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경주시

경주...삼괴정三槐亭

임병기(선과) 2020. 1. 20.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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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괴정 三槐亭

강동면 다산리

경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운 동호(東湖)이방린(李芳隣) , 동생 유린(有隣) , 광린(光隣) 삼형제를 추모하기 위하여 7대손 화택(華宅)이 1815년(순조 15)에 건립한 건물입니다. 즉, 제향이나 강학 공간이 아니라 삼형제의 충절을 후손들이  본 받고 기리기 위한 염원으로 건립한 정자 같습니다.

 

 

외삼문

눈에 익숙한 문은 아닙니다.

 

팔작지붕이지만 추녀마루가 급격히 처지고, 용마루에 현수곡선이 뚜렷합니다.

왜 이렇게 무거운 느낌이 들도록 부재를 결구하였는지 의문이 듭니다.

 

 

외삼문 안쪽

 

 

삼괴정 三槐亭

독특한 형태의 건물입니다.


외삼문 옆에는 평상시에 출입하는 일각문이 있으며, 출입은 정면이 높아 뒤편 마루로 올라설 수 있는 구조 입니다.

홑처마 맞배지붕에 부섭지붕을 설치했습니다..


평면은 정면 3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 각 1칸 온돌방을 두고,  어간(御間) 뒤로는 마루 보다 높게 세로 2칸의 마루방을 둔 매우 특이한 평면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방에는 각기 현판을 달았는데, 어간  마루방은 필경재(必敬齋)라 하여 이방린을 의미하는데 상청(上廳)이라 부르고 있으며, 좌우측방은 화수당(花樹堂), 포죽헌(苞竹軒)으로 두 동생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누하주는 원형이며, 마루위 기둥은 팔각입니다.

좌우 협실 온돌방 아래는 아궁이가 있으며, 정면 창문은 들어열개문이 아니라 별도로 상부에 빗물방지용의 판문을 걸었습니다.

이층 마루끝에는 계자 난간을 설치하고 대칭의 궁판을 걸고, 궁창을 내었습니다.

우물마루이며, 연등 천장입니다.

 

 

측면 온돌방

방문 위 들어 열개형의 판문이 독특합니다.


빗물,햇볕 차단용일까요?


 

누하주

계자난간의 궁판과 궁창


 

누하주

그랭이가 보입니다.


 

궁판과 궁창

하부 궁창은 미적인 요소이겠지요.


상부 중앙 궁창속으로 어칸 상청 필경재의 창살이 보입니다.


 

측면

맞배지붕에 부섭지붕을 걸었습니다.



협실 측면 판문도 개방 할 수 있는 구조 입니다.

 

 

측면


 

필경재

삼괴정에서 가장 독특한 구조 입니다.

마루 끝 어칸 뒤쪽으로 세로로 2칸을 내었으며, 마루 보다 높습니다.

맏이를 기리는 공간이어서 위상을 높이기 위한 상징으로 생각됩니다.


필경재의 벽도 개방할 수 있어, 삼괴정 전체가 사방이 개방 가능한 구조 입니다.

사람들이 들어가는 우측(필경재 좌우)에 마루로 올라가는 출입문 있습니다.

 


삼괴정 三槐亭

1592년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동호 이방린(1574~1624)선생과 동생 유린, 광린 삼형제를 추모하기 위해 7대손 이화택이 1815년(순조 15)에 건립한 정자입니다. 이방린은 경주판관 박의장, 의병장 권응수 등과 함께 영천성 전투에 참가했으며 경주성을 탈환하는 데 공을 세웠고, 경주 계연(鷄淵)전투에서도 공을 세워 안동대도호부 판관 겸 부사(安東大都護府判官兼府使)를 지냈다고 합니다. 이유린은 훈련원첨정을 지냈고,이광린은 훈련원 봉사를 역임하였습니다.


"서기 1812년 순조 12년 임신년 봄에 정자를 짓기로 의논하고 목재를 구해 일을 시작한 지 2년 이듬해 계유년에 일을 마친 12칸 큰 정자로다." (삼괴정 안내문.삼괴정사적장)


또한

삼괴정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삼형제가 의병으로 출전하기에 앞서 현재의 정자터에 회화나무 한 그루씩을 심어놓고 출전한 것에 연유한다고 합니다.


삼괴(三愧)

"주(周)나라 때 삼공(三公)이 궁정(宮庭)의 느티나무 세 그루를 정면으로 향한 위치에서 조회(朝會)를 하곤 하였으므로 삼괴(三槐)가 삼공(三公)의 대명사로 쓰이게 되었는데, 송(宋)나라 때 정승 왕단(王旦)의 부친인 왕우(王祐)가 병부 시랑(兵部侍郞)으로 있을 적에 자기 집 뜨락에 느티나무 세 그루를 심어 놓고는 자신의 후손 중에서 분명히 삼공이 나올 것이라고 확신했다는 일화가 전한다"(출처/다음)


그리고

삼괴정에 비치된 삼괴정 안내서의 삼괴정사적장 三槐亭事蹟狀에 동일한 내용의 유래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괴나무에 얽힌 유래를 보면 옛날 왕진공의 삼괴당이 그 처음이요, 그 뒤에는 우리정자의 유래가 그리하고 우리 선조 삼형제 분이 어리실 때 괴나무를 심은 음덕은 바로 의로운 일이었고, 임란을 당하여 삼형제분이 동시 창의하시어 왜적을 섬멸하신 빛나는 전공을 세웠건만 조정으로부터 훈영작벌이 미치지 못 한 점은 자손으로 통탄할 이이오나 이또한 왕씨의 유래와 흡사하구나"


 

필경재 必敬齋

삼형제의 장자인 이방린 선생을 기리는 공간 입니다.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마루 보다 한 칸 높고, 뒤편으로 2칸을 내었으며, 상청上廳으로 칭한다고 합니다.


삼괴정 안내문 책자의 삼괴정사적장三槐亭事蹟狀에는 필경재의 유래가 실려 있습니다.

"옛날 주시에 이르기를 향리의 집둘레에 뿌리가 튼튼한 뽕나무와 오래도록 무성하다는 가래나무를 심은 뜻은 사람이란 반드시 공손함과 공경한 마음을 가지도록 가르친 바라,필경재必敬齋라는 편액을 그 뒷편에 붙이고..."


(필경재...동호회/투덜이님 사진)


창살

 


화수당 花樹堂

삼괴정 우측방 현판으로 막내인 이광린 李光隣 선생을 기리는 공간으로 생각됩니다.


삼괴정사적장三槐亭事蹟狀에 그 유래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서쪽당은 화수花樹라 이름하니 이는 옛날 위씨 가문이 한 달에 한 번씩 회합하는 자리라,의로움을 일컬음이요"


(사진...동호회/세종아빠님 사진)


포죽헌苞竹軒

좌측 방에 걸린 현판으로 둘째인 이유린 李有隣 선생을 기리기 위한 듯 합니다.


삼괴정사적장三槐亭事蹟狀에 실린 내용입니다.

"오른편은 포죽헌 苞竹軒이라 이름하여 독서예악을 즐기는 곳이 시송무죽포란 새로 지은 정자의 토대가 더부룩하게 자란 대나무같이 견고하고 상부의 치밀함은 무성한 소나무 같아라는 송사인 바"

 


외삼문 안쪽 삼괴정 뜰에는 회화나무 대신에 세그루 향나무가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여름날

사방을 개방하고, 청안 이씨 종손, 인문학자, 건축 전문가 들과 막걸리 곁들이며 한담을 나누면 더 없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제가 보태야 할 분야는 무엇일까요?

 

2020.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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