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구미시

[스크랩] 선산 / 낙산동 삼층탑

임병기(선과) 2008. 6. 6.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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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자신의 의사에 반한 일도 해야하나?

팔자에 없는 칼럼 연재로 사진과 친해져야하다니..

 

낙산동 삼층탑

 

어느님 말씀이 답사의 바이블이 된 현실! 

"부석사에서는 사무치는 그리움"을 되내어야 하고

"아는 만큼 보인다"는 모른 놈을 기죽이고

"신라인은 돌을 떡 주무르 듯이.."는 신라석공을 떡집 아주머니로 만들어 버렸다.

 

문화유산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감각적, 표피적 언급이 없더라도 무미건조한 글을 먹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한 분야 학자들의 견해에 빠지지말고...

 

신라 석탑 앞에서

엉뚱하지만 너무나 인간적 발상으로 떡과 관련성을 찾은 적도 있었다.

모전 석탑. 특히 옥개 낙수면을 보고

시루떡을 생각해 본 적 없는가?
난. 오늘도 배가고픈데...

 

낙산동 삼층탑

 

초기 목탑에서 석탑으로 변화하는 과정이라 백제계열 석탑은 많은 석조 부재를 사용했다.

모전석탑 역시 정설은 아니지만, 동일선상에서 해석하면 부재가 많은 편이다.

언젠가

어느님에게 물었다.

-.실력이, 기술이 모자라 부재가 많지예?

-.아닙니다. 기술이 좋아서 그랍니다. 오늘날 정밀산업은 부품의 집합체 아님니꺼?

-.? 그라마 석탑의 전개과정은 기술의 낙후라예?

-.어데예! 석조문화에 대한 태동-발달-성숙-쇠락(도태}로 보면 될낍니더.


 


 

의구총

 

낙산동 석탑에서 잠시 생뚱맞은 생각을 했더니 바로 죄를 받았다.

후진하면서 안내문도 못 보고 쾅!

범퍼가 박살난 줄 알았더니 흠집만 갔다.

아직 2달로 안 된 신차인데...

 

지척에 있는 의구탑이다.

문화재청 자료 업어왔다.

 

일선리 마을에 자리잡고 있는 개의 무덤이다.

주인을 구하려 목숨을 바친 개의 충직함을 기리고 있는데, 충성스런 개의 행적을 그린 의구도(義狗圖) 4폭이 함께 보존되어 있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해평면 산양리에 사는 김성발이라는 사람이 기르는 개가 있었는데, 매우 영리하여 늘 주인 곁을 떠나지 않았다.

하루는 주인이 이웃마을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술에 취해 그만 길가에서 잠이 들었다. 마침 들에 불이나 주인이 위험하게 되자 개는 놀라 멀리 떨어져 있는 낙강으로 뛰어가 꼬리를 물에 적셔 불을 끄기를 여러 번 하다가 지쳐서 그만 죽고 말았다. 술이 깬 주인이 모든 상황을 짐작하고 감동하여 그 시체를 거두어 묻어 주었다.

의구도는 각 폭이 가로 6.4m, 세로 6.6m, 폭 0.24m의 크기이다. 무덤은 사람의 묘와 비슷해 보이는데 지름 2m, 높이 1.10m이다. 조선 현종 6년(1665) 선산부사인 안응창이 의열도에 의로운 개의 이야기를 쓰고, 숙종 11년(1685) 화공이 의구도 4폭을 남겼다고 한다.


낙산동 고분군

 

신라, 가야의 무덤으로 추정되지만 무의미하다.

부장품은 대학박물관에 가두어 놓고...

전쟁에서 승리하여 넓은 해평들을 차지한 부족의 자기 과시는 아닌지?

 

2006.08.25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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