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서울특별시

서울...삼각산 화계사

임병기(선과) 2022. 1. 25.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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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인연입니다.

오래전 희방사 동종 때문에 미답처로 남아 있던 절집이었으며, 근자에 88 야불, 일제강점기 마애관음, 일제강점기 소조 나한, 흥선대원군의 글씨 등이 전한다는 자료 입수 후 이번에 찾았습니다.

 

화계사

"고려 광종(949~975) 때 왕사(王師, 광종 19)와 국사(國師, 광종25)를 지낸 법인 탄문(法印坦文)대사가 인근의 부허동(浮虛洞)에 창건한 보덕암(普德庵)을 조선 중종 17년(1522)에 신월선사(信月禪師)가 서평군(西平君) 이공(李公)과 협의하여 남쪽 화계동(華溪洞)으로 법당과 요사채를 옮겨 짓고 화계사(華溪寺)라는 이름으로 개명하였다.

 

광해군 10년(1618) 9월에 화재로 전소되었으나, 도월선사(道月禪師)가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 가문의 시주를 받아 1619년에 중창하였다. 수백여 년이 지나 쇠락하여 보전하기 어려워진 사찰을 1866년(고종 3년)에 대덕 용선(龍船)과 범운(梵雲)스님의 발원으로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시주를 받아 대방과 요사채를 중수하였다. 이에 전각 곳곳에는 흥선대원군의 친필 현판들이 남아 있다. 이후 대덕 용선(龍船)과 초암(草庵)스님이 1870년에 대웅전을 중수, 1876년에 관음전을 중창, 1878년에 시왕전(十王展)을 중수하였다. 이 무렵 조대비의 시주와 상궁들이 출입이 잦아 사람들이‘궁(宮)절’이라고 불렀다.

 

근대에 들어와 화계사는 해외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960년대 중반부터 30여 년간 해외에서 포교활동을 해온 숭산 행원(崇山行願, 1927~2004)선사가 조실로 있으면서 스님의 가르침을 받은 많은 외국인들이 화계사를 찾아오게 되었고 1984년 국제선원을 개원하여 외국인 스님들의 수행공간을 마련하였다. 1991년에 정수스님이 복합건물인 대적광전을 건립하여 기도와 신도 교육을 위한 공간을 갖추었다. 1995년에 화계사불교대학이 설립되어 불자나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불교를 기초부터 체계적으로 교육하고 있다. 2018년 3월에 국제선문화체험관이 완공되어 국제선원, 참선 및 템플스테이 체험의 공간으로 운용되고 있으며, 같은 해 12월에는 주지 수암(秀岩)스님의 원력과 신도들의 발원으로 미륵존불을 봉안함으로써 현재의 모습을 이루게 되었다.(화계사 홈)

 

대웅전

1870년(고종 7년) 대덕(大德) 용선(龍善)과 초암(草庵)스님이 흥선대원군의 지원을 받아 중수하였습니다.

 

화계사 홈페이지에는 위당 신관호 글씨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대웅전 주련이 위당의 글씨이며, 대웅전 현판은 몽인 정학교 글씨라는 자료도 있습니다

 

대세지 아미타,관음

불상 대신 사진을 올려 놓았습니다

 

아마타 후불탱. 1875년

 

천불전

 

천불오백성전

천불전과 오백나한전 같습니다.

 

찬하(餐霞) 최기남 거사가 1915년 금강산 신계사에서 조성한 소조상(?)이라고 합니다

 

명부전

흥선대원군의 글씨

사십구재를 올리고 있어 지장보살과 시왕을 비롯 불화는 인연 짓지 못했습니다

 

명부전

 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지장보살과 시왕을 모셔오라는 왕명을 받아 황해도 백천(白川)의 강서사(江西寺)에 있던 지장보살과 시왕상을 이곳 화계사로 모셔 봉안하고(1877년), 익년(1878년) 초암 스님이 조대비(趙大妃)의 시주를 받아 중수한 것이다.(화계사 홈)

 

목조지장보살, 시왕, 권속(문화재청)

지장보살과 무독귀왕·도명존자 삼존, 시왕상 10구 및 시왕의 권속인 판관, 사자(使者), 동자, 금강역사 등 총 25구

1649년, 강서사에서 화원(畵員) 영철(靈哲) 등에 의해 조성되었습니다.

 

수화승 영철 

https://cafe.daum.net/_c21_/bbs_read?grpid=dRVf&fldid=366&contentval=000Qxzzzzzzzzzzzzzzzzzzzzzzzzz&datanum=1671&page=1&prev_page=0&firstbbsdepth=&lastbbsdepth=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listnum=20

 

지장보살도(문화재청)

1878년 화산당 재근(華山堂 在根)이 수화승이며, 19세기 왕실의 상궁들이 조성 발원함

 

십대왕도(문화재청)

1876년 수화승인 화산당 재근(華山堂 在根) 외 화승들이 조성.

 

삼성각 현판

누구의 글씨인지(幻惺?)

 

동종

康熙二十二年癸亥四月日 慶尙道豊基地西面小伯山喜方寺大鐘重三百斤鑄成也 供養大施主…緣化秩 通政大夫畵員思印 湛衍 雪玉 淸允 祖信 厚英 別座勝旭 供養主 惠熙 惠海 化主 淸信居士 道善

강희 22년 계해 4월 일 경상도 풍기지 서면 소백산 희방사 대종 중삼백근 주성야 … 연화질 통정대부 화원 사인 담연 설옥 청윤 

 

1683년 4월 경상북도 영주 소백산 희방사에서 조성

 위해 수장(首匠) 사인(思印)의 지휘 아래에 보조 장인 담연(湛衍, 淡演), 설옥(雪玉), 청윤(淸允), 조신(祖信), 후영(厚英) 등 모두 6명의 주종장이 참여하였습니다.

 

1898년 희방사에서 화계사로 옮겼다고 합니다

 

2 마리의 용

상대는 2단의 화문, 종신에는 상대와 붙여 유곽이 있으며, 위패 4좌, 하부에 조성기, 하대에도 화문이 있습니다

 

위패 

위패(位牌) 4좌에는 각각 宗面磬石, 王道 隆, 惠日長明, 法周沙界라는 글씨가 있습니다

 

명문 일부

 

우리나라의 사인 비구 주조 동종

https://cafe.daum.net/_c21_/bbs_nsread?grpid=dRVf&fldid=MebK&contentval=0003pzzzzzzzzzzzzzzzzzzzzzzzzz&datanum=237&searchlist_uri=%2F_c21_%2Fcafesearch&search_ctx=LrpNuZSucOsx.YncUoV2ej_tRpHqkOL1hFNwnK7pMwx2pUU9oYvq-CADq-lzJK_pvUKb7yb4c6zjTiqtpKnSCNifajP7gdnedVUvl41NBoCU-C.634PqdBf_BhqbsuaQMn-mMJOh56j1v7QL7unL4BWo8U_EHpVHYw-97zu.mrDqQYRB1gWweW7nM6XR8Tu7z3B6uimV8H1gwpdOJQO4JkUSJpCOckhSOlk1ViPz7-Mo9_EIEP_AIKdTXt6QpcuX9AS9XwvKTDgjxcTEqSZ2WO_Mrs53gacxrGAdEggyEkvSE6FEiwpFrG9vDOOanwbgm3lVvnezam10

 

보화루(대방)

"보화루는 1933년 한글학회 주관으로 이희승, 최현배 등 국문학자 9인이 기거하면서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 대한 수정안을 재검토한 곳이기도 하다. 요사(寮舍)는 스님들의 생활과 관련된 건물을 이르는 말이다. 부엌과 식당, 잠자고 쉬는 공간은 물론 기도하러 온 신도들이 잠깐 쉬고 음식을 먹는 공간도 요사라고 부른다. 요사 부근에는 창고와 우물, 장독, 세탁시설 등 각종 생활 시설이 한 데 모여 있다. 본래 요사는 법당 뒤쪽에 지었지만 후대로 갈수록 법당 좌우 또는 앞쪽에 지어진 것이 많다. 오늘날에 와서는 필요한 공간에 짓는다. 요사는 대개 법당보다 작고 꾸밈도 소박하다. 일반 한옥처럼 넓은 툇마루를 달기도 하고 누각이나 2층으로도 꾸민다. 화계사에는 보화루 이외에도 조실스님이 거처하는 조실당과 일반 스님들이 머무르는 요사가 있다."(화계사 홈)

 

영선군 박춘광(永宣君 朴春江)의 글씨,

 

화계사

위당(威堂) 신관호(申觀浩)

 

보화루

위당(威堂) 신관호(申觀浩)

 

17세기 목조관음보살(문화재청)

어디에 모셨는지 뵙지 못했습니다

 

88 야불

https://blog.daum.net/12977705/8727696

 

마애관음보살좌상

https://blog.daum.net/12977705/8727697

 

화계사

목조관음보살,대방 안쪽의 흥선대원군 글씨. 명부전 목조 지장보살, 불화도 뵙지 못해 미완의 답사가 되었습니다.

 

2021.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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