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거창군

[스크랩] 거창 / 수승대,구연서원

임병기(선과) 2008. 6. 6.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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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온 고택을 벗어나 수승대로 향하여 최성호 소장님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졌지만 무엇보다 우리
문화에 대한 좋은 말씀을 들을 수 있어서 내게는 답사 이상의 큰 여정이었다.
"위천면 황산리 황산마을 앞 구연동에 위치한 수승대는 삼국시대에는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였고 조선 
때는 안의현에 속해 있다가 일제 때 행정구역 개편으로 거창군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수승대는 삼국시대 때 백제와 신라가 대립할 무렵 백제에서 신라로 가는 사신을 전별하던 곳으로 
처음에는 돌아오지 못할 것을 근심하였다 해서 근심 수(愁), 보낼 송(送)자를 써서 수송대(愁送臺)라 
하였다. 수송대라 함은 속세의 근심 걱정을 잊을 만큼 승경이 빼어난 곳이란 뜻으로 불교의 이름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 후 조선 중종 때 요수 신권(樂水 愼權)선생이 은거하면서 구연서당(龜淵書堂)을 이곳에 건립하고 
제자들을 양성하였고 대의 모양이 거북과 같다하여 암구대(岩龜臺)라 하고 경내를 구연동(龜淵洞)이라 
하였다. 지금의 이름은 1543년에 퇴계 이황(退溪 李滉)선생이 안의현 삼동을 유람차 왔다가 마리면 
영승리에 머물던 중 그 내력을 듣고 급한 정무로 환정하면서 이곳에 오지는 못하고 이름이 아름답지 
못하다며 음이 같은 수승대(搜勝臺)라 고칠 것을 권하는 사율시(四律詩)를 보내니 요수 신권선생이 대의
면에다 새김에서 비롯되었다."
백제 사신 이야기나, 퇴계와 신권의 아름다운 사귐이 무색하게도 수승대 일원은 거창군에서 주관하는
국제연극제 행사로 인해 지구상의 온갖 잡놈들이 모여 난리 염병을 치고 있어 기분이 엉망이다.
내가 특별히 문화의 보수주이자는 물론 국수주의자도 아니지만 민족의 얼이 서린 곳에서 국제행사를
주관하더라도 작은 배려들이 아쉽다는 이야기다.
짧은 만남의 여운을 간직하며 구연서원에 들렸지만 외삼문 밖의 서원목과 조선 화단의 삼재(공재 
윤두서, 현재 심사정,관아재 조영석) 한분인 관아재 작품이라는 외삼문인 관수루의 풍경이 서원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서원 마당에는 연극공연 관람을 위한 의자가 설치되어 있어 최소장님께 
저래도 되는 겁니까? 했더니 그건 약과군요 하시면서 서원마당에 즐비한 거창 신씨들의 온갖 비석을 
가리킨다.
울카페에 거창 신씨들이 계실지 모르지만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후학 배출을 위해 노심초사 했을 요수 선생의 뜻이 과연 저랬을까? 엄연히 있어야 할 동,서재는 자취도
없고 그 자리에 별의별 비석이 자리를 차지 하고  있으니...그것도 모자라 서원내에서 연극 공연이라니
?????????????
구연서원의 상량문에도 정온고택의 솟을 문의 상량처럼 용,호랑이 대신 용,거북이를 써놓아 거창지방의
내력인지 아니면 구연서원 처럼 거북이 형상에서 따온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서원의 창시와 더불어 조성되었을 두개의 정료대를 바라보며 뒤뜰로 가서 사당 담장 너머 보이는 
창살의 불발기창을 한참 바라보았다. 서원이든 향교든 제향공간의 창은 판문이 대부분인데 그 연유도
궁금했지만 산만한 주위 분위기에 즐길 여유마져 사라져 건너편 요수정을 들릴 엄두도 내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함이 아쉽지만, 최소장님의 여정과 나의 길이 있기에 아쉼움을 달래며 농산리 석불로 
향했다.
2004.08.09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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