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마지막 답사었으나, 법당은 참배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https://12977705.tistory.com/8723163
석탑. 석등. 불상대좌. 승탑 부재. 석탑부재.
석탑부재
보덕사 삼층석탑이 본래는 오층석탑이었다고 전합니다.
2 개 부재가 옛 석탑부재이었을까요?
석탑재. 승탑재
부도 탑신석 아래 방형부재는 석탑 탑신석으로 우주가 모각되어 있습니다.
문석인.
불상 대좌로 추정되며, 서로 다른 용도의 부재
불상 대좌로 추정되는 위쪽 부재는 안상 안의 귀꽃이 뒤집힌 상태입니다.
팔각원당형 석등
화사석만 본래 부재로 추정
화창에 창문을 단 흔적
화창에 단이 있어 초, 등잔 등을 놓았던 것으로 추정되며. 흔치 않은 유형입니다.
생령좌의 사천왕상이 있으나 육안 식별은 곤란
삼층석탑
본래는 가야사지에 있었으며 일본인 반출하려다가 실패하고 예산군청에 보관하였다가 보덕사로 옮겨왔습니다.
본래는 오층석탑이라고 합니다. 탑신부가 망실되었을까요?
상층기단 중석이 초층 탑신석일까요?
여러 자료에 맨 아래 부재는 지대석으로 설명
지대석이 맞다면 하층 기단부가 망실된 모습일 테고
맨 아래 부재가 하층기단 갑석이면
중석, 저석이 매몰된 상태입니다.
부연이 깊습니다.
정치하지 않은 까닭은 훼손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상층기단 갑석
받침이 4단입니다.
탑신석.
우주 생략
옥개석
전층 3단 층급받침, 절수구 없음, 추녀 상하 반전 급함, 상부 1단 탑신굄 조출
상하 반전
노반 복발 일석
3층. 5층. 단층 기단. 이중 기단 등등
퍼즐을 맞추듯 여러 사람이 있으면 쉽게 결론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려시대 석탑이라는 것은 이론이 없을 테고
극락전.
충남유형문화재
정측면 3칸. 2 칸,. 겹처마. 맞배지붕. 띠살문 창살. 왕실 소속 장인들이 동원되어 세운 전각으로 추정
도리를 길게 빼내고 풍판을 달았습니다.
불단
내부 벽화가 아름다웠지만 사진에 담지 않았습니다.
건칠아미타여래좌상
상현좌, 상반신이 길어 조선 초기 모습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불상 바닥에 옹정 4년(雍正 4年) 명문이 있어 1726년 조성된 불상이며, 道眞. 禪輝. 仅濟 금어가 참여하였습니다
군의 수평 매듭 위 볼록하게 솟은 것은 무엇인지..
조성 명문이 있지만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지 않은 까닭은 무엇인지.
동종. 1673년
조선시대 종에서는 흔치 않은 입상대가 있고, 종신 상대에는 범자문을 양각했습니다. 종신 중대에는 당좌 없이 보살입상과 연곽을 새겼으며, 하대는 2 구역으로 구획하여 위쪽에는 조성 명문, 아래에는 덩굴문으로 장식했습니다.
강희 12년. 1673년
化主 天心. 前化主 玄奇
康熙十二年癸丑三月初三日
반대편
여러 명문이 있으며 특히 改心寺中鐘 명문이 있어 서산 개심사에 봉안되었던 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동종도 조성문이 있음에도 비지정 문화유산입니다.
승가사 칠성도. 1956년
화기
불기 2983년. 1956년
지장보살도. 1865년
화기
동치 4년. 1865년
아미타회상도.1865년
화기는 확인되지 않지만 위 지장보살도와 동시에 조성된 불화로 추정
독성도. 조선후기 추정(화기 없음)
산신도(모본?). 1877년
광서 정축 7월(光緖 丁丑七月)
신중도. 1865년
화기는 확인되지 않지만 위 지장보살도와 동시에 조성된 불화로 추정
현왕도. 1865년
화기는 확인되지 않지만 위 지장보살도와 동시에 조성된 불화로 추정
여느 비구니 사찰처럼 정갈하고
경내가 너무 조용, 아니 적막했습니다.
스님께 인사라도 드렸으면 법당 내부 벽화 사진도 찍었을 텐데, 오히려 조심스러워 촬영하지 않았습니다.
2024.11.06
畵記는 문화재청 발간 한국의 사찰문화재 자료집을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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