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영주시

영주...풍기향교

임병기(선과) 2026. 5. 14.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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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기향교 하마비
항공교 정문에 있습니다.

항공교 교정의 은행나무
풍기향교에 있었던 은행목이거나 그 후손이 아닐는지.

풍기 향교 외삼문
 
본래는 금계동 임실마을 서편에 있었으나, 1541년(중종 36) 주세붕이 풍기군수로 부임하여 문묘에 참배한 뒤 그 위치가 읍에서 너무 멀고 식수가 불편하다 하여 이듬해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지었다. 1692년(숙종 18)에 군수 정증이 구지(舊址)로 옮겼다가, 1735년(영조 11) 군수 임집이 다시 지금의 위치로 옮겨지었다. 1950년 6 · 25 전쟁으로 양심루(養心樓)와 동재(東齋) · 서재(西齋)가 소실되었다.
1971년에 헌관실(獻官室)을 보수하고 1977년에 대성전을 중수하였으며, 1980년에 명륜당을 중건하였다. 1983년에 서무(西廡)를 보수하고 1985년에 동무(東廡)를 중수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5칸의 대성전, 7칸의 명륜당, 각 4칸의 동무와 서무, 4칸의 헌관실, 내삼문(內三門) · 관리사(管理舍)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6현(宋朝六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 · 가을에 석전(釋奠:음력 2월과 8월에 문묘에서 공자에게 지내는 제사)을 봉행(奉行)하고 초하루 ·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대성전과 동무 · 서무는 1985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으며, 소장전적 가운데 《풍기향교향 안豐基鄕校鄕案》 · 《향교액안 鄕校額案》 · 《교안 校案》 · 《강학소계안 講學所契案》 등은 이 지방의 향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현재 향교의 운영은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담당하고 있다.(네이버 지식백과).

네이버 자료에 따르면 외삼문에는 양심루(養心樓)가 있었으나 한국전쟁 때 전화를 입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국의 여러 향교처럼 문이 닫혀 까치발로 바라보았으며, 외삼문과 아래 사진은 동호회 양주석 님 작품입니다.

관리사와 명륜당으로 들어가는 협문 같습니다.

내삼문
대성전으로 들어가는 문

배치
대성전. 동무. 서무. 동무 뒤쪽으로 명륜당이 보입니다
대부분 향교가 전학후묘이나 풍기항교는 좌학우묘 구조입니다. 이러한 배치는 청도 화양향교. 대구 향교. 성주 향교에서 확인됩니다. 이렇게  좌학우묘(左學右廟)의 배치에는 문묘 영역을 강학 영역 보다 뒤로 물리거나 높게 배치하여 위계를 보여줍니다.

대성전

대성전 측면. 후면

동무

서무

대성전 옆 돌무더기
석탑 기단 저석과 중석이 일석인 부재 맞는지?
 
문이 닫혀 까치발로 바라본 향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실린 사진 전경으로 마무리합니다.

 
2026.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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