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덕왕릉興德王陵 흥덕왕(42대왕,재위 826~836)와 장화왕비의 합장릉 입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 권10에 의하면 “조정이 왕의 유언에 의하여 장화왕비의 능에 합장하였다(朝廷以遺言 合葬章和王妃之陵)”라고 했으며, 『삼국유사(三國遺事)』 왕력편에는 “능은 안강 북쪽 비화양에 있는데 왕비 창화부인과 합장했다(陵在安康北比火壤與妃昌花合葬)”라고 해서 왕릉의 현재 위치가 일치하고 있다"(네이브 지식백과)
안강읍 북쪽에 있는 어래산의 남동쪽으로 뻗어내린 구릉의 말단 완만한 경사면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신라 왕릉의 대부분은 경주분지, 남쪽의 산간에 위치하는데 그 연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흥덕왕릉은 북쪽에 위치합니다.
왕릉은 입구의 화표석 2주, 전면에는 문무인석 각 2분이 시립하였으며, 능 전후에 4마리 석사자가 호위하고 있습니다. 왕릉 전면에는 후보한 향로석, 큰 안상이 새겨진 상석이 놓여 있으며, 난간석이 둘러져 있습니다. 원형봉토분으로 석실분이며 둘레석에는 12지를 새겼습니다. 주지하듯이 12지상은 방위개념 뿐만아니라 무덤을 지키는 수호신입니다. 그리고 무덤의 주인공을 알려주는 비석의 귀부가 유존 합니다.
흥덕돵(?~836, 재위 826~836) "성은 김(金), 이름은 수종(秀宗)으로 수승(秀升)이라고도 하는데, 뒤에 경휘(景徽)로 바꾸었다. 시호는 흥덕(興德)이다.
정감이 가는 등 굽은 소나무. 사시사철 시간에 관계없이 방문객에게 즐거움을 주는 풍경입니다.
귀부 이곳에서 발견된 비편(경주박물관 소장)의 글로 인해 흥덕왕릉으로 밝혀졌습니다. 실제로 무열왕릉과 더불어 정확하게 무덤 주인공을 알 수 있는 왕릉 입니다.
훼손, 마모도가심하여 안타깝습니다.
귀갑분 등
꼬리 거의 묘사되지 않았습니다
화표석華表石(2) 정확한 명칭이 맞나요? 왕릉 입구를 표시하는 표시석으로 추정됩니다.
무인석(1) 괘릉의 문석인을 닮았습니다. 우리민족과는 다른 외모이며, 9세기 중엽의 패션이스트의 작품 입니다. 서역과 활발한 교류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에는 불교의 인왕상으로 추정하는 주장도 있다고 합니다.
동행한 분이 옆의 주머니는 여권 보관용이라고 재미난 표현을 합니다.
무인석(2) 무기를 잡은 두 손이 바뀌었을 뿐 거의 흡사합니다.
문인석(1) 무인석과 마찬가지로 콧수연, 긴 구렛나루와 턱수염이 우리 얼굴과는 다릅니다. 꽃무늬 관모를 쓰고, 꽃신이 압권 입니다. 김천 광덕동 석조보살 입상의 꽃신을 연상케 합니다.
무인석(2)
상석床石. 향로석香爐石
향로석 안상 석탑 안상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 입니다.
석사자(1) 전방 좌측
유일하게 왕(王)字가 새겨진 목걸이를 걸고 있습니다.
석자자(2) 후방 좌측
석사자(3) 후방 우측
석사자(4) 전방 우측
난간석
쥐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술
어? 돼지 사진을 찍지 않았군요.
삼국유사 Ⅸ-흥덕왕릉에서...이 령
1 짚대를 타고 내리는 빗물은 서두르지 않는다 또로록 또로록 내리는 낙수 나직이 흐느끼는 속울음처럼 면역 없는 그리움, 사랑이 천년의 봉분을 타고 저리 오래도록 깊고 서럽게 흐른다.
2 합장된 것은 몸 아닌, 마음이었다.
아라비아 푸른 눈을 베껴 한 발 아래 뛰어내리지 못해 한 발 뒤에서 우는 여인아 비가悲歌에 젖은 처용무처럼 자못 흔들리는 귀부의 몸돌 난간에 핀 저 제비꽃
덕이 흥하면 천국이요, 사랑이 멸하면 지옥이라지. 사랑이 움트는 일은 꽃이 피는 일. 철지난 말의 개화, 왕릉이 일어선다. 산 그림자 눕는 숲, 솔잎 침낭 들추며 나온 저 제비꽃
합장된 것은 금관이 아닌 한 사내의 순정이었다.
3 적막이 하도 좋아 나 그 적막에 들었네.
비雨, 땅에 떨어지기까지 꿈이었네. 사랑은 꿈꾸는 자들의 눈물. 비悲, 터진 비명은 더 이상 꿈이 아니네. 사랑은 살아있는 자들의 비상. 비飛, 한잔 술에 취해 슬픔을 말리며 하늘을 나네. 사랑은 꿈에서 깬 신들의 눈물.
적막이 좋아 적막에 드니 나를 취하게 한 그 적막, 사랑이었네.
4 비 그치자 달이 머리 위로 솟는다. 가래톳 돋는 밤꽃 향 분분하다. 천년 면벽에 든 돌부처도 벌떡 일어나 걸어 나올 것만 같은 밤. 무덤이 열리고 엎드려있던 자라가 기지개를 켜는 금오산, 신검의 부활인가? 산이 품은 그리움, 휙휙 휘리릭 귀신 새 소리마저 구슬프다.
5 세상 꼴딱 모르고 지나치고 말 발걸음을 귀신 소리가 불러 세워 밤이 하얗다 밤물 같은 어둠을 밝혀주는 목청 처음에는 낮은 속울음이었을 산이 품은 그리움 무덤을 싸안은 적막의 세월들이 소리를 높이게 했던가 보다 그리움에는 면역이 없어 발자국들이 점이 될 때까지 새는 부리에 허공을 달았을까 바람의 입을 빌린 나뭇잎, 밤마다 곡성에 쫓겨 사그락거리고 나는 산중을 헤매는 꿈을 꾼다 내 닿는 길마다 달빛 들어 마음의 그물을 깁고 비명의 시간들 차분히 목청 내려놓으면 귀신 새가 무덤가에서만 우는 이유를 그제서야 알 것만 같다. *삼국유사 제9장 배경설명
흥덕왕릉 – 통일신라의 능원 양식이 가장 잘 보존된 피장자가 정확히 밝혀진 왕릉이다. 정목왕후와 합장할 것을 유언한 흥덕왕에 의해 합장릉이라 봉분의 크기도 동시대의 왕릉보다 크다. 사랑의 크기가 왕릉의 크기로 내려앉은 곳, 서역인상의 무인석상과 빼곡한 소나무 숲이 무덤을 지키고 서 있다.
합장된 것은 금관이 아닌 한 사내의 순정이었다.
2020.01.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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