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청주시

청주..목우사지 석조여래입상

임병기(선과) 2021. 10. 29.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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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이후 다시 찾았습니다.

당시에는 없었던 터널이 개설되어 주변을 한참이나 배회 후 뵈었습니다

 

목암사(牧岩寺)에 있었던 불상으로, 2002년 목암사 스님이 봉황사 주지로 오면서 봉황사로 옮겨왔다고 합니다

 

석불입상의 원래 위치와 관련 문화재청에서 2014년에 발간한 한국의사지에는 목우사지 보다는 수도암지 1이라고 합니다.

 

목우사지

문헌에는 목우암(牧牛庵)으로 기록되어 있다. 창건과 폐사에 관련한 문헌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18~19세기 문헌인 輿地 圖書』와 『伽藍考』, 『梵宇攷』, 『忠淸道邑誌』, 『忠淸邑誌』, 『湖西邑誌』, 『淸州郡邑誌』 등에서는 목우암이 臥牛山에 위치한다고 기록되어 있다.➋ 《湖西地圖》에는 목우암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다. 이와 같은 문헌에 의하면 목우 암은 19세기 경에는 운영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수동사지1

와우산의 남서쪽 양 능선 사이에 조성된 구릉의 하단부로 대한불교수도원이 자리한 곳이다. 이곳은 와우산성의 서편으로 남동쪽에는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작은 계류가 있고, 계류를 지나 능선 건너편에는 牧牛 庵址가 있다. 1980년대 자료에 의하면 대한불교수도원 일원은 통일 신라기에 창건되어 조선시대에 폐사된 사찰지로 추정되고, 연화대좌와 초석, 석조불상, 석조불두 등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또한 인근 사찰인 牧岩寺의 주지스님은 ‘광복직후에 대한불교수도원 근처 계류에서 청주 목우사지 석조여래입상과 석불좌상을 가져왔다’고 한다. 또한 이재준은 수도원의 남동 편에 도괴된 연화대좌가 있는 곳이 청주 목우암지 석조여래입상의 원위치라고 한다.

 

2008년 사진

 

대좌와 불두는 한국전쟁 때 훼손되어 후보 하였습니다.

목에는 삼도가 있고, 법의는 통견의 법의처럼 보이지만, 뒷면 옷자락을 보면 비전문가의 눈에는 난해합니다.

군의는 나비모양으로 매듭지었습니다. 안쪽의 대의 자락은 타원형을 이루며 무릎까지 흘러내렸고, 바깥 대의자락은 양팔에 걸쳐있으며 옷주름이 다르게 표현하였습니다. 군의 자락이 발목을 덮고 있으며, 불신과 일석으로 조성한 두 발은 훼손이 심합니다. 가슴에 모은 두 손은 전법륜인으로 설명하고 있으나, 중품상생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정면 군의자락

두 발은 훼손이 심합니다.

 

좌측면 군의자락, 대의 끝단

 

우측면 대의 자락

 

군의 나비매듭

Y자형, 타원형 대의 자락

좌우 팔에서 흘러내린 옷 주름.

 

전법륜인?

중품상생?

 

석불입상 측면

 

옷주름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석불입상 후면

 

석불입상 대좌는 현재 가까운 대한불교수도원에 있으며,

불신과 대좌는 가능하면 빠르게 다시 일심동체가 되어야합니다.

 

https://blog.daum.net/12977705/8723752?category=5177

 

연화대좌와 더불어 발견된 석불좌상 4구와, 불두 2구는 청주박물관에 소장 중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석불좌상 1구와, 불두 1구를 뵈었습니다.

 

수동사지1 석불좌상(국립 청주박물관)

 

수동사지1 석불 불두(국립 청주박물관)

 

목우사지 석불입상

터널 입구 우측에 위치하여 주의를 게을리하면 그냥 통과하기가 쉽습니다.

터널 진입 전에 문화재 이정표를 세우고, 반대편에도 터널 통과 후  U턴이 표기된 안내문이 필요합니다.

문화재 행정은 그 지자체의 맨얼굴임을 깨달았으면 합니다. 

 

2021.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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