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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연령군 태함.태비

임병기(선과) 2020. 7. 7.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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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대

박물관 야외전시장이 아닌 본관 정원 앞에 옛님들이 계십니다.

 

옛글을 보니 2,011년에 다녀왔습니다.

http://cafe.daum.net/moonhawje/DjZP/1623?q=%EB%8C%80%EC%A0%84...%EC%B6%A9%EB%82%A8%EB%8C%80%20%EB%B3%B8%EA%B4%80%20%EC%A0%95%EC%9B%90

 

연령군 태함,태실

2,011년 답사 사진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무관심이었겠지요.

 

예산군 대술면 궐곡리 고새울의 태봉산이 원위치입니다.

일제강점기에 태항아리를 비롯 반출되었으며, 태함과 태실은 1,970년대에 충남대 박물관으로 옮겨왔다고 합니다.

 

연령군 이훤 (延齡君 李昍, 1699년 6월 13일 ~ 1719년 10월 2일)

"이름은 이훤李昍). 자는 문숙文叔). 숙종의 여섯 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명빈 박씨榠嬪 朴氏 1703년(숙종 29) 5세에 연령군으로 봉하여졌다. 예법에서는 6세 이후에 봉작하는 것이 관례이나, 5세 당시 생모인 명빈박씨가 죽음으로써 주상자主喪者가 되었기 때문에 서둘러 봉해졌다. 이때에 대간들의 논란이 많았으나, 왕은 허락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대간들을 파직시키기도 하였다.

 

1705년연령군의 숙배肅拜 때에 교지를 전달할 임무를 맡은 이조정랑 조도빈이 당일에 늦자 그 자리에서 파직시킨 경우도 있다. 1707년 혼인하였으며, 1711년 천연두를 앓은 바 있다. 1719년에는 형인 연잉군(뒤의 영조)과 함께 왕의 기로소 입소를 적극 권유하는 소를 올렸다. 성품이 효성스럽고 근면하여 왕의 간병에 조금도 게으름이 없었으며, 또한 사제에 거처하였으나 민간에는 폐를 끼치지 않았다고 한다.

숙종이 특별히 사랑하여 제문과 묘지문을 직접 지었다. 도승지 김연이 초상을 주관하였는데, 이는 연령군의 부인이 김연의 종손녀였기 때문이다. 아들이 없어서 숙종이 밀풍군 이탄의 둘째 아들인 이상대를 그 후사로 삼도록 하고, 이유라는 이름을 내려주었다. 연잉군과 우애가 두터워 연잉군이 즉위한 뒤에는 왕으로서 연령군의 묘에 자주 치제하였으며, 은신군 이진(사도세자의 4남)으로 다시 후사를 삼아주었다 ."(네이브)

 

묘는 서울에서 1940년 예산군 덕산면 옥계리 어머니 명빈 박씨 묘 옆으로 이장하였으며, 신도비는 육군 사관학교에 남아 있다고 합니다.

 

아지태비

 

(전면)

강희 38년  6월 13일 인시생(康熙 三十八年 六月 十三日 寅時生) 왕자 아기씨 태실(王子阿只氏 胎室),

1699년 (숙종 25)

 

전면 비머리

 

후면

 

(후면)

강희 38년 9월 29일 입(康熙 三十八年 九月 二十九日 立)

 

후면

 

 

태함

돌기가 있는 덮개돌입니다.

신석이라면 물이 고이지 않겠지요.

 

 

 

 

 

석탑 부재

 

탱주 1주

 

내촌리 석탑

 

 

옥개석 3개

 

 

 

석불좌상

 

 

충청감사 정태화(1602~1.673) 선정비

효종조에 영의정에 오른 인물입니다.

천안에 있었던 비석을 이건 하였습니다.

 

몇 가지 특징이 눈에 띄었습니다.

 

귀부

오른쪽으로 돌렸습니다.

왼쪽, 오른쪽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민심?

머리에 성혈을 새겼습니다.

 

기자 신앙이라지만...

 

어라?

등에도 바위 구멍을...

 

이수 전면

화려합니다.

이수 뒷면

아무런 장식이 없습니다.

 

 

 

 

환지본처(還之本處 )가 좋은데...

 

2020.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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