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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청송군

청송...보광사 삼층석탑

by 임병기(선과) 2019.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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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석탑

스님의 낭낭한 독경


10년

기억 저편 무너지기 직전의 요사는 말끔히 단장하였습니다


아래 옛글로 대신합니다.


 

 

삼층석탑

재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단층기단의 삼층석탑, 5층 석탑, 2기 이상 석탑 조합으로 막연하게 생각했었습니다.


복련의 기단

단층 기단부로 생각하였는데 석불 대좌로 추정됩니다.

왜냐하면

초층 옥개석으로 생각했던 부재가 기단 갑석이었기 때문 입니다.

즉,복련의 하층기단부와 상층기단부가 매칭이 되지 않기 때문이지요.

갑석 하부에 앙련이 없어 불대좌형 석탑도 아니어서 방형 석불의 하대석으로 생각됩니다.


(동호회 민학기님은 상대석에 앙련이 생략된 불대좌형 석탑이라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기단면석

통돌,우주를 모각


기단 갑석

물매가 있으며, 하부에는 부연이 깊게 표현 되어 있습니다.

상부에 굄이 생략 되었습니다.

상층 옥개석 층급받침이 4단 이나, 층급받침이 1단, 굄이 없어 초층 옥개석은 아닙니다.


탑신석

통돌로 양우주를 모각하였고


옥개석

1,2층은 층급받침이 4단, 낙수면 물매가 급하고, 상하 전각의 반전이 부드러우며, 1단 굄을 조출하였습니다.


3층 옥개석은 3단 층급받침,두텁고, 전각반전이 급격하여 옥개석 여부가 모호합니다.

-.2.3층과 비례가 맞지 않아 본래 5층석탑의 옥개석으로도 보이며.

-.3층 석탑 3층 탑신,옥개석이 결실된 석탑의 노반(이런 작례가 있는지 궁금)으로도 추정되며, 상부에는 찰주공이 있습니다.

-.또한,다른 석탑 부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조성시기는 고려 중기 이전으로 추정되며

우리카페 회원님들의 고견을 주시면, 글 첨삭 하겠습니다.


 

 

복련이 조식된 방형 부재

석불 대좌로 추정 합니다.


 

기단 중석


 

기단 갑석


 

기단갑석 부연.

 

 

최상층 부재

석탑 옥개석(?)

노반석(?)


 

상부 찰주공


 

삼층석탑

아니면 오층석탑이었을까요?


 

10년 전

천막으로 둘러쳐 빗물을 막았던 요사

새롭게 불사를 하였고, 구절초가 절정이었습니다.


2019.10.06 

아래는

2009년 글

 

 

 

진입로 공사로 네비도 무용지물인 산길끝 옛날과 오늘이 어울렁 더울렁 어울리는 보광사의 한 낮,  낯선 객의 방문에 요란하게 짖던 멍보살도 삼배하는 나를 보고 화답하듯 소리를 멈춘다. 허물어진 채 서있는 요사와 작은 산골절집에서도 위풍당당한 만세루, 객에게 손길을 내미는 극락전 중정의 아담한 석탑 한 기, 그 분위기 속으로 동화되고 싶었다. 

 

신라 문무왕 12(672)년 의상조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나 세종의 비 소헌왕후 심씨가 보광사 뒷산 청송 심씨 시조의 묘를 제향하기 위해 추모재와 만세루를 짓고 원당 사찰로 삼았다고 한다. 

 

"세종과 소헌왕후의 슬하에는 문종(文宗), 수양(세조(世祖)), 안평, 임영, 광평, 금성, 평원, 영응대군의 8남과 정소, 정의공주의 2녀를 두었다. 수많은 치적을 이룬 성군(聖君)으로 일컫는 세종과는 달리 왕비 소헌왕후는 영의정을 지낸 부친 청천부원군(靑川府院君) 심온(沈溫)이 태종에 의해 사사(賜死)되는 비운을 겪고, 세종 14년[1432년]에야 왕비로 개봉(改封)된다. 또한 자신 두 아들이 먼저 세상을 떠나는 등 다소 불우한 일생을 마쳤다. "

 

 

만세루. 사전 준비 없이 들린 까닭에 많은 사찰 루대처럼 당연히 부처의 뜻을 만세에 밝힌다는 뜻의 사찰 누문으로 생각했으며 작은 절집에서 너무 크게 배치되었다는 느낌이 들었었다.

 

 

그러나 보광사 만세루는 사찰 행사등의 본래 목적보다. 1428년 나라에서 청송 부사 하담에게 명하여 건립한 청송 심씨 시조묘의  문중제각으로 시조묘소 향사시 우천일 경우 이곳에서 봉전하였다고 전한다

 

결코 기분이 유쾌하지 않다. 가슴속 이야기도 있지만 진도는 여기에서 멈추어야겠다. 

 

가까운 청송 시내도 위 인물이 건립한 찬경루가 있으니 우리님들 답사시에 들려보길 바란다. "찬경루기(讚慶樓記)에 의하면 "이 누각에서 보광산(普光山)에 있는 소헌왕후(昭憲王后)(1395∼1446)의 시조묘(始祖墓)를 바라보며 우러러 찬미한다는 뜻에서 찬경루라 일컫는다"고 하였다. 정면 4칸, 측면 4칸의 중층(重層)집으로 '송백강릉(松栢岡陵)'이란 현판은 안평대군(安平大君)의 글씨이다. 세종대왕(世宗大王)의 왕자 8형제가 외가인 청송심씨(靑松沈氏) 시조를 위해 지은 집이다 한다."

 

 

보광사 주불전. 원당사찰 답게 극락전이다. 세종 10년(1428)에 지었다고 추정하지만 보수공사 중 만력(萬曆) 43년 12월 1일자의 상량문이 나왔으므로 1615년 건축으로 여겨진다. 막돌허튼층 기단위에 3칸* 3칸 규모로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덤벙주초, 두리기둥, 다포계, 겹처마, 어칸에는 팔각 불밝기창, 양협칸에는 띠살문 창을 두어 일반 민가 느낌이 강하게 든다.

 

 

어칸 팔각 불발기창은 흔치 않으며 산청 율곡사 대웅전에 있었으나 현재는 철거(?)된 것으로 안다.

 

 

어칸 창살

 

 

 극락전 후벽. 판문과 중앙 출입문이 보인다.

 

 

극락전 삼존불

 

 

영산회상도 탱화 상단에 탱화조성 복장이  걸려 있다.

 

 

우물천장

 

 

추모재 현판이 걸린 퇴락한 요사.

 

글쎄요?

 

 

언제부터 계셨나요? 스쳐간 인연이 많았을텐데. 두 기의 조합인지 5층탑의 4층 몸돌과 옥개석, 5층 몸돌이 멸실 되었는지 알 수 없다. 옥개받침은 3개, 지대석에 연꽃이 피어 있다

 

 

아담사이즈 석탑 옥개석 상부에 찰주공이 보여 까치발로 찰칵!

 

 

긴 세월 대하소설로도 모자라겠지요?

 

우리는 앎에 허기지는데...

 

 

요즘 자꾸만 눈에 들어오는 풍경.  절집 금당이 고향집 안방이련가? 

 

2009.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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