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옥천군

[스크랩] 옥천...옥천 향교, 옥주 사마소

임병기(선과) 2008. 6. 6.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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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구읍.  구읍에는 지용 생가, 육영수 생가, 향교, 옥주 사마소, 비림이 현존하고 있다. 옥천에 철도역사가 설치되기 전에는 구읍은 옥천 생활경제의 중심지였다. 일찍부터 선진 문물이 들어오기 시작한 구읍은  철도경유지였으나 이곳사람들의 절대적인 반대로 옥천역은 현재의 위치에 설치되고 상권 또한 옥천역 인근으로 이거하게 된다.

그 덕분(?)으로 옥천 답사의 많은 동선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짜임새 있는 답사를 즐길 수 있다. 이러한 사례는 경북 성주,경남 함안 등에도 있다.

 

비림


명륜당

 

큰길에서 골목으로 꺽어 드는 순간 ‘명륜당’이라고 적힌 현판이 걸려 있는 웅장한 목조 건축물이 눈에 들어오는데 골목 어귀에 홍살문과 하마비가 세워져 있다. 홍살문을 들어서면 일직선상으로 다가오는 2층 구조의 명륜당. 향교의 정문격인 명륜당은 외삼문과 강당의 기능을 겸한 건물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명륜당의 하부는 중앙으로 루의 밑으로 사람들이 출입하게 되어 있으며, 상부는 좌우 양측에 정면 1칸, 측면 2칸의 온돌방을 두어 교관이 사용토록 하고 중앙 3칸은 대청을 두어 교관이 유생을 교육시키는 강학공간을 마련하고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2층 양쪽 교관의 방구들을 데우는 온돌장치이다. 이 온돌장치는 열이 아궁이로 빠져나오지 않게 하고 그 열이 가능한 한, 구들 공간에 오래 머물게 하기 위해 굴뚝은 작은 구멍을 내어 처리하였으며 아궁이 주변은 허공인 것이 인상적이다.

 

마치 허공에 떠 있는 듯한 명륜당의 온돌장치는 양쪽 방의 가로와 세로 크기만큼 황토와 수숫대를 이용해 누 아래에 붙여놓았는데 아궁이의 불꽃이 밖으로 나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아궁이 면은 낮게 하고 연기가 빠져나가는 굴뚝 부분은 높게 설치하여 뒤로 갈수록 오르는 경사를 이루고 있다. 건물 전체가 목조이기 때문에 난방장치를 설치하면서 보온과 화재 예방이라는 숙제를 잘 해결한 이 기능성 장치에서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대성전

 

또 하나 특이한 것은 향교의 내삼문이다. 삼문이 합쳐진 문의 형식이 아니고 세 문 모두 일정 거리를 유지하여 별개의 문으로 내었다. 대개의 경우 하나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향교의 삼문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내삼문의 의미와 기능은 같다. 삼문은 가운데 문을 '정문'이라하고 양쪽 문을 협문이라 하고, 보통 때는 양쪽협문만 열어놓고 정문은 닫아둔다. 제사를 지낼 때는 세 문을 다 열어놓지만 정문은 영혼이 들어오시는 문이라 하여 사람들은 드나들 수 없고 협문만 사용하는 것이 법도로 되어 있다.


옥천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으로 조선 태조 7년(1398)에 처음 지은 후 임진왜란(1592)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다시 지었으며, 1961년에 황폐한 향교를 복원하였고, 1966년과 1974년에 보수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명륜당 앞의 공간은 비우고 그 양옆에 교생들이 공부하며 숙식을 하는 동재와 서재를 마주보게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옥천향교의 동재(현재 없어지고 그 자리에는 고직사가 위치하고 있다)와 서재는 명륜당 뒤 공간에 위치한다. 경사지에 향교를 짓다 보니 지형에 의한 배치인 것 같다. 명륜당 뒷마당에 지금은 서재인 홍도당만이 남아 있으며 이 건물은 명륜당의 후면 서쪽에 동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옥주 사마소

 

이 건물은 조선시대 지방고을의 생원과 진사들이 모여 유학을 가르치고 정치를 논하던 곳으로 옥천지방에 속한 사마소이다. 이 건물은 조선 효종 5년(1654)에 세워진 것으로, 원래 어려운 백성을 위하여 곡식을 저장해 두기 위해 국가가 설치한 창고 건물이었던 것을 고쳐서 사마소로 사용하였다.

 

사마소란 조선 중기 지방 생원·진사들의 협의 기구로 대개 사마시에 합격한 자가 50인 이상 되는 곳에 설치하였으며 이들의 친목도모와 정치 토론 및 교육 활동 등으로 그 고장 발전에 기여한 옥천지역의 대표적인 유림 집합소이다.

 

옥주 사마소

 

이 사마소에 전해지는 송시열(宋時烈)의 중수기(重修記)를 통하여 현종(顯宗) 15년(1674) 11월에 중수한 사실을 알 수 있고 그 이후에도 고종(高宗) 30년(1893) 2월에 중수한 사실을 송근수(宋近洙)의 중수기를 통하여 알 수 있다.

 

사마소 건물의 기단은 대리석을 치석하여 가지런히 쌓아 올렸는데 석재 중에는 사찰에 세워지는 석탑(石塔)의 부재들이 끼어 있어 인근의 폐사지에서 옮겨와 이를 축조한 듯하다. 건물의 앞쪽 처마 밑에는 「沃州司馬所」라고 쓰인 편액이 걸려 있으며, 지금의 옥주사마소는 후손들과 유림에 의하여 보존되고 있으며 매년 음력 3월 15일과 9월 15일에 회합을 갖는 사마계가 조직 운영되고 있다.

내용 출처...옥천군청 홈

2007.02.10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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