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광주광역시

광주...학운동 성촌 마을 벅수(장승)

임병기(선과) 2021. 8. 17. 11:29
728x90
728x90

성촌 마을 벅수

성촌길 1번지, 성촌마을 입구 대로변에 위치합니다.

고향 마을 입구에 마주 서서 동리를 수호하는 벅수는 새마을 운동과 도시화의 역풍으로 1977년 마을을 떠났다가 최근에 되돌아왔습니다. 변한 환경 때문에 귀향한 마을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나란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벅수 앞에 세운 성촌마을 소개글이 정겹습니다.

"삼국시대에 무등산 아래 향로봉 남단에 형성되어 성거(城巨)라고 불리었으며 200여 가구에 달하는 주민들이 농업에 종사하였다. 금성 나씨. 수원 백씨. 탐진 최씨. 김해 김씨 등이 많이 살았으며, 현재까지도 원주민들이 대대로 터를 지키며 살고 있다.

(중략)... 마을에는 백제시대 석실고분과 마을 입구에 돌벅수가 있으며, 이밖에도 전통문화관, 미술관 등 다양한 문화 예술자원이 있다."

 

1977년 성촌 마을 벅수(사진.황준구 님의 네이버 블로그 / 장승. 벅수. 솟대)

 

1977년 성촌 마을 벅수(사진. 황준구 님의 네이버 블로그 / 장승. 벅수. 솟대)

 

좌측 벅수(할아버지)

관모를 쓰고, 왕방울 눈, 뭉툭한 코, 굳게 다문 입술, 팔자 주름, 턱수염, 두 손은 손등을 포개었고,  가슴에는 횡선을 2줄로 새겼습니다.

 

우리나라의 장승. 벅수

https://blog.daum.net/12977705/8727469

 

우측 벅수(할머니)

얼굴은 비슷하지만 우측 벅수와 다른 복식을 하고 있으며, 두 손에는 무엇인가를 잡고 있는 모습입니다.

 

왼손

 

성촌 벅수

오랫동안 전승되어 오던 동제는 맥이 끊겨 버렸지만, 도둑이 마을에 들어와 물건을 훔쳐 달아나다가 밤새 벅수 주변만 맴돌다가 주인에게 잡혔다는 이야기, 수구막이, 마을의 안녕과 벽사, 기자 신앙은 아련한 옛 설화로 전할 뿐입니다.

 

우리 전통 벅수에서 남녀 구분은 무의미하지만,

현재 시점으로 보면 사진 좌측이 할아버지, 우측이 할머니 상으로 생각됩니다.

 

귀향

많은 추억을 간직한 고향 마을에서 영원히 민초들과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2021.08.04

728x90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