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창원시/창원시

창원...창원 박씨 어사옥비

임병기(선과) 2021. 4. 7.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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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사옥비

창원 북면 대한리 소재.

 

모선재(慕先齋)

창녕 조씨 재실

 

감금입니다

보호각이 아니라...

 

어사옥비(御賜玉碑)

중종 임금이 내린 비석입니다.

 

숙인 창원박씨지묘(淑人昌原朴氏之墓)

 

즉, 묘 앞에 있었던 묘비입니다.

도난의 우려 때문이겠지만 제자리로 옮겼으면 좋겠습니다.

 

비좌위에 탑신과 비수가 한 돌입니다.

 

비수

태비, 비석 등.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입니다.

들린 연잎. 연맥. 보주

 

어사옥비(御賜玉碑)

 

숙인 창원박씨지묘(淑人昌原朴氏之墓)

"창원 박씨는 노모 봉양 등 효심이 지극하였는데 이를 기리기 위하여 임금이 조치우 부부에게 『소학(小學)』을 내리고 옥비 두 좌를 하사하였다. 그 중 하나는 조치우에게 내린 청옥비이고, 다른 하나는 부인 창원 박씨에게 내린 백옥비이다. 청옥비는 조치우에게 내린 것으로, 조치우의 묘소가 있는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대재리 유후재(遺厚齋)에 보존되어 있다."(디지털 창원 문화대전)

 

조치우(생몰년 미상)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순경(舜卿). 조상명(曺尙明)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경무(曺敬武)이고, 아버지는 군수 조말손(曺末孫)이며, 어머니는 김한계(金漢啓)의 딸이다.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된 뒤, 1494년(성종 25)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사옹원정을 지냈으며, 연산군 초기에는 성균관전적으로 춘추관기사관이 되어 『성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이어 1498년(연산군 4) 정언을 지냈으나 뒤에 연산군의 학정에 불만하여 관직을 사퇴하였다. 1506년 중종반정으로 정세가 바뀌자 다시 기용되어 대구부사로 나갔다. 이어 1519년(중종 14) 예천군수를 지냈다. 재임 중 선정으로 이름이 높아 청백리에 녹선되고, 뒤에 송덕비가 세워졌다. 효행이 뛰어나 왕으로부터 『소학』을 하사받았으며, 55세에 어머니의 봉양을 위하여 사직하고 70세에 어머니의 상을 당하자 애통 끝에 죽었다."(다음 백과사전)

 

마을 입구

방문객을 맞아주는 벅수.

영천 조치우 옥비도 다녀오라는 무언의 언질 같습니다.

 

부부 묘와 비를 함께 모시면 어떨까요?

 

2021.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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