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합천군

[스크랩] 합천 / 청량사

임병기(선과) 2008. 6. 6.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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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사내 둘이서 무슨 낙이 있겠나마는 희희낙락하며 청량사 입구에 도착해서
매표소 사람도 안 보이는데 그냥 통과한들 어떠랴마는 머뭇거리다 순진하게(?) 보시
무량보시를 하고 발품을 판다.
진즉에 운동이나 할 것을 후회해본들 무엇하랴.
가쁜 숨을 내시며 길을 올라서니 천불산 청량사 표지석이 반갑게 반기지만 이놈의
중생은 매화산으로 알고 있지 않았던가?
하긴 영남의 소금강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기암괴석이 가득하니 千佛도 틀린 말은 아닌 듯하나 
淸凉寺라 표기하지 않고 凉의 변이 얼음 빙(氷)이 아니라 물 수(水)라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특이하게 창방에 십우도가 그려진 대웅전을 들어서니 정면 어칸 용두가 문을 통과
하여 바로 안쪽에 꼬리를 흔들고 있어 통도사 극락전의 용마냥 어찌 이상타.
벌써 산사에는 겨울채비를 마쳤는지 대웅전 문 안쪽에는 비닐로 마감을 하였으며
항마촉지의 석가여래만 모신 까닭인지 내출목 위에는 문수, 보현 협시불의 상징인 코끼리, 
사자상이 가득하다.

청량사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제 265호)

 
사람의 기억이 때론 멍청할 정도로 막힐 때가 있다지만 나는 조금 전 대웅전 문을
열기 전 까지도 석조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다고 생각한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 가야산 일원 해인사의 비로자나불, 성주 금봉리의 석조 비로자나, 김천 수도암의 비로자나불 
때문이리라...
한눈에 보아도 육감적인 젖가슴을 가진 석조석가여래는 촘촘한 나발위에 희미한 육계 주형거신광배, 
우견편단의 신라하대의 특징이 보이고, 살이 찐 이중턱 위에 기자신앙 상흔인 까만 코는 눈에 익지만 
불대좌는 만만찮지 않다.
즉, 사각형의 지대석 방형의 대좌 하대석에는 복련과 귀꽃,중대의 두건을 쓴 듯한 보살상이 또렷하다.

청량사 삼층석탑(보물 제266호)

 
대웅전 뜨락으로 나오니 답사 도반인 상감이 주렁주렁 감이 달려있는 감나무를 가리켜 눈을 돌렸더니 
감나무를 통째로 차지하고 까치가 여유롭게 만찬을 즐기고 있으니 민가에서와 달리 절집에서는 감나무 
전체를 까치밥이라 해야하지 않을까?
신라 석탑의 시원인 감은사, 고선사 탑이 11-13m 였으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7-9m 3-5m로 줄어든 것을 
감안한다면(물론 고려 탑의 크기는 별도로 두고) 청량사 탑도 최소 9c 이후의 탑으로 보아도 무방할 높이다.
2중기단, 5개의 옥개석 받침, 옥개석 추녀의 반전,완만한 낙수면 등 신라 탑의 양식에 충실하지만 
청량사 석탑에서는 상,하기단 갑석 추녀 부분의 반전이 여타의 탑과는 차이가 있어 한참 눈길을 잡아놓는다.

청량사 석등(보물 제253호)

 석탑 바로 앞에는 장식이 화려한 고복형(장고를 세워 놓은 형/ 안내문에는 고동형이라 
표기되어있으나 고동형이 뭔지 난 알지 못한다) 석등이 국화문(?)이 고운 배례석과 짝을 이루며 맵시를 
뽐내고 있다.
2중의 기단에는 앙련, 복련, 귀꽃도 멋있으며 8각 하대석 안상의 사자상, 석등 상대석 모서리의 풍탁흔적, 
4개의 화창을 둔 화사석 면마다 사천왕이 얕게 돋을새김 되어있고 화창에도 문을 단 홈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신라의 석등 형태가 팔각원당형인데 왜 실상사 석등처럼 백제계 석등 양식인 고복형인지 
머릿속에 택도 없는 소설을 그려보면서 멀리를 조망하니 마치 부석사 조사당에서 안양루 위로 보이는 
소백 연봉의 느낌을 지울 수 없더라.
2003.11.20
사진은 나문답 답사 자료집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메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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