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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옥천군

옥천...죽향리 사지. 삼층석탑. 석사자

by 임병기(선과) 2020.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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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향리 사지

2018년 발간된 문화재청, 한국의 사지를 검색 중에 흥미로운 사진을 접했습니다.

 

"죽향리사지는 현 옥천군청 북동쪽 900m 지점에 있는 죽향초등학교 뒤쪽에 있다. 이곳은 현재 죽향초등학교로 이동된 죽향리 삼층석탑(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51호) 원 위치로 알려져 있으나, 지금은 민가와 도로, 학교 등이 건 설되어 유구와 유물 등 사지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문화유적분포지도』에는 이곳 지명이 ‘탑산이골’이라 하고, 현재 죽향리 239-3번지 바로 옆 도로변에 옥개석 과 기단석이 남아있어 이 일원이 사지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 석조물들은 기존에 ‘옥천 죽향리 장승’으로 보고되 었고, 마을에서 장승으로 인식하여 매년 정월 14일에 고 사를 지냈었다고 한다. 그러나 형태 및 인근 사지와 관계 로 보아 석탑 탑신석과 옥개석일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죽향리사지는 사명과 연혁을 자세히 알 수 없지만 1922 년 일본인 大原利武가 옥천 등 충북지역을 조사하고 촬영 한 사진이 남아있어 이 무렵에 이미 사찰이 폐사되고 경작지로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을 보면 사지에는 석 탑과 석사자가 있는데, 모두 원위치를 벗어나 있고, 석탑 은 대부분 붕괴된 것을 한데 모아서 쌓아놓았다. 또한 석 사자 인근에는 부러진 팔각석주 2매와 상면에 단판 연화문이 치석된 옥개석 1매, 방형석재 1매가 남아있었다. 이후 1942년 발간된 『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에는 ‘사명은 알 수 없고, 옥천읍 서북쪽 구석 밭에 있다. 탑은 높이 약 11척(3.3m) 4층 방형 탑이고, 상부 2층은 지상에 있으며, 곳곳이 파손되었다.’라고 하므로 1922년과 비슷한 상태 로 석탑이 사지에 남아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1982년 『내고장 전통가꾸기』와 『寺誌』 등에는 석탑이 약 40년 전에 죽향초등학교로 이동되었다고 하며, 석사자 3 구가 사지로 추정되는 경작지 안에 있다고 하므로 1942 년 이후 석탑은 초등학교로 이동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보고서에 수록된 사진을 보면 논 한가운데에 석사자 3구와 상면에 원형홈이 뚫린 방형 기단석재, 방형 옥개석 1매, 석주 1매 등이 시멘트에 고정된 채 남아있었다는 것 을 알 수 있다. 석사자 주변에서는 고려시대 기와가 수습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지는 민가와 경작지, 도로 등 이 조성되면서 지형이 많이 변해 사역을 추정하기 어렵다 고 한다. 또한 석사자는 2000년 8월 중순 경에 도난당해 아직까지 행방을 알 수 없다. 다만 사지는 평지에 자리잡 고 있으며, 옛 옥천군 읍치에 인접해 있으므로 고려시대 옥천군에서 중요한 위치에 세워졌던 사찰로 추정된다고 한다".(한국의 사지)

 

 

1,922년 죽향리 사지 석탑(출처.국립중앙박물관  e 뮤지엄)

 

일제강점기에 촬영한 삼층석탑입니다.

사지에서 이건 되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죽향초교에 있는 석탑입니다.

다른 부재는 일일이 비교할 수 없지만 사진 좌측의 상륜부는 죽향초교의 석탑 상륜부임을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죽향초교 삼층석탑

http://blog.daum.net/12977705/8726263?category=5183

 

 

1,922년 죽향리 사지 사사자. 석등 간주석, 옥개석(출처. 국립중앙박물관  e 뮤지엄)

 

사자 1구는 당시에도 망실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석등 간주석은 두 동강이 난 상태며 좌측은 옥개석입니다.

한국의 사지에는 석탑 옥개석으로 설명하였으나, 석등 옥개석으로 생각됩니다

 

안타깝게도 석사자는 불과 20년 전인 2,000년에 도난당했다고 합니다.

사사자 석탑처럼 기단부에 자리한 사자이었는지, 아니면 의성 관덕동 석탑 사사자처럼 갑석 위에 앉았던 사자상인지 궁금합니다

 

 

석조 부재

죽향초교 입구 삼거리 도로변에 자리하며, 

위의 일제강점기 사진에 보이는 석조 부재입니다.

한국의 사지에는 석탑 옥개석으로 추정하였으며, 아래 부재도 석탑 탑신석으로 설명합니다.

 

그러나, 아래부재도 석탑 탑신석이 아닌 듯하며,  옥개석도 낙수면과 상부의 촉공을 살펴보면 석등 옥개석으로 생각됩니다. 실제로 위 사진에도 두 동강 난 석등 간주석이 있습니다.(손이 들어가지 않아 층급 받침을 확인하지 못 했습니다)

 

 

옥개석

낙수면 물매가 깊고, 내림마루가 높게 표현되었으며, 상부에 복련이 조식되어있습니다.

위에는 상륜부를 지탱하였던 홈이 있습니다.

 

 

최근까지

주민들이 마을 장승으로 모셨으며, 정월 14일 장승제를 올렸다고 합니다.

추측컨데, 우리나라 방방곡곡에서 음기가 가장 강한 정월 대보름 전날 올렸던 동제이었을 것입니다.

 

동제는

풍농. 마을의 안녕,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민초들의 소망의 발로입니다.

시나브로 잊혀가는...

 

 

 

 

사자상은 우리나라에 몇 기 없는 석탑 유형입니다.

그런 까닭에 도난당한 사자상이 회수되어 기단부의 사자인지 갑석 위에 않았던 사자인지 확인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오랜 전통인 장승제가 복원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2020.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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