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죽림사지 석등대좌 답사 길에 석탑이 보고싶어 들렸습니다. 옛글이 2005년 12월에 작성되었으니 거의 강산이 두 번 바뀐 후 다시 찾았습니다. 가까운 옛님에게 지나치게 무심했나 봅니다.
석불입상 대좌는 후보물이며 1매 판석에 조성된 분이다. 두부는 절단된 것을 다시 모셨는지, 후보한 불두인지 모호합니다.
일석인 주형 광배 소발에 육계가 낮고, 삼도 여부는 불투명 합니다.
시무외인 여원인 두발은 가지런하게 법의 속에서 발가락만 내밀었습니다. 고려시대 불상으로 전하지만 조선시대 석불입상으로 추정됩니다.
보광루 낯이 섭니다.
2005년 당시에도 보광명전이 있었던 것 같 습니다.
본래 보광전입니다. 2005년 글에는 현판이 없었으며, 지장보살을 모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영산전 현판을 걸었습니다.
오층석탑 이중기단의 오층 석탑으로 현재는 4층 탑신석과 옥개석이 결실된 고려 탑입니다. 지대석 2단 별석이며 후보 하층기단 저석과 중석이 일석이며, 저석은 2단의 높은 지대석 때문에 아주 낮게 표현하였고, 중석에는 안상속에 귀꽃을 조식하였습니다. 갑석상부에는 2단 굄을 조출하였습니다.
상층기단 중석은 감입식으로 결구하였으며, 탱주 1주, 양우주를 모각하였습니다. 갑석은 후보물로 추정되며, 부연이 생략되었고 탑신 굄은 3단 입니다
전층 양우주를 모각하였으며, 초층 탑신석에는 자물쇠와 중수 일정이 음각되어 있습니다 4층 탑신석이 결실된 상태 입니다.
옥개석 낙수면의 물매가가 급하고, 탑신괴임이 없으며, 층급받침은 5층을 제외하고 전층 4단 입니다
상륜부 노반석은 2매이며, 상단 전각은 반전이 있습니다. 기타 부재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하층기단 안상속의 귀꽃이 좌우는 같으나 중앙은 다르게 표현하였습니다.
안상 귀꽃
중석 감입식 결구. 탱주 1좌. 양우주
초층 탑신석. 문비와 자물쇠 우주의 명문 강희30년신미3월1일 (康熙三十年辛未三月).1691년 중수(重修)
문비 좌우 명문은 미확인
탑신과 옥개석 옥개석 4단 층급받침
옥개석 낙수면 물매가 급하고, 상부 탑신괴임 생략
5층 옥개석 층급받침 2단
노반석 2매로 조성, 상단 모서리 반전
노반석 위 복발,보주로 추정
배례석. 좌우 2개 안상 있음
영산잔(1690년?)
석가여래삼존 후불벽화. 아미타도는 1736년 조성되었으나 진본여부는 확인하지 못햇습니다.
나한상
맷돌.조선시대
이른 시간 아침 청소로 분주한 비구니 스님들 한결 같이 인사를 하시고 묻는 말에 웃으면서 답을 주시더군요. 세간에 들려오는 이야기는 잘못된 정보인 듯 합니다
2019.06.08 |
아래는
2005년 글
대구에 사는 사람들은 숱하게 스쳐지났을 군위에는 숨겨진 보물이 가득한 고을이다. 팔공산 자락의 군위 삼존불, 한밤마을, 마을안의 대청, 대율리 석불입상, 삼국유사의 고향 인각사, 화산산성을 비롯한 많은 성곽 등이 산재하고 있다.
하지만 '잊혀저 서러운 문화유산'을 찾는 동선이기에, 언제라도 좋은 그 곳들을 오늘은 건너 뛴다. 후삼국 때 후백제 견훤을 치러가는 태조 왕건의 군사가 위세가 워낙 당당하여 軍威로 명명되었다는 그 루트를 갑장의 여인네와 동행이기에 추운 겨울날이건만 나의 위세도 당당하지 않을까?
사찰명으로 비로자나불이 주불일 것이라는 건방진 생각에 법주사에 이르니, 산골의 작은 절집으로 짐작한 나의 판단을 무색케하는 현대식 가람이 턱하니 버티고 객을 맞이한다. 주불전인 중창불사한 보광명전을 피해 300년전 중수한 예전의 주불전이었건만 현판마져 없는 보광명전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옛보광명전, 오층탑
고운사의 나한전처럼 법주사의 옛보광명전도 새로운 전각에게 주인자리를 내어주었건만, 후처가 아름답기만 한듯이 말없이 지켜보고 웃음 짓고 있다. 잠긴 문틈을 들어다보았더니 아무런 장식없이 지장보살님이 외롭게 불단에 서계셨다.
전각의 영화를 지켜보았을 5층탑 1층 몸돌 모서리기둥에는 청나라 연호인 강희 30(?)년에 중수했다는 명문으로 미루어 약 300년전 법주사에는 대불사가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지대석, 상기단 갑석을 복원하였으나,옥개석과 몸돌의 비례로 미루어 4층 몸돌,옥개석은 멸실되어 노반석이 5층 몸돌처럼 보인다. 1층 몸돌에 비해 2층 이상의 몸돌의 체감이 급격하며 예쁜 자물쇠도 1층 몸돌에 새겨져 있다.
오층석탑옆 배례석(?)
오층탑 옆에는 배례석(?)으로 보이는 정체불명의 장방형의 화강암이 놓여 있다. 위치로 보아 본래의 자리는 아닌듯하지만, 연꽃문이 닳도록 저토록 정성을 들인 까닭은 틀림없이 민간신앙, 기자신앙의 흔적일 것이다.
법주사 왕맷돌 법주사 아랫동네서 발견된 왕맷돌은 어느시절 대가람임을 알려주기나 하려는 듯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맷돌이며 윗돌에 아래위로 구멍을 4곳에 뚫어져 오늘날 맷돌 어처구니와는 다른 형태, 즉 밧줄로 묶었는 듯하며, 곡식을 밀어넣는 구멍도 상판에 4개나 있다. 법주사 입구 석불/천년의문님 사진
나오는 길에 조선 후기의 민불처럼 보이는 석불을 만났다. 모르긴 해도 종교적인 숭배대상보다는 어쩐지 방위신, 사찰장승, 또는 비보책으로 조성된 것으로 보였다.
2005.12,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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