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합천군

[스크랩] 합천...월광사지

임병기(선과) 2008. 6. 6.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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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2003.11.20

사진...2006.12.14

 

휴가
그것도 떠나기 좋은 겨울 초입의 계절이건만 가장이라는 허울 좋은 지위(?)는 보이지 않는 족쇄가 되어 압박해왔지만 하루라도 떠나지 않음은 맘의 상처를 더욱 깊게 하기에 가까운 합천 일대를 돌아보기 위해 좋아하는 답사 도반과 길을 나섰다.

 

아득한 풍경소리 어느 시절 무너진
태자가 놀던 쌍탑 위에 물이 들어
모듭내(?) 맑은 물줄기 새아침을 열었네.


시비에 새겨진 시를 읊조리며 나란히 어깨동무하고 있는 월광사지 쌍탑과 어우러진 소나무에 눈길 주며 잊혀진, 아니 어쩌면 신비의 인물 월광태자를 그려본다.
우리 역사에 신비의 인물이 한 둘이 아니고 애달픈 잊혀진 역사가 백제와, 가야사 아니던가? 월광태자 역시 대가야의 마지막 왕자라고 알려져 있으며, 전설로 그의 자취가 전해내려오고 있으며 그중 성주군의 자료에서 전설을 발췌해 옮겨보면...

 

 

◆  태자(太子)바위

ㅁ성주군 벽진면(碧珍面)에서 금수면(金水面)으로 가는 길에 매수동(梅水洞)의 야동마을이 있고, 야동마을에서 마주보는 동쪽 산 정상에 태자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3개의 바위가 3층으로 되어 있고 그 지름은 4m 정도가 되며, 가뭄 때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온다는 전설이 있다.

이 바위가 태자바위로 불려지게 된 연유는 여러 가지 얘기가 있다. 
<1> 옛날 고령(高靈)을 중심으로 한 대가야(大伽倻)가 신라(新羅) 진흥왕(眞興王) 12년에 신라에게 함락되어, 대가야의 월광태자(月光太子)가 인질로 잡혀와 이곳 태자암(太子巖)에서 고국을 그리워하다가 죽었다 하여 태자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2> 신라 법흥왕(法興王) 8년에 대가야의 이뇌왕(異腦王)이 신라와 수호하기 위해 신라에 청혼하고 신라의 이식비조천(異殖比助天)의 누이를 아내로 삼아 월광태자(月光太子)를 낳았으며, 진흥왕 12년에 신라의 공격을 받아 멸망하니 월광태자는 어머니와 함께 지금의 고령 낫질[현(現) 고령 내곡(高靈 乃谷)]에서 피난하던 중 때마침 진흥왕이 전투 상황을 살피기 위하여 이곳까지 왔다가 피난 중인 태자를 축출하니, 태자는 쫓겨 합천군계(陜川郡界) 나대현(羅帶峴) 고개에서 영면(永眠)하였다.그 후 태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현재 태자암이 있는 곳에 월광사(月光寺)를 세웠는데 퇴폐하고 현재 남아 있는 3층 석탑이 태자암이라 한다.

<3> 벽진가야(碧珍伽倻)의 태자가 이곳에서 연회를 베풀고 즐기던 곳이라 하여 태자암이라 한다
-성주군 문화관광 / 성주의 뿌리 / 전설, 설화
 
두기의 석탑은 신라 일금당쌍탑에 따른 형식이 아니라 시대의 차이를 두고 조성되었으며 이중기단
옥개석의 5개의 층급받침 낙수면 옥개석 처마의 반전 등 신라계열의 정형이나 상기단의 탱주가
서탑은 2개, 동탑은 1개라는 차이 외에는 큰 차이를 발견하지 못하겠다.


두 탑 사이에 무심하게 누워있는 보살핀 후손이 없는 듯한 무덤을 보면서 후대 발복의 염원으로 봉분을 올렸을 님들을 떠올리며 고려태조 왕건을 지지했던 해인사와 후백제를 지지한 월광사와의 재미난 추리를 한 최완수님의 글을  들쳐보자.


'가야산해인사고적'에 의하면 후백제 왕자 월광이 이 절의 주산인 미숭산을 근거로 병력을 길러 왕건 태조에 대적하므로 왕건 태조는 해인사 주지 희랑 승통의 힘을 빌려 이를 제압하였다고 하니 혹시 이 월광사는 후백제 왕자 월광이 세운 것인지도 모르겠는데, '동국여지승람' 권30 합천 월광사조에는 대가야  태자 월광이 세운 절이라 하고 있어 잠깐 혼란에 빠지게 한다.

그러나 대가야 시절에 세운 절이 반 신라적인 전통을 가지고 있다가 후백제와 연결되고, 이 월광사가 중심이 되어 신라 왕실의 원찰인 해인사 세력을 구축하려 했다고 본다면, 두 가지 기록을 반드시 내용이 상충되는 무용지물로 방기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야로 지역은 바로 거창과 전라도 장수로 이어져서 지리상으로도 후백제 지역과 직결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해인사는 왕건 태조의 세력 기반이었던 김천 직지사와 지리적으로 직결되고 보면 이곳에서 양대 세력의 대치는 불가피하였을 것이다.' "명찰순례" 1 (대원사 간) '해인사' 


겨울비 내리는 끝이라서 제법 쌀쌀한 날씨에 떨어져서 말없이 탑 주위를 둘러보던 상감과 담배 한대 정겹게(?) 나눠 물고 여우비를 맞으며 월광사지를 벗어나면서 문득 幽玄이 생각이 난다.
우리집 거실에 걸려 있는 유화가 바로 월광사지 쌍탑인데 유현 결혼 선물로 주겠다고 약조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걸려있으니 아마 그 유화는 우리집에 있어야 한다는 하늘의 뜻인가 보다! 라는 탁월하고 매우 현명한 판단을 하면서 홍익대 김태식 교수의 해석을 떠올리며 청량사로 향한다.

월광태자는 대가야 이뇌왕(異腦王)과 신라 법흥왕(法興王) 가계의 여자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대가야가 나중에 백제와 가까워지자 신라로 망명한다. 
신라는 대가야를 공격하고 그를 대가야의 마지막 왕으로 내세운다. 바로 도설지왕(道設智王)이다.
월이나 도솔이 모두 달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월광태자를 도설지와 동일인으로 추정한다.

 

=홍익대 김태식 교수 '미완의 문명 7백년 가야사'=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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