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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진도군

진도...학계안 철비

by 임병기(선과) 2020.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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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신면 칠전리 753번

마을 앞 유후재 전각에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철비(목록,사진)

http://cafe.daum.net/moonhawje/MebK/321?q=%EC%9A%B0%EB%A6%AC%EB%82%98%EB%9D%BC%EC%9D%98%20%EC%B2%A0%EB%B9%84(%EB%AA%A9%EB%A1%9D%EA%B3%BC%20%EC%82%AC%EC%A7%84)

 

석비군

학계안 철비와 관련된 인물인 듯합니다

 

노암재露巖齋(?)

학생들을 가르쳤던 강학 공간

지금은 교육 기능은 사라지고 마을 향사 등 마을 모임 장소 같습니다.

 

裕後閣(유후각)

동백나무 두 그루가 수호하고 있습니다.

상시 개방하지 않으며, 열쇠는 마을의 유사(위답토 경작. 향사제물 준비)가 보관하고 있으며, 수소문하여 열쇠를 받았으나 조명시설이 없어 사진이 밝지 않아  심충성 군의 사진 2장을 가져왔습니다

 

유후각(裕後閣)

裕後?

선조의 덕을 이어받아 후세가 복을 받는다는 의미일까요?

물론, 물질적인 풍족함이 아니라 정신적인 넉넉함을 이르는 뜻입니다.

유후각(裕後閣)은 일제강점기에 지었으며, 매년 음력 3월 6일에는 마을에서 제사를 올린다고 합니다.

 

(심충성님 사진)

학계안(學稧案)

1684년(숙종 10) 주민들이 서당인 노암재(露岩齋)를 세우고 학계(學契)를 결성하고, 1715년(숙종 41) 학계 운영에 관한 사항을 철비에 새겼습니다. 

 

뒷면에는 학계에서 구입한 재산 목록(토지)이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 학계창립 이후 1714년까지 30년간 25필지 1.7결의 재산을 모은 것을 알 수 있다. 동계(洞契) 등에서 서당을 운영하거나 양사재 등 교육 활동을 부수적으로 하는 경우는 흔하지만 칠전리에서 보듯이 향촌에서 사학교육기관인 노암재(露岩齋, 서당)를 세우고 학계(學契)를 설립하고 재원을 각출해 학전(學田)을 만든 뒤 이를 영속하도록 철제비를 세운 일은 드문 일이다. 이 철비는 3백여 년 전 도서벽지 사람들의 교육열을 보여주는 한 기념물로 평가받을만하다. 이 비는 조선 후기 향촌 사회사 연구와 오지 벽촌의 교육사 연구 및 사회변화를 살피는데 좋은 자료가 된다. " (디지털 진도문화대전)

 

(심충성님 사진)

 

강희 오십사년 계추 갑오 서(康熙 五十四年 季秋 甲午 書)

1715년 9월.

 

전면

학계에 참여한 박원순의 형제 6명, 친척 5명의 이름과 학문을 권장하는 글이 실려 있습니다.

 

상단. 학계원 11명

하단.학문 권장문

 

박 씨 10명. 이 씨 1명

 

 

후면

학계의 재산 목록(토지)을 기록하으며, 학계 창립 이후 1714년까지 30년간 25필지 1.7 결의 재산을 모은 것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비좌

 

비좌

 

비좌

 

비좌

 

비수

 

동백

봄날 남도를 자주 찾은 듯, 월출산 계곡, 장흥 천관사 등산로의 떨어진 동백꽃이 기억에 선명합니다.

 

유후각 마당의 낙화

 

학계안 입구

유후각에서 찍은 사진

학계안 철비는

조선후기  도서지방의 열악하고 척박한 지리적, 자연적 환경에도 불구하고 자녀 교육을 위한 진도 주민들의 향학열을 짐작 할 수 있는 철비입니다.

2020.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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