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2002 봄날
사진...2006.12.14
구불구불 고갯길을 한없이 돌아도 또 산자락이다. 영봉은 저 멀리 부드러운 미소를 보내건만 님은 잊혀진 지난 날의 모습을 찾는 이에게 숨기고픈 가 보다. 아픈 과거를 혼자만 간직하고, 가슴앓이 하며 살아가고 싶다고...
풍수에서 전란을 피할 수 있다는 울 나라의 十勝地도 아니건만 영암사 절터는 객에게 사바의 풍진을 훌훌 털고 오라는 듯 멀리 저수지를 내려다 보며 황매산을 뒤로하여 있는 듯 없는 듯 솔바람 벗 삼아 봄날을 되새김질 하고 앉아 있고 느티나무인지, 이팝나무인지 알 수 없는 절터 초입의 노거수위엔 두개의 빈 까치 둥지가 만행 나선 스님을 기다리는 듯 쓸쓸히 졸고 있다.
제멋대로 흩어진 석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담배를 꺼내 물고 금강문이 있었음직한 자리로 걸어가 가람터를 쪼그리고 앉아서 올려보니 금당터가 폐사지가 아니라 큰 석조 불상이 연화대좌 위에 계신 듯 하며 허허 참 황매산 봉우리가 뚜렷히 나발의 육계로 보이더니, 다시 올려 보니 육계는 간데 없고 봉우리가 화려한 보관으로 다가오며 금당터에는 보살님이 엷은 미소를 머금고 계신 듯 하다.
부석사 3층 쌍탑 아래서 안양루 측면 석축처럼 올려보는 듯한 느낌으로 석축은 놓여있고 축대의 기울임을 방지하기 위한 돌못(?)은 빙산처럼 깊은 속을 감추고 정방형의 머리만 살짝 내밀고 있다. 그렇다면 축대 가운데는 누대가 있었지 않았을까?
금당터를 향한 중생들에게 뻣뻣한 고개를 숙이고 알현하라며... 제기럴!!! 축대가 가로막아 돌아서서 절터를 들어서니 사자석등이 눈에 들어왔지만 삼층석탑을 먼저 살피는 것이 순서이리라 여기며 다가섰다.
신라 전형의 석탑에서 략화(상하기단/1탱주, 4개의 옥개석 받침)된 3층탑은 탑신 각층의 비례가 균형을 잃었지만 완만한 낙수면과 살짝 치켜 올린 처마의 반전이 누런 이빨을 드러낸 표정 없는 촌부의 모습처럼 수더분하게 느껴진다.
버릴 것을 허물지 못하고 온갖 오욕과 번뇌에 쌓여 화택에서 헤매고 있는 중생들을 깨우치기라도 하듯이...
치켜올린 짧은 꼬리가 앙증스러워 , 도톰한 엉덩이가 마치 어린아이를 두 발목을 잡고 거꾸로 하여 희롱하듯이,사자의 발목을 잡고 엉덩이를 내리치고 싶어진다.(그래서 인지 발목부분의 훼손이 심하다.일제가 반출시도 하였으나 주민들의 결사저지 과정에서 생긴 상흔 임).
하지만, 고주와 평주의 간격으로 봐서는 사방의 경배 공간이 너무 좁게 여겨진다. 그러면, 금당은 사면에 불상을 모신 우요삼잡의 기능이 우선된 전각일까? 자꾸만 법주사, 법주사, 법주사가....
남성적, 여성적 귀부의 구분보다는 금관가야의 왕실 문양인 쌍어문이 새겨진 동쪽 귀부 비신 괴임에 시선을 모어니 가야, 백제, 신라, 고려가 오르락 내리락, 또한 회랑터는 왕실과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있다는 의미 일텐데 휘청휘청...
난 지금 법주사 쌍사자 석등 앞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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