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아산시

아산...산막골 미륵

임병기(선과) 2021. 3. 10.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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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막골

외암 2리 당림미술관 입구의 성황나무 아래에 계십니다.

 

 

산막골 미륵

외암 민속 마을에 가려 찾는 사람 없는 마을 입구를 수호하는 서낭당 벅수로 모셨을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는 미륵으로 모신 듯합니다. 마을제(동제), 장승제의 흔적은 없으며, 소박한 제단에는 촛대, 물, 막걸리가 다녀간 분의 자취를 품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민초들과 동고동락하였겠지만, 조성시기는 전하지 않습니다.

 

 

미륵

자연석에 불두를 양각으로 조성한 느낌이지만 정확은 본래 모습은 육안으로 구분되지 않습니다.

 

 

외암 민속마을에서 정월 보름을 전후하여 진행되는 장승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어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자료를 가져왔습니다.

 

제관 선출과 제수 준비

과거에는 생기복덕(生氣福德)을 보아 운이 닿는 사람으로 제관을 선출했으나 점차 제관을 가려 뽑는 것이 어려워져서 지금은 출산이나 초상 등의 부정 여부만 확인한다. 예나 지금이나 일단 제관(祭官)으로 선정되면 부정한 일을 하지 않고 정갈하지 않은 음식도 먹지 않으며 근신한다. 특히 당일에는 혹여라도 묻어 있을 부정을 제거하기 위해 목욕재계를 하고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한 후 임한다.

 

음식을 장만하는 제관을 비롯해 세 명의 헌관(獻官)[초헌관·아헌관·종헌관], 축문(祝文)을 읽는 축관도 별도로 둔다. 제비(祭費)는 주민들이 마련한 행사 비용과 아산시나 온양문화원 등에서 지원하는 지원금을 합해서 충당한다. 순수한 제물 준비 비용 외에 외암리에 베푸는 모든 민속 행사와 식사는 무료로 제공되므로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

 

제물은 세 줄로 구분해 진설하는데, 첫 줄에는 술잔을 놓고, 둘째 줄에는 좌우로 큰 그릇에 쌀을 담고 중앙에 촛불을 밝힌다. 떡시루 왼쪽에는 청수를 담은 물그릇을 놓고, 그 오른쪽에는 삶은 돼지머리를 놓는다. 셋째 줄에는 왼쪽부터 대추, 밤, 호두, 귤,배, 사과의 순으로 놓으며, 술은 막걸리를 사용한다. 제물을 놓은 상 아래에는 작은 상을 놓고 모사(茅沙) 그릇을 놓는다. 모사그릇에는 쌀을 담고 향을 꽂아 둔다. 그 상 아래에는 빈 그릇을 놓고 퇴주 그릇으로 사용한다. 제수(祭需)는 제관이 준비했지만, 외암민속마을보존회가 결성된 후로는 외암민속마을보존회가 준비한다. 제수는 마을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준비한다.

 

제사 진행과 행사

제사에 참여하는 제관 일행은 모두 도포(道袍)를 입고 유건(儒巾)을 쓴다. 의식의 순서를 적은 홀기(笏記)를 부르는 집례자의 진행에 따라 제사를 진행한다. 장승 앞에는 참석자가 쓴 기원문을 꽂는다. 집례자의 홀기에 따라 분향과 강신(降神)을 한 뒤 초헌관이 첫 잔을 올리고 재배한다. 그 뒤 제관 일행이 무릎을 꿇고 앉으면 축관이 축문을 낭독한다.

 

장승제의 축문에는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하며, 풍년이 들어 인정이 넘치는 세상, 집집마다 배를 두드릴 수 있는 평안함을 신령님께 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독축(讀祝)을 마친 후에는 아헌과 종헌을 한다. 종헌 뒤에는 제관 일행이 재배 후 신을 보내는 사신(辭神)으로 장승제를 마친다. 그 후로 마을 중앙의 느티나무 앞으로 옮겨서 같은 형식으로 제사를 지낸다.

 

제사를 마친 후에는 소지를 태워 마을의 평안을 기원한다. 느티나무제를 마친 후에는 마을 입구의 용담교로 옮겨가서 다리제를 지낸다.

 

 

측면

 

 

 

미륵

벅수로 태어나 미륵이 되었나요?

찾는 사람 없는 외로운 벅수로 남아 있어야 옳을까요?

외암 민속마을에 가실 기회가 있으면, 지근거리에 계시는 벅수를 찾아 외암리의 원형질과 속내를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2021.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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