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화성시 19

화성...홍법사 석조비로자나삼존. 오층석탑

홍법사2013년 이후 첫 답사입니다https://12977705.tistory.com/8723965 축대 아래에 있었던 석탑을 대웅전 앞으로 이건 하였습니다.불대좌석탑으로 추정되었던 대좌는 빼내고 오층석탑으로 복원하였습니다. 옛글로 대신하며 사진 몇 장 올립니다.바로자나삼존석조철조보살입상철조보살입상오층석탑2013년 칠층석탑이었습니다.2013년 불대좌(?)를 옥개석으로 활용하여 칠층석탑으로 조성불대좌아래위가 바뀌지 않았나?기단갑석탑신부초층 옥개석, 탑신, 상륜부 복원옥개석 전층 3단 층급받침, 탑신받침 생략상륜부 복원2025.03.15

경기도/화성시 2025.04.20

화성...봉림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봉림사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이다. 신라 진덕여왕 때 고구려의 침략을 불도(佛道)의 힘으로 막기 위하여 창건하였다. 절 이름은 창건 당시 궁궐에서 기르던 봉황새가 절 주위의 숲에 와서 앉았으므로 봉림사라 칭하였다고 전한다. 1621년(광해군 13) 안모(安暮)·자현(慈賢)이 대웅전·망양루(望洋樓)·봉향각·범종각 등을 중수하였다. 1708년(숙종 34)에 중건이 있었다. 1884년(고종 21) 무렵에도 중건하였으며, 1979년에 아미타여래상의 복장(腹藏)에서 나온 사리를 봉안한 사리탑을 근래에 세웠다. 1998년 삼성각을 건립하고, 1992년에는 요사를 개축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삼성각·봉향각(奉香閣)·망양루·범종각·요사채 등이 있다. 대웅전은..

경기도/화성시 2025.04.19

화성...융.건릉

30년도 지난답사 입문 당시에는 신라. 가야. 조선 왕릉도 즐겨 찾았는데... 수원. 화성도 여러 차례 순례했지만 융건릉은 첫 인연입니다.융릉 홍살문향로(香路). 어로(御路)정자각(丁字閣)융릉(隆陵, 추존 장조와 헌경황후)위치 : 경기 화성시 효행로 481번 길 21조성 연도 : 1762년(영조 38), 1789년(정조 13), 1816년(순조 16), 1899년(광무 3)왕릉 형식 : 합장릉 ▷ 융릉(隆陵) 이야기융릉은 황제로 추존된 장조와 헌경황후 홍씨의 능이다. 융릉은 한 봉분 안에 황제와 황후를 같이 모신 합장릉(合葬陵)의 형식이다. 1762년(영조 38) 장조(사도세자)가 아버지 영조의 명으로 뒤주에 갇혀 세상을 떠나자, 현 서울 동대문구 배봉산에 묘를 조성하였고, 이후 무덤을 수은묘(垂恩墓)라..

경기도/화성시 2025.04.18

화성...융릉 개비자나무

개비자 나무융릉 재실 안마당에는 향나무와 2009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개비자나무가 있습니다..개비자나무?나무에 관한 안목도 일천하지만 생소한 나무입니다. " 주목과의 나무로 한반도 특산종이다. 한반도 중부 이남 산골짜기의 습기 많은 곳에서 자라는 상록침엽수로 높이가 3m 정도이다. 잎은 선형으로 30-40mm이고 양쪽이 뾰족하며 앞뒷면이 백색이다. 꽃은 단성화로 4월에 핀다. 수꽃은 길이 5mm 정도로 10여 개의 포(苞)에 싸여 한 꽃대에 20-30개씩 달린다. 암꽃은 한 군데 2개씩 달리고 10여 개의 뾰족한 녹색 포에 싸인다. 밑씨는 한꽃에 8-10개씩 있다. 열매는 다음 해 8-9월에 붉게 익는데 식용하며, 주로 경기·충북 이남에 분포한다. 개화기는 3-4월이며, 결실기는 10-1월이다."(위키..

경기도/화성시 2025.04.17

화성...용주사 효행박물관

효행박물관.2005년 1월 28일 개관첫 인연생각보다 많지 않은 성보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대부분 수장고에 보관 중일까요? 관심 있는 몇몇 점 사진 올립니다. 용주사는 3번째 답사입니다.https://12977705.tistory.com/8727322목조 동자상.조선 후기. 경기 유형문화유산동자상. 조선 후기용주사 중종(中鐘). 경기도 유형문화재 1790년 "정상부의 용뉴(龍鈕)에는 두 마리의 쌍용(雙龍)이 완만히 솟은 천판(天板) 위에서 입을 크게 벌려 정면을 응시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양 발의 발톱 주위에는 당좌와 같이 둥근 원형의 연화문을 장식한 점이 독특하다. 여기에 천판 가장자리를 돌아가며 고려시대 후기 범종에서 처음 등장한 연잎을 세워 둥글게 돌아가며 장식한 입상화문대(立狀花文帶)을 따른 톱..

경기도/화성시 2025.04.15

화성...화성시 역사박물관 삼층석탑

화성시 역사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있으며, 일전에 강수도 님이 포스팅하였던 석탑입니다. 본래 위치는 전하지 않으며 무른 화강암 재질의 고려시대에 조성한 석탑으로 추정됩니다. 얼핏 옥개석 2기, 탑신석 1기가 결실된 5층 탑처럼 보였지만, 현재 부재는 맨 아래 기단 갑석, 기단 중석, 초층 옥개석, 초층 탑신석, 2층 옥개석, 2층 탑신석, 3층 옥개석, 3층 탑신석, 뒤집힌 노반석, 앙화로 추정됩니다. 즉 맨아래 두 동강 난 부재가 기단 중석이며, 상위 탑신석을 차례차례 아래층으로 내려 쌓으면 3층 석탑이 됩니다. 삼층석탑으로 추정하고 부재를 살펴보겠습니다. 기단 갑석 땅에 매몰되어 부연 등은 확인할 수 없으며 기단 중석 통돌이며 우주(?)가 희미하게 남아 있습니다. 초층 옥개석 층급받침은 3단입니다. 초층..

경기도/화성시 2024.01.17

화성...금수사 석조아미타좌상

석조아미타좌상 옛절터에서 각각 발견되어 금수사 대웅전에 봉안된 아미타여래와 대좌는 화성시 향토 문화재 자료 제 2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석조아미타좌상 방형 대좌 정, 측면에는 안상 2구가 조식되어 있습니다. 아미타여래는 개금이 되어 원모습을 분명하지 않지만, 나발, 낮은 육계, 백호를 새겼습니다 삼도를 표현하고, 통일신라 전성기의 당당한 모습에 비해 부드러운 어깨와 가슴, 잘록한 허리, 우견편단의 법의, 상품상생(아미타정인)의 수인을 결하고 있으며, 대의자락이 무릎을 덮었습니다. 고려시대 불상으로 추정합니다. 우리나라의 아미타정인 불상 https://blog.daum.net/12977705/8727143 금수사 석조아미타좌상 수원, 화성 답사 동선 수립 시에는 흔치 않은 상품상생 수인의 금수사 석불을 꼭..

경기도/화성시 2021.06.07

화성...화산 용주사

2009년 이후 다시 들렸습니다.이른 아침, 큰 절집은 초파일을 앞두고. 법당은 붐볐습니다.오늘은 예전에 보지 못했던 벅수, 금연, 금주 표석 촬영 목적으로 들렸습니다 옛글(2009년)로 대신합니다https://12977705.tistory.com/8722825서방, 북방 동방, 남방 석비천보루에도 있었는데 용도를 모르겠습니다왜 명문을 훼손하였는지... 일주문을 대신해 돌에 주련을 새겼습니다.막존지해(莫存知解) 도차문래(到此門來)일반적으로 입차문래(入此門來)인데... 오층석팁 기단부 안상 속의 귀꽃 탑신석 문비, 자물쇠전, 후면에 장식 옥개석 층급받침 상륜부 동자석 석탑부재 문석인벅수인 줄 알고 찾아왔는데... 정면에 희미하게 명문이 있습니다 금연 표석 우리나라의 금표석https://cafe.daum.n..

경기도/화성시 2021.06.07

화성...정숙옹주 태비

화성시 송동 727 동탄 호수공원에 접한 태봉산에 위치 지금은 도시화로 낮은 구릉처럼 보이는 태봉산 옛 사진에는 호수공원이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저수지이며, 태봉은 저수지와 평야를 내려보는 전형적인 태실 자리었습니다. 동탄 호수공원 동탄 호수공원 태비 태실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으며, 태함 유무도 확인되지 않습니다. 기단, 비신을 갖추었으며 비신과 비수는 일석입니다. 왕녀아지씨태실(王女阿只氏胎室) 명문으로는 태주를 확인되지 않은 공주 또는 옹주의 태실입니다. 비머리 바람에 날리는 연잎을 조식하였으며 상부에 연봉형 보주가 있습니다. 기단 저석,중석, 갑석이 일석입니다. 중석에는 변형된 십(十)字의 안상을 새겼고, 갑석에는 복련을 조식하였으며, 상부에 장방형 비좌가 있습니다. (후) 황명 만력십육년 칠월십일일..

경기도/화성시 2020.07.26

화성...외금양계 표석

외금양계비 (外禁養界碑) 혼자는 엄두내지 못할 장소에 위치. 네이버 블로그 김희태 님의 안내로 찾았습니다. 외금 양계 융, 건릉의 외금양지 표석으로 추정되며, 이곳에는 벌채. 분묘 조성, 농경지, 가축 사육 등이 금지됩니다. 외금양계와 관련 고문헌의 기록과 명쾌한 설명은 동행한 네이버 블로그 "이야기가 있는 역사여행"의 김희태 님의 글을 링크합니다. 화성.외금양비는 왜 세워졌을까? http://www.newstow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72683 성황당 현재는 인적이 드문 곳이지만 조성 당시에는 많은 사람이 오고가는 길목이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외금양계는 왕릉을 보호하는 금표 뿐만 아니라 경계석 용도로도 활용되었을 것입니다. 2020.07.03

경기도/화성시 2020.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