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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화성시

화성...정숙옹주 태비

by 임병기(선과) 2020.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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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시 송동 727

동탄 호수공원에 접한 태봉산에 위치

 

지금은 도시화로 낮은 구릉처럼 보이는 태봉산

옛 사진에는 호수공원이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저수지이며, 태봉은 저수지와 평야를 내려보는 전형적인 태실 자리었습니다.

 

동탄 호수공원

 

동탄 호수공원

 

태비

태실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으며, 태함 유무도 확인되지 않습니다.

기단, 비신을 갖추었으며 비신과  비수는 일석입니다.

 

왕녀아지씨태실(王女阿只氏胎室)

명문으로는 태주를 확인되지 않은 공주 또는 옹주의 태실입니다.

 

비머리

바람에 날리는 연잎을 조식하였으며 상부에 연봉형 보주가 있습니다.

 

기단

저석,중석, 갑석이 일석입니다.

중석에는 변형된 십(十)字의 안상을 새겼고, 갑석에는 복련을 조식하였으며, 상부에 장방형 비좌가 있습니다.

 

 

(후) 황명 만력십육년 칠월십일일 을시 입 (皇明萬曆十六年七月十一日乙時立)

 

황명 만력16년 皇明萬曆十六年

1,588년 선조 재위 때입니다.

1,588년을 기준으로 태어난 왕녀 중에는 1,577년 출생한 정숙옹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정숙옹주貞淑翁主

선조의 딸(1587~1627). 인빈() 김씨() 소생이며, 영의정을 지낸 신흠()의 아들 신익성()과 혼인하여 5남 4녀를 두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옹주가 졸한 기록이 실려있습니다

인조실록

17권, 인조 5년 11월 6일 기사 2번째기사 1627년 명 천계(天啓) 7년        

 정숙 옹주(貞淑翁主)가 졸서(卒逝)하였으므로 친제(親祭)를 정지할 것을 명하였다

 

신익성 聖(1,588~1,644)

"본관은 평산. 자는 군석, 호는 낙전당·동회거사. 아버지는 영의정 흠(欽)이다. 선조의 딸 정숙옹주와 혼인해 동양위에 봉해졌고, 1606년 오위도총부부총관이 되었다. 광해군 때 폐모론이 일어나자 이를 반대하다가 전리로 추방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 후 재등용되어 이괄(李适)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웠다. 1627년 정묘호란 때는 세자를 따라 전주로 피란했고, 1638년 병자호란 때는 남한산성에서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했다. 화의 성립 후 1637년 오위도총부도총관·삼전도비사자관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했다.

 

1642년 이계(李烓)의 모략으로 청에 붙잡혀갔으나 조금도 굴하지 않았다. 소현세자(昭顯世子)의 주선으로 풀려나 귀국했다. 글씨로 회양의 청허당휴정대사비와 파주의 율곡이이비, 광주의 영창대군의비 등이 있고, 저서로 〈낙전당집〉·〈낙전당귀전록 樂全堂歸田錄〉·〈청백당일기 靑白堂日記〉 등이 있다. 시호는 문충이다.(다음 백과)

 

 

동탄 호수공원과 인접해 접근이 용이하며 관리가 잘 되고 있었습니다.

현장에 옛 태봉산과 저수지 사진이 실린 안내문을 설치하면 태실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것 같습니다.

 

2020.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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