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홍성군

[스크랩] 홍성 / 만해 한용운 생가

임병기(선과) 2008. 6. 6.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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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룻배와 행인(行人)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 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 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만해로를 따라 생가에 이르니 님의 침묵 또는 알 수 없어요 시비가 있으리라는 나의 예상을
벗어나, 전혀 알지 못했던  나룻배와 행인 시비가 반겨준다.
내가 뭘 알겟나만은 만해의 생가는 취락의 형세라기 보다는 눈이 가장 빨리 녹는 양지바른
무덤 즉 음택풍수지로 보여지는 것은 왜일까?
영정을 모신 사당을 제외하고는 관리사무소도 정겹운 초가지붕이라 만해의 삶과 잘 어울려 
보인다. 
"만해 한용운- 승려·시인·독립운동가. 본명은 정옥(貞玉), 아명은 유천(裕天).법명은 
용운, 법호는 만해(萬海, 卍海). 홍성(洪城) 출생. 6세 때 서당에 들어가 한학을 배우고, 
18세 때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하였으나 실패하자 피신하여 1896년 설악산 오세암(五歲庵)에 
들어갔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1905년 인제(麟蹄)의 백담사(百潭寺)에서 승려가 되었고 만화(萬化)에게 
법을 받았다.  10년 한·일합병의 국치(國恥)를 참지 못하여 중국으로 망명, 독립군군관학교를 
방문한 뒤 만주·시베리아 등지를 방랑하다가 13년 귀국하여 불교학원에서 교직생활을 하였다. 
같은 해 범어사(梵魚寺)에 들어가 《불교대전(佛敎大典)》을 저술, 대승불교의 반야사상과 
불교정신을 널리 펴는 데 힘썼다. 18년 월간 불교잡지 《유심(惟心)》을 간행하였고, 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33명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 체포되어 3년간 옥고를 치렀다. 
26년 시집 《님의 침묵》을 내놓고 문학활동을 전개하였으며, 27년 신간회(新幹會)에 가입, 
중앙집행위원으로 경성지회장을 지냈다. 31년 조선불교청년회를 조선불교청년동맹(朝鮮佛敎
靑年同盟)으로 개칭, 불교를 통한 청년운동을 강화하고, 월간 《불교(佛敎)》지를 인수하여 
속간하였다. 
35년 첫 장편소설 《흑풍(黑風)》을 《조선일보》에 연재하였고, 37년 불교관계 항일단체인 
만당사건(卍黨事件)의 배후자로 검거되었다. 그 뒤 계속하여 불교의 혁신운동과 작품활동을 
계속하였다. 시에 있어서 퇴폐적인 서정성을 배격하고 불교적인 <님>을 자연으로 형상화
하였으며, 은유법으로 일제에 저항하는 민족정신과 불교에 의한 중생제도를 노래하였다. 
62년 건국공로훈장 중장(지금의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주요 작품·저서로 
《박명(薄命)》 《흑풍》, 시집 《님의 침묵》 및 《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 
《십현담주해(十玄談註解)》 《불교대전》 등이 있다." ...다음에서
집 뒤의 야트막한 구릉에는 이제 만개한 산벚이 텅빈 생가를 찾아온 나를 반겨주는듯 하며, 
울카페 사립문을 밀치고 방의 사진과 흡사한 바자울 울타리가 유년의 향수를 자극하며 
금방 이라도 문을 밀치고 만해가 툇마루로 나올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역시 승려의 생가답게 심우재, 전대법륜 현판이 걸려 있고 툇마루에는 기미 독립선언문과,
님의 침묵이 액자속에서 반긴다.
님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쓰"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源泉)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만해가 애타게 찾았던 님이 조국의 독립인지, 해탈의 경지에 든 님인지 난 알 수 없지만
생가를 뒤로 하는 등 뒤로 망우리에 영면하고 계신 만해를 기다리는 듯한 꿩 울음만 애닯다.
2004.04.20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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