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을 검색하니 2,006년 마지막으로 들렸습니다.
오늘은 당시 스쳐 지났던 부도전, 삼층석탑을 살피고, 정희왕후 태실 답사 차 순례하였습니다.
수타사(2,006년)
https://12977705.tistory.com/4770494
2.016년 수타사 산소길에 위치한 신봉리사지 석탑재를 힘들게 답사하였지만 그때는 동면 노천리로 진입하였습니다
신봉리사지 석탑재(2,016년)
https://12977705.tistory.com/8724454
정희왕후 태실(2,019년)
https://12977705.tistory.com/8726866
부도전을 제외한 글은 옛 답사기로 대신합니다.
하마비
1980년대에 조성
봉황문
1,674년
소조사천왕상(동방 지국천. 남방 증장천)
1,675
일반적인 사천왕상과 배치와 다르나 수타사 홈페이지에 준합니다.
소조사천왕(서방 광목천, 북방 다문천)
흥회루
1,658
대적광전
1,636년 공잠대사 중건
비로자나좌상
관음전
목조관음보살좌상
1,758년
청수대
무슨 문양?
맷돌
삼층석탑
2층 기단의 삼층석탑
2,3층 탑신석과 상륜부는 망실된 고려 석탑
지대석
하층기단, 중석, 갑석
갑석 상부에는 2단 굄 조출
상층기단
중석에는 양우주, 1주 탱주 모각
갑석 부연 생략, 상부 3단 굄 조출
탑신부
초층 탑신석 양우주, 탱주 모각
2~3층 망실
옥개석
낙수면 물매 급하고, 1단 굄 조출
옥개석 층급 아래로부터 3*3*2
펜스가 있어 절수구 유무는 미확인
상륜부 망실
부도전
입구에 위치하며, 크게 2 곳으로 구획, 조선후기 부도입니다.
당호를 새긴 부도, 새기지 않은 부도의 주인공도 17세기 후반 봉황문, 사천왕상 그리고 18세기 대웅전 중수 등의 불사가 있었던 시절에 수타사에 주석하였던 스님의 부도로 추정됩니다.
기허당대사 탑비?
기허당대연대사탑(倛虛堂大演大師塔)
행장을 찾지 못했습니다.
기단부
상.중,하대석을 갖추었습니다.
상,하대석에는 복련을 조식하였고, 연주문으로 구획된 팔각중대석에는 당호를 새겼습니다.
원구형 탑신석
옥개석과 상륜부는 일석입니다.
청송당대사탑(靑松堂大師塔)
원구형 부도
당호를 새기지 않았습니다.
기허당 대사 부도와 비슷한 작례이지만 중대석 팔각 각면에8괘(掛)를 새겼습니다.
팔괘는 길상의 상징입니다.
옆쪽 부도전의 1,690년에 조성된 홍우당 부도 이후로 생각됩니다.
기단부
상륜부
부도 부재
흔치 않은 사각형 기단의 부도입니다.
종형 부도
당호를 새기지 않았습니다.
유화당대사묘위지탑(遊華堂大師墓暐之塔)
종형 부도로 복련의 기단 위에 세장한 탑신석을 올렸습니다.
홍파대사승왕탑(洪波大師勝王塔)
길쭉한 탄두형(彈頭形) 부도입니다.
중봉당탑(中峰堂塔)
종형 부도로 팔각기단부 각 면에 8괘(掛)를 새겼습니다.
중봉당부도탑비?
서곡당대사부도탑비
서곡대사부도(瑞谷大師浮屠)
하대석의 하대, 중대, 상대가 일석이며 중대에 길쭉한 안상을 조각하고 상대 복판쌍엽의 복련을 조식하였습니다.
중대석은 죽절문으로 구획하고 문양을 새겼습니다.
얼핏 팔괘로 보이지만 팔괘는 아니며 동일한 문양입니다.
구형 탑신, 육각 옥개석과 상륜부는 일석입니다.
기단부
옥개석,상륜부
서곡대사 찬연(1,702~1,768)
1,747년 횡성 봉복사 중건
수타사에서 입적, 횡성 봉복사에도 부도가 있습니다.
서곡대사 전설
서곡대사는 내촌면 서곡리에서 태어난 큰 스님이다. 7세 때 도리깨질을 하다가 칡에서 피가 나오자 이일을 어른들에게 말씀 드렸다.
“너는 어진 사람이로구나!” 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후 수타사에 가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 열심히 도를 닦아 큰 스님이 된 서곡대사는 어느 날 아침상을 받고 나더니 갑자기 웃으시는 것이었다. 이에 대사를 모시는 동자승이 물었다. “어찌 웃으십니까?” 하고 물었더니 서곡대사는 정색을 하며 “합천 해인사에 불이 났구나.” 하는 것이었다. 동자승이 눈이 동그래져서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여쭈니 대사는 밥을 먹던 밥알이 담긴 숭늉을 들고 나가 해인사 쪽으로 세 번 튕기고 진언을 외었다.
그런 다음 동자승을 보고 합천 해인사에 가보고 오라고 하여 문밖으로 나서는데 벌써 기별이 오고 있었다. 알아본 즉 합천 해인사에 정말 불이 났는데 갑자기 흑 문이 나타나더니 소나기가 내리고 밥알이 떨어지면서 불이 꺼졌다고 했다. 서곡대사의 도술에 의함이 확인이 된 것이다. 또 하루는 철산이라는 깊은 산에 포수들이 짐승을 잡아서 음식을 장만하고 있었다. 그런데 수타사에 앉아 있던 서곡대사가 “어느 곳으로 가면 포수들이 음식을 장만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필시 소금을 가져 오지 않았을 것이니 한 봉지 싸서 갖다 주어라” 하며 동자승에게 말하였다. 동자승이 의아해하며 어디에 있는 줄 알고 소금을 갖다 주느냐고 하였더니 연기가 나는 곳으로 가보라고 하였다. 동자승은 산 너머 연기가 나는 곳을 찾아가 보았다. 그곳에 가보니 포수들은 소금이 없어 정말 음식 맛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동자승이 소금을 내놓으며 서곡대사가 소금이 없어 음식을 못 해 먹고 있을 것이라며 보내서 왔다고 말했다. 포수들은 가져온 소금으로 음식을 맛있게 해 먹으며 서곡대사의 신묘한 도술에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그 이후 서곡대사는 생불이 되었다고 한다. "(다음)
홍우당선천대사부도탑비
1,690년
"대사의 법휘(法諱)는 선천(善天)이요 속성(俗姓)은 홍(洪)씨이니 삼중대광(三重大匡) 남양(南陽) 홍은설(洪殷說)의 후예이다. 용문(龍門)의 설명장로(雪明長老)에 의탁하여 머리를 깍고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향봉 적조대사(香峰 寂照大師)를 찾아가 불교의 오묘한 이치를 배우고 성심을 다하여 홀로 수행하고 연구 비교하는데 견줄 이가 없었다. 또 삼업(三業)을 정성스럽게 닦고 두루 염불(念佛)에 힘쓰고 마음을 오롯히 하였는데, 대사의 이러한 모습은 마치 홀로 배를 몰아 번뇌로 시끄러운 네거리를 조용하게 하며 파도가 지혜의 바다를 맑게 하는 모습과 같았다. 1689년 기사(己巳) 음력 4월 상순 속세(俗世)에서 물러나 참된 세상으로 돌아가니 향년 79세요 승랍(僧臘) 63년이었다.
한달 남짓 다비(茶毘)를 거행하는 데 머리 뼈 한 조각이 7보쯤 되는 반석(盤石)위로 튀어 올라가 그것을 절 북쪽 바위굴 속에 봉안하였다. 다음 해 중춘(仲春) 초파일에 비로소 기도를 올림으로써 결실을 맺어 마침내 끝마쳤다. 이에 은색 사리 2과(顆) 얻었는데 하나는 모난 형태이고 또 하나는 둥근 형태였다. 둥근 것을 절 북쪽에 두고 모난 것은 용문(龍門)에 봉안하였다."(한국 금석문종합영상정보시스템)
홍우당부도(紅藕堂浮屠)
1,611~1,689
방형 지대석, 육각 하대와 중대를 한 돌입니다.로 만들었다. 중대석은 죽절문으로 구획하였고, 상대에는 앙련을 새겼습니다. 구형 탑신 위에 육각 옥개석과 상륜부를 일석으로 조성하였습니다. 전체적으로 육각형이며 하대, 중대와 상대가 비례가 맞지 않습니다.
기단부
멀리서 애타게(?) 기다리는 분들이 계셔서 오늘도 주마간산식 답사가 되었습니다.
오래전에 뵈었던, 장남리, 괘석리, 물걸리와의 인연도 미루었으며, 복귀하던 길에 들린, 홍천 민속박물관은 공사중이어서 철비도 다음을 기약했습니다.
2020.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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