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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김포시

김포...고막리 태실

by 임병기(선과) 2020.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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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막리 태실

사진 민가 뒤편 야트막한 봉우리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문수산 아래에 위치합니다.

 

문수사 삼층석탑, 풍담대사 부도

blog.daum.net/12977705/8725207

 

김포...문수사 삼층석탑.풍담대사 부도,부도비

문수산 문수사. 신라 혜공왕(재위: 765∼780) 때 창건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하며, 이후의 사적은 전하지 않는다. 조선시대에 1613년 도욱(道旭)이 중창하였으며, 1809(순조 9)에는 광선(光善)이 중창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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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막리 태실

산정상 부근에 태함과, 태비 기단, 아래쪽에 아기태비가 도괴된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태함

온건하게 남아 있습니다.

덮개돌에 4개 돌기 중 한쪽만 노출된 상태입니다.

 

 

 

노출된 돌기

덮개돌의 돌기는 선조 때부터 효종 때까지 나타나는 유형으로 알고 있습니다.

즉, 태실 주인공을 특정할 수 있는 특징입니다.

 

 

 

 

기단

장방형의 비좌 홈, 비신은 정상 근처에 도괴되어 있습니다.

 

 

기단

일석으로 조성되었으며, 중석은 각 면을 2개로 구획하고 길쭉한 십(十) 자형의 안상을 새겼습니다.

 

 

도괴된 아기태비를 복원하기가 어렵지 않은데

 

 

아기태비

명문이 남아 있지만 육안으로 구분이 쉽지 않으며, 뒤쪽 명문도 확인 불가합니다.

 

다행히

태실을 먼저 다녀왔고 태실 답사에도 많은 도움을 주는 '이야기가 있는 역사문화연구소' 김희태 소장님의 포스팅에 자료가 실려있습니다.

 

 

아기태비

후면이 노출되어 있습니다.

 

 

비갓

연봉이 바람에 들려 있으며, 연맥이 표현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연봉형 보주는 훼손된 상태입니다.

 

 

명문

전면

왕자 후 아지씨태실(王子 珝 阿只氏胎室)

후면

만력십이년칠월이십오일입(萬曆十二年七月二十五日)

만력십사년십이월초육일개입(萬曆十四年十二月初六日改立)

 

명문에 의하면 고막리 태실 주인공은 선조의 왕자 신성군 이후이며, 비석은 1,584년에 세워졌고, 1,586년에 고쳐 세웠습니다.

 

신성군(信城君.1579~1592)

이름은 후(珝). 어머니는 선조의 후궁인 인빈 김 씨이며, 한성부 판윤 신립의 사위이다. 인빈 김 씨가 선조의 총애를 받았으며 신성군 또한 선조의 총애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1591년 서인 정철이 경연에서 광해군을 세자로 세울 것을 건의하다가 동인 이산해 등의 반대로 좌절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한양이 위험해지자 종묘와 사직의 위패를 모신 종묘 관원을 따라 평양으로 피난을 갔다.

일본군이 임진강을 건넜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영변으로 피난을 떠났다. 1592년 11월 의주에서 병사하였다. 1604년 임진왜란 때 선조를 따라 의주까지 간 신하들에게 내리는 공신호인 호성공신 2등에 책록 되었다(다음 백과)

 

 

지자체에서 작은 관심만 가지면

완전한 태실로 복원될 수 있을 텐데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우리님들은 문수산 문수사 삼층석탑, 풍담대사 부도 답사길에 들려보길 권합니다.

 

 

2020.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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