소를 만들어 승부를 겨루었다고 이곳 향로당 노인들은 증언한다.

③쇠머리 대기에 따르는 것들
가. 진잡이 놀이 - 찬란한 복장을 한 장군들이 깃발과 농악대를 앞세우고 적진을 향해 돌진하여 공방전을 벌이는 것으로 실전을 방불케한다.
나. 서낭대 놀이 - 서낭은 이 고장 각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셔진 것인데, 동·서 양군의 장정들이 차출되어 이 서낭에 신을 올린 뒤 서낭대 휘두르기를 시작, 마주 부딪혀서 부러진 쪽이 패하게 되는 놀이이다.
다. 결전과 승부 - 조금이라도 위에 덮치거나 밀어붙이는 쪽이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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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쌈(줄싸움), 줄다리기, 색전이라고도 하는데, 풍요를 비는 민속신앙적 놀이로 유래가 분명치 않으나 오래 전부터 전승되어 왔다. 다만, 지금으로서는 地氣(지기)를 눌러 일년을 안과 태평하려 했거나, 혹은 줄을 당겨서 산을 달래고 산의 거셈을 눌러 주려했을 것 등 여러가지 추측만 할 수 있을 따름이다.


①노는시기 - 3.1절. 예전에는 음력 정월 보름날에 당겼으나, 3.1운동의 선봉지가 영산이니 영산에서 이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②준비 - 영산을 중심으로(중부내륙고속국도) 동ㆍ서부로 나누고, 동부에서 숫줄, 서부에서 암줄을 각각 만들어 줄다리기를 한다. 동서 양군에서는 총사령부가 설치, 구성되면 수일 앞서 대장, 중장, 소장을 선출하고 각종 기치를 만든다. 하루 동안의 놀이지만 대장의 선임이란 여간 신중을 기하는 것이 아니다. 재력도 있어야 하지만, 인원동원이 용이한 마을 사람을 장군감으로 하며 허우대도 좋아야 한다.


줄싸움은 줄에서 시작되므로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10여일에 걸쳐서 약100~150m의 거대한 줄을 만든다. 줄을 만드는 일은 먼저 짚 모으기에서 시작되는데, 서로가 꼭 이겨야 한다는 애살과 신명으로 쉽게 이루어진다.


짚을 한 두동씩 기꺼이 내놓으며 가정일이나 들일도 내버려두고 밤을 새워 줄을 만드는 것이다.
줄을 만드는 과정은 거창하다. 짚·새끼 모으기-줄(가는것)드리기-줄펴기-줄말기-꼽치기-목줄만들기-벗줄매기-끝줄만들기(달기)등의 순서인데, 소금과 물을 뿌리는 등 정성과 노고를 아끼지 않는다.

1969년 지정 당시의 줄을 보면 다음과 같다.

*서부줄(암줄)
몸줄 : 길이 약40m, 둘레 약146m
꼬리줄 : 길이 약6m

*동부줄(숫줄)
몸줄 : 길이 약40m, 둘레 약165m
벗줄 : 길이 약6m(일정한 것이 아님)
둘레 약27㎝
숫목줄 : 길이 약5m
꼬리줄 : 길이 20~30m
비녀(목나무라고도 하며 소나무를 쓴다.)
: 길이 약2.6m, 지름 약25㎝


③연희절차(演戱節次)- 승부를 하기 전에 <진잡이 놀이><서낭대 싸움>등을 하고, 이어서 본줄다리기를 한다.
가. 진잡이 놀이-줄을 당기기 전에 양편이 서로 진을 치고 상대편의 진지를 침입.돌파 또는 방어하는 모든 놀이를 일컫는다. 낮 동안 진행되는데 대장,중장,소장이 말을 달려 적군의 줄을 뛰어 넘으면 한 점을 얻게 된다.


나. 서낭 싸움-각 부락의 수호신인 서낭에 신을 올린 뒤 상대편 서낭과 싸우는 것이다. 서낭대가 먼저 넘어지거나 부러지는 쪽이 진다.


다. 이싸움 놀이-양편이 줄을 높이 메고, 그 위에 대장을 태워 서로 줄이부닥칠 때 상대방의 대장을 땅에 떨어뜨리면 이기는 것으로, 이 놀이에서 이기면 본 싸움에서 반이나 이긴 셈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라.본줄다리기-승부는 3번 당기는 것이 아니라 단번에 결정한다.


 

세세만년 존속되기를 염원했던 민초들에의해서 만년교로 불리웠을 만년교는 남천위에 가설되어 남천교, 또는 원님이 다리를 고쳐 주었다고 하여 院(원)다리라고도 불리운다.  다리의 경계에 세워진 남천석교비(南天石橋碑)에 의하면 정조 4년 1780년 석수 백진기(白進己)가 축조 하였고, 고종 29년 1892년 현감 신관조(申觀朝)가 석수 김내경(金乃敬)을 시켜서 중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연암반 위에 대석(臺石)을 설치하고 편단석(扁單石)을 올려 반원(半圓)의 홍예(虹蜺)를 구축하였으며 외형은 무지개 모양이다. 홍예(虹蜺) 재료는 화강암(花崗岩) 각재(角材)이며, 전후 양측의 다리 벽은 자연잡석을 쌓아 메꾸었으나 홍예 머리돌 위에는 비교적 규격이 큰 각이진 돌을 배열하였다.

 

창녕읍내와 영산 두 곳에 석빙고가 있다. 이로미루어 옛 고을의 위세와 위상을 가늠할 수 있다. 고마웁게도 내부를 볼 수 있도록 창살이 설치되어  발가벗은 청도 석빙고의 스트럭처를 감상하는 즐거움 못지않게 은근하게 드러난 속살을 바라보는 희열도 있다. 현재와 차이는 있겠지만 날개벽을 한쪽에만 설치한 것은 현풍 석빙고와 동일하다. 산에서 내려오는 풍향을 고려한 축조로 보인다.


 

"경주와 안동의 석빙고에 비해 약간 규모가 작고, 조선 후기에 현간 윤이일이채석하여 세운 석빙고이다. 빙고는 문쪽이 높고 그 반대쪽이 낮은 봉분형의 외모를 가졌다. 봉토 주변에는 자연석을 쌓아 호석(護石)을 둘렀고, 봉토 정상에는 두 곳의 배기공이 설치된 것이다. 배기공에는 갸름한 돌을 끼워 외기(外氣)와의 조절을 기도했다.


문은 지표에서 한단 낮은 곳으로 내려가게 된 석계(石階) 끝에 있다. 옹벽은 큼직한 돌 세벌을 쌓아 주변을 정리했고, 옹벽 위로는 큼직한 긴 돌 세 개를 나란히 놓아 천정을 구성하였다. 거대한 돌을 거칠게 다듬어 벽을 쌓고, 세틀의 홍예를 바깥쪽으로 하여 판석을 덮어 공간 전체를 차단하였고, 앞뒤 벽은 그에 따라 축조되었다."...창녕군청

2007.02.20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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