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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광역시/울산광역시

울산...불당골 착호비(捉虎碑)

by 임병기(선과) 2022.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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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글로 대신합니다.

https://blog.daum.net/12977705/8723193

 

전후장 묘(墓). 비명(碑銘)

 

가선대부행용양위 부호군 전공지묘명(嘉善大夫行龍驤衛副護軍全公之墓銘)

 

전후장(全厚章.1705~1772)

"본관은 옥산(玉山)[경산]. 자는 군정(君章). 부인은 정충 김광려(金光麗)의 딸이다. 아들은 전성택(全性澤)이며, 딸은 박만일(朴萬逸)에게 시집갔다. 전후장은 산행장(山行將)이다. 산행장은 목장에 소속된 호랑이 전문 사냥꾼이다.  울산목장에는 두 명의 산행장이 소속되어 있었다. 산행장은 호랑이나 표범이 목장 안에 들어오면, 호랑이 발자국을 찾는 심종군(尋踪軍)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가 목장 안의 군정(軍丁)과 포수(砲手)를 동원하여 창군(槍軍)과 함께 부대를 만들어 사냥하였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 1746년(영조 22)에 사복시에서 아뢰기를, “호랑이가 울산목장에 들어와 말 8마리를 잡아먹었는데, 감목관(監牧官)이 포수를 이끌고 호랑이를 찾아 둘러싸고, 산행장 전후장이 앞으로 나가 먼저 총을 쏘아 맞혀 모두 다섯 마리를 잡았으니 감목관 이인석(李仁錫)과 산행장을 논상해야 한다” 하니, 국왕이 이를 윤허하였다. 이리하여 전후장은 절충장군에 올랐다. 전후장은 1757년(영조 33)에도 호랑이를 포획하여 가선대부에 올랐다."(디지털울산문화대전)

 

"본관이 옥산인 전후장은 자가 군장(君章)이다. 강희 을유년 (1705년) 3월17일에 태어났다. 건륭 병인년(1746년)에 호랑이 다섯 마리를 잡은 공이 있어 ‘절충(折衝)’에 가자(加資)되었다. 또한 정묘년(1747)년에 또 호랑이를 잡은 공이 있어 ‘가선대부(嘉善大夫)’에 가자되었다. 37년 (1772년) 10월 초 8일에 서거(逝去)하셨다. 같은 해 1월6일 울산 동면 남옥(南玉)에서 서쪽으로 거리가 3리쯤 되는 서쪽 능선에 묘를 잡았다. 부인 김씨는 ‘절충’ 광려(光麗)의 딸로써 1남을 두었는데, 성택(性澤)이라고 한다. 손자를 얻었는데 이름은 창복(昌福)이다. 1녀는 박만일(朴萬逸)에게 시집을 갔다. 이후 아들 성득(性得)이 태어났다. 같은 달 27일 날 이 비석을 세운다."(경상일보)

 

거북바위

묘 뒤편에 위치, 옛글 나의 해석이 재미있습니다

 

남녘에는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폈다

 

봄은

오고 가는 것이 아니다.

그건

바라보는 우리의 기준일 뿐이다.

 

2022.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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