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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청송군

청송...주왕산 대전사

by 임병기(선과) 2015.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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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4일

초교동기들과 주왕산 다녀왔습니다.

답사기는 예전 글로 대신합니다.

 

 

 

 

 

 

 

 

 

 

 

 

 

 

 

 

 

 

 

 

 

 

 

 

 

 

 

 

 

 

 

 

 

 

 

 

 

 

 

 

 

2015.10.24

 

 

 

  

 

그게 언제였던가? 그때도 아련한 봄낮이었나? 전날 늦게 까지 음주가무를 즐기고도 7시간에 걸친 주왕산 산행을 가뿐하게 했었다. 그때가 인생의 봄날이었나?????!!!!!!!!! 오늘은 양복을 입고 구두를 신었으니 땀 많은 중생 꼴 가관이 아니다. 그래도 내좋은 걸 어떡하우?

 

주차비가 왜이리 비싼겨? 너무한다는 생각!! 내경우에는 차라리 사찰 입장료로 받는다면 기분 좋게 보시할텐데, 입장료는 별도로 또 징수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분주한 사하촌  먹거리 넘치는 저자거리 풍경을 싫어했지만 이제는 사람사는 냄새로 다가온다. 인간적이라는 표현으로 미화하고 싶지만 세월의 연륜(?)을 포장한다고 드러나지 않겠는가. 그나저나 동동주 한 주발 마실 수 없는 고통은 애별리고와 다를바 뭐 있을소냐!!!

 

대전사에 전해오는 창건 설화를  사찰정보에서 옮겨온다. 전해온다. "[주왕내기]에 따르면 당나라의 주도라는 사람이 스스로 후주천왕이라 칭하고 군사를 일으켜 당나라에 쳐들어갔다가 패하고 신라로 건너와 주왕산에 숨었다. 당나라에서 없애주길 부탁하여 신라에서 마장군 오형제를 보내 주왕의 무리를 없앴다고 한다. 그 뒤 주왕이 숨었던 산을 주왕산이라 하고 절은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의 이름을 따 대전사라 하였다는 것이다.

  

다른 설화는 신라의 주원왕이 수도했던 산이라 그렇게 부른다는 설도 있다. 주원왕은 태종 무열왕의 8대손인 김주원으로 김주원은 원성왕인 김경신에게 밀려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이곳에서 수도하다 지금의 강릉인 명주로가 강릉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는 것이다."

 

 

대전사는 신라 문무왕(文武王) 12년(672)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보광전은1976년 중수 시 발견된 상량문에 의하여 그 건축년대(1672년, 강희 11년 임자 5월초 119일, 현종 13년)가 밝혀져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조선 현종 13년(1672)에 중창하였음을 알 수 있다.

 

 

대전사 극락전. 최근에 보물로 지정되었다. 3칸*2칸, 정면은 겹처마 후면은 홑처마와 중앙.측면에 문을 두어 실용성을 강조 했다. 다포계, 맞배지붕 전각으로 1672년(현종13)에 지어진 대전사 금당이다. 비로자나불이 주불이어야할텐데 석가모니 삼존불을 모셨다. 

 

보광전은『화엄경』의 7처9회 설법중 제2처와7, 8처가 보광명전인데 아마도 보광전이란 이름은 여기서 유래한 것으로 본다.우리 님들에게 7처9회 이야기는 장곡사 상하대웅전 답사기에서 언급했지만 다시 가져온다.

 

"여러가지 추측이 난무하지만 하대웅전은 우리들이 사는 사바세계를 상징하여 중생의 질병을 치유해주는 세계이며, 상대웅전은 정토세계를 조성하여  출가한 스님들이 게으름이 없이 수행에 용맹정진하는 깨달음 공간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또하나의 설은 석가모니부처님이 화엄경을 지상에서 3회, 천상에서 4회를 설법한 사실을 묘사하여 상대웅전은 천상의 세계 하대웅전은 지상의 세계를 의미한다. 하지만 어느설도 정설로 수용되지는 않고 있다." 

 

술냄새 풍기는 일단의 관광객의 소란스러움이 싫어 법당안을 살피지 못 했지만 우리님들은 내부단청과 벽화도 놓치질 말길 바란다.

 

 

 보광전 화강석 기단.흔치 않은 고식이다.  문경 대승사. 동화사 금당암 기단에서도 볼 수 있다.

 

 

덤벙주초,두리기둥, 띠쌀문 창살

 

 

삼존불 정확히는 삼세불로 1672년 (현종13)에 조성된 석가여래를 제화갈라보살, 미륵보살이 협시하고 있다. 주불 대좌는 세마리의 사자이며  협시보살은 연화대좌이다. 석가모니 좌대를 사자좌, 설법을 사자후라고 한다. 그 상징인가?

 

 

 부드러운 지붕 선線.

 

 주왕산 암산의 강함을 부드러운 기운으로 느껴지게 한다.

 

 

 명부전.  맞배지붕에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로 근래에 지었다. 

 

 

안에는 금동 지장상을 좌우에 협시하는 석조도명존자 · 무독귀왕상, 그리고 석조시왕상 10위와 사자(使者) · 시자(侍者)·장군상 각 2위씩이 있다.  

 

 

명부전 지장탱. 19세기 초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있는 작품이다. 지장보살의 머리에 원형의 두광, 신체에 키모양에 가까운 신광이 둘러져 있고, 채색이 짙어지고 물감이 두껍게 칠해지는 경향이 현저하다.

 

 

보광전 삼층탑. 얼핏보아도 어색하다. 이유가 뭘까? 자료도 거의 없다. 대부분 간략히 소개된 자료에는 주위에서 석탑 부재를 수습하여 쌍탑으로 조성되어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쌍탑을 단탑으로 보수 했을까? 단탑이었을까?

 

 

하기단 면석 정체불명의 조형물.

 

가릉빈가, 주악비천상. 사자. 우리님들에게는 무엇으로 다가오나요?

 

 

옛자료에는 탑 한기 면석에 사천왕상이 보이고, 다른 탑의 탑신에 석불이 있다고 했다.

 

 

 현재 복원된 외형으로는 단탑의 맞을 듯하다. 신장상 인가?

 

 

탑신과 옥개석 부재. 옛부재와 복원 부재가 뚜렷이 구분된다. 탑신에는 양우주, 옥개 받침은 4단이다.

 

 

석탑 앞의 배례석. 연화문 문양을 탑 정면으로 향하고 길게 조성 예배처 용도를 분명히 알 수 있다. 우리님들 이제는 왜 이탑이 어색해 보이는지 아시겠나요?

 

마치 키작은 씨름 선수를 본 듯 하지요? 그렇습니다. 1층 몸돌을 너무 낮게 복원하여 안정감보다는 비례미와 체감률이 떨어짐을 알 수 있습니다.

 

 

주왕산에는 수달래 전설이 전해온다. 주왕이 마장군 형제의 공격을 맞아 주왕과 휘하 장졸, 식솔들이 죽고, 잡히며 흘린 피와 눈물이 주방천을 따라 흘러 내려가 그 이듬해 봄부터 그때까지 없었던 꽃이 계곡을 따라 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 꽃을 주왕의 생명이 끊어져 태어난 꽃이라 하여 수단화(壽斷化)라 불렀는데, 이것이 오늘날 수달래(水丹化)로 변했다. 수달래는 진달래와 비슷하나 빛깔이 더 진한 편이며, 특이한 것은 꽃이파리 하나에 반드시 20여개의 검붉은 반점이 있다고 한다.

 

청송군에서는 매년 수달래가 흐드러지게 피는 4월 말 ~ 5월 초에 기암 절경과 맑디맑은 주방천 계곡 일원에서 수달래제를 개최하여 주왕의 넋을 기리는 제례를 올리고, 주방천 맑은 물에 연분홍 수달래꽃잎을 띄워보낸다고 한다.

 

2009.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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