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밀양시

[스크랩] 밀양 / 영남루(2)

임병기(선과) 2008. 6. 6. 00:17
728x90
만덕문 솟을삼문을 들어서니 현판 문벽선 위에 홍살이 있는 천진궁은 단군 이래 역대
왕조의 개국신 즉, 중앙에는 단군, 동벽에는 부여 고구려 가락 고려 서벽에는 신라
백제 발해의 시조왕의 위패를 봉안한 전각으로 매년 봄과 가을에 제향을 올리는
민족정기가 살아 있는 신성한 공간이나 일제강점기에 왜놈들이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한 목적으로 감옥으로 활용했었다고 한다.


잠시 예를 갖추고 문을 나와 초가지붕이 정겨운 작곡가 박시춘 선생이 어린 시절을 보낸
옛집으로 향하며 내 유년에 흑백 티비에 아코디온을 연주하던 그분의 모습을 떠올리지만
최근에 그의 이름을 딴 가요제 개최로 촉발된 친일논쟁을 고인은 아는지 모르는지 그가
작곡한 노래가 집터를 쉼 없이 맴돌고 있다.

한 예술인의 과거행적에 대한 시시비비에 객관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지식이 없기에 그에
대한 평가는 울가족들의 판단으로 남기기 위해 별도로 글을 올리겠다.


무봉사의 석조여래좌상을 친견하기 위해 발길을 옮겼지만 역시 복 없는 놈에게는 화중지병이니,
중수공사로 인해 출입금지건만 무시하고 대웅전 문을 열고 들어갔건만 비닐과 천으로
모습을 가린 채 인연이 닿지 않음을 알려 주신다.


남강을 향해 내려오다 아랑낭자의 넋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아랑각에 들러 아랑의 전설에
빠져들며 비 오는 강변에서 밀양 아리랑 곡조를 흥얼거려 본다.


'밀양 아랑각'의 전설

지금부터 400여 년 전인 조선 명종(明宗) 때의 이야기다.
밀양부사에게는 아랑이라는 열아홉살 되는 매우 예쁜 딸이 하나 있었는데 젊은 관노가
아랑에 대한 연정이 지나쳐 영랑루에서 갑자기 아랑에게 덤벼들었다.

아랑이 죽을 힘을 다하여 반항하자 관노는 그만 칼을 빼 그녀를 찔러 죽이고 말았다.
딸을 잃은 부사는 다른 곳으로 부임해 갔고 후임으로 여러차례 새 부사가 부임해 왔으나,
어찌된 일인지 그 다음날 아침에는 모두 죽고만다.

나이든 무인이 밀양부사를 자원을 하였는데 그는 부임 첫날밤에 촛불을 사방에 켜놓고 잠을
자지 않고 있었다. 밤이 깊어지자 갈가리 찢어진 옷을 입고 피투성이로 머리를 풀어헤친 한 처녀가
나타나서 부사에게 공손히 절을 하고는 자기가 죽게 된 자초지종을 다 말하고는 내일 자기가 흰나비로
변하여 원수의 갓에 앉을 터이니 원수를 갚아 달라는 말을 하고는 사라져 버렸다.
날이 밝자 부사는 관노들을 모아 놓으니 흰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서 한 관노의 갓에 앉는 것이었다.
부사는 그를 잡아들여 죄를 자백케 하였고 사형에 처하여 아랑의 원수를 갚아 주었다.

그 후 죽음으로써 정조를 지킨 아랑을 찬양하고자 밀양의 처녀들이 모여 밀양 남천강(南川江) 강변위에 있는
영남루 밑 대밭 속에 비석을 세우고 아랑각이라는 사당을 지어 해마다 음력 4월 보름에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2003.11.09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메모 :
728x90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