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천안시

천안...중실 마을 벅수(장승)

임병기(선과) 2021. 3. 5.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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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면 중실 마을

 

 

동남구 성남면 중실 마을 동구에 위치

디지털 천안문화대전에는 중이 살아 살아 중실로 불린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도로 양쪽 왕버들(여러 자료에 느티나무로 등재) 앞에 목장승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느 시기부터 전국의 목장승처럼 중실 마을에서도 몇 년마다 교체할 젊은 층의 탈 농촌화로 시멘트, 석재로 대체하였다고 합니다. 중실 마을에서도 시멘트로 대체하여 동제를 모셨으나, 도로를 확장하면서 한쪽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이번에 답사하지 못했으면 시멘트 장승이 나란히 서 있는 줄 알고 있었을 것인데, 현재는 석장승으로 대체하여 서로 맞보고 있습니다.

 

 

(사진 출처. 네이버 블로그/장승, 벅수, 솟대/황준구 님 사진. 2011년)

 

시멘트로 나란히 모신 벅수, 솟대도 보입니다.

 

 

중실마을 벅수

오늘날 전국의 많은 장승에 새긴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이 아닙니다.

우리 전통 벅수에 여장승은 없으며 장군으로 모시고, 마을의 안녕, 풍농을 기원하는 동제(장승제)를 봉안합니다.

 

 

남방적제대장군(南方赤帝大將軍)

남쪽을 관할하며, 적(赤)은 남을 상징하는 오방색입니다.

 

장승제(동제)를 모시며 걸었던 금줄이 쳐 저 있고, 오리가 떠난 솟대가 외롭게 옛날을 그리고 있습니다

 

 

무섭기는커녕 정겹지 않나요?

우리네 민초들의 정서입니다.

 

 

장승 제단

지켜가기 어려운 현실인데...

 

중실 장승제

"중실 마을의장승제는 200여 년 전부터 마을의 안녕을 위해서 세웠으며 음력 정월 열나흗날 오후 5시쯤 동리 두레 농악대의 솔로 제장에 나가서 해가 지면 지낸다.

 

정초가 되면 동리의 대동회에서 집안에 불상사가 있거나 노약자, 환자, 임산부 등이 있는 집은 제외시키고 나머지 주민 중에서 생기복덕을 가려서 당제를 주관할 당주(마을에서는 主堂이라고 부른다) 1명과 제를 주관할 제주 그리고 축관과 장승터를 준비하고 금줄을 치고 황토를 펴는 등 제의 일을 돕는 화장 1인을 선출한다.제를 지낼 제관들은 금기를 지키며 근신하고 있다가 열나흗날 장승제를 지내는데 하루 전날에 제장과 제관의 집 문 앞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펴서 잡인의 출입을 막는다.

 

제는 기제사와 같은 방법으로 지내게 되며 제물은 떡, 삼색 실과 포와 소간을 쓰는데 돼지고기는 사용하지 않는다. 소간을 쓰는 이유는 장승제를 지내기 전에는 산신제를 올렸다고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서 원래 통소를 사용하던 마을로 생각된다.이제는 20여 호 남짓 남았으며 예전에는 가가호호 염출 하던 제수비용도 요즈음은 집집마다출자금을 내서 그 이자로 충당한다.제가 끝나면 소지를 올리는데 소지는 집집마다 한 장씩 세대주 명의로 올리고 끝으로 대동 소지를 올리며 제사를 지내면 다시 마을의 농악대가 인솔해 돌아와서 연장자들이 음복하고 마을 잔치를 벌인다.

 

특히, 중실 마을은 열나흗날 마을에 불상사가 있을면 한 달을 늦춰서 음력 2월에 다시 지내며 그때 또다시 불상사가 나면 지내지 못한다. 화장은 열나흗날 낮에 집집마다 다니며 마을 전체에서 짚 한단식을 걷어서 장승의 옆에서 화롯불을 놓는데 이것은 추위도 가시게 하고 방역도 된다." (천안 동남구청 홈)

 

 

 

 

북방 흑제 대장군(北方黑帝大將軍)

남방적제대장군 맞은편 논(본래 위치인 듯)에 서 있습니다

 

흑(黑)은 북쪽을 상징하는 오방색입니다.

 

 

 

 

우리나라의 벅수(장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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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고향 마을 동구에도 큰 왕버들이 있었습니다.

유년의 추억이 가득했던 나무는 경지 정리하면서 베어 내버렸습니다.

배고픔을 해결하고, 경제부흥이 일차 목표였던 시절이어서 어쩔 수없었다고 자위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많이 생각납니다.

 

장승, 벅수

역시 새마을 운동의 광풍이 전국을 요동 칠 즈음에 미신타파라는 명문으로 말살되어 버린 우리의 마을 문화입니다.

다행히, 최근에는 지자체에서 관심을 가지고 새로 모시고, 제를 올리는 등의 정체성 복원 정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으로 판단됩니다.

 

2021.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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