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구미시

[스크랩] 선산 / 죽장동 오층탑

임병기(선과) 2008. 6. 6. 13:48
300x250
300x250

죽장리 오층탑은 선산읍에서 상주로 난 903번 지방도를 따라가다  죽장리 산아래  먼발치로 보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오층 모전석탑이다.  보물 130호인 탑은  법장사에 위치하며  남매가 서로 재주를 자랑하다 누이가 먼저 이 석탑을 세워 이겼다는 '남매 힘 겨루기' 전설이 전해온다.


큼지막한 돌을 다듬고 짜 맞추어 쌓아 올린 모전석탑으로 일반적으로 모전석탑에서는 단층의 기단을 두는데 이 탑은 상하 2중의 기단, 1층 몸돌 남쪽면에는 불상을 모시는 감실(龕室)이 석탑 크기에 비례해 조성되었다. 하층기단에는 모서리 기둥, 버팀기둥이 없으나 상기단에는 새긴 것이 아니라 판석과 결합하여 기단부를 이루었다.

 

죽장동 오층탑


전체적인 외형은 웅장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을 주지만, 경직되었거나 거드름을 부리는 모습은 아니다.

더우기 오층탑은 안동 신세동 탑처럼 인위적 환경 때문에 제모습을 잃은 것이 아니라, 마을 앞으로 들이 펼쳐지고 멀리 금오산 정상이 보인다.

 

혜곡 최순우 선생의  명저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의  '점지의 묘'라는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 옛님의 위치선정의 탁월함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다. 꼭 필요한 자리에, 자연환경과 어울렁더울렁 거부감 없이 어울리고, 시야가 확보되어 부처님 뵙기 전에 마음을 먼저 열 수 있는 그 자리!!!






흩어진 석조물


비구니 스님이 주석하는 사찰답게 정갈하기 이를데 없는 법륜사 오층탑 옆에 옛영화를 품고 가지런히 자리한 많은 석조 부재로 가람 규모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서라벌에서 떨어진 이곳에 거대한 불탑의 조성은 넓은 해평뜰을 중심으로 집권한 지방호족의 발원이거나 왕실의 지원으로 가능했을 것이다.

 

선산읍성 남문 락남문

 

선산읍 길목에는  선산 읍성 남문과 락남루가 복원 되었으며, 선산지역 역대 부사들의 송덕비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선산의 관문 읍성은 고려시대에는 토성이었으나 조선 시대에 석성으로 고쳐 축성하였다고 한다.  

선산사람들이 비석거리로 부르는 이 곳에 비봉산 중턱에 있었던 죽림사 절터에서 1979년 옮겨온 죽림사지 3층탑이 복원되어 그늘에서 여흥을 즐기는 어르신들의 친구가 되어 있다. 하지만 복원된 삼층탑의 삼층 지붕돌이 2,3층에 비해 너무 작아 우스꽝스런 모습이다. 

 

선산 객사

 

완전리 읍사무소에에 위치한 선산객사는 18세기에 선산초등학교 자리에 건립된 후 1914년 현 위치로 옮겨져 선산면사무소로 사용되다가 1987년 내부를 개조하여 향토사료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경북 무형문화재 221호인 향토사료관은 농경유물, 선조들의 생필품, 교지 등이 전시되어 있지만 늘 닫혀있어 아쉽다.

객사에는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모시고 지방 수령이 부임 할 때와 초하루, 보름날에 대궐을 향해 예를 행하며, 왕명으로 파견된 관원들의 숙소로 사용하던 곳이다.

정면 5칸, 측면 4칸 팔작 지붕으로 미루어 객사 정랑 좌우 익랑의 한 채로 추측되며 정면에 출입문을 내었다.  길게 다듬은 장대석 축대위에 덤벙  주춧돌을 놓고 둥근 기둥을 세웠다. 용마루에는 사자상 4개, 출입문 위의 귀면,  합각마루, 추녀마루 끝에는 귀면이 있지만, 벽사의 의미 외에 달리 상징성을 알 수 없다.

 

궁기리 석불


답사를 하다보면 지역의 산골에 내동댕이쳐져 있다가 초동에게 발견되어 박물관 유리 안, 또는 호흡조차 곤란한 전각 속에 갇힌 불상을 볼 수 있다.  반면 비록 제자리는 아닐지라도 고향 하늘아래 그것도 꿈이 가득한 학생들이 노니는 교정에 있는 불상을 자주 접하게 되는데 궁기리 석불 역시 중학교 교정에 있다.


그것도 신라불교 초전의 도(道)를 연(開) 도개(道開)중학교 교정에......

우측의 석불은 불신, 주형 거신광배, 대좌가 하나의 돌에 새겨졌다. 작지만 단아한 모습으로 광배에는 넝쿨문, 연꽃, 불꽃문, 화불이 조각되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석불의 왼손으로는 연꽃 가지 밑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가운데를 잡은 연꽃이 만개한  광배에 핀 연꽃 지물이었다. 뒷면에도 연꽃 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비로자나불이 선각되어 있다.

비록 얼굴 부분이 훼손이 심했지만 발길 쉽게 떨어지지 않는 보살로 아마 협시보살로 조성되었던 듯하다.  좌측의 석불도 동일하게 연꽃을 들고 있었지만 꽃의 방향이 같아서 고개가 갸웃갸웃, 본존불의 좌우 협시불이라면 연꽃의 방향은 서로 반대이어야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아직도 땅속에 두기의 석불이 더 묻혀 계시다는 말인가? 


궁기리 석불


임병기(답사카페 cafe.daum.net/moonhawje 운영)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