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양산시

양산...용화사 석조여래좌상

임병기(선과) 2019. 5. 13. 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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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그때는 강가로 접근하여 경부선 지하통로를 통해 들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늘

신흥사 부도 뵈러 가는 길

용화사 이정표를 보고 달넘새님이 광배뒤 배면불 확인하고 가자며 제법 경사진 진입동선을 따라 차량으로 도착하였습니다.

 

 

석조여래좌상

대좌와 광배가 비교적 완전하게 남은 통일신라 하대 불상입니다.


강 건너

김해 상동 감로사지 태생 입니다.

동시대에 함께 했던 님들과, 조선시대까지 향화를 피웠던 스님들의 부도는 고향을 떠나 동아대학교 야외박물관에 전시중입니다.



감로사지 석탑.



감로사지 부도



감로사지 귀부


 

나발, 육계는 낮고, 상호는 방형,눈동자를 잘 못 그려 여래상이 무서운 느낌이 듭니다.

귀와 입은 작고, 코는 큽니다.


짧은 목에는 삼도를 표현하였고, 법의는 우견편단,, 불신에 비하여 팔이 굷은 편이며, 허리 곡선이 드러나 있습니다.

길상좌의 하반신이 높아 안정감을 주며, 수인은 항마촉지인입니다.


 

 

기단부

하대석 상단석에는 복련을 조식하였고, 팔각의 삼단 굄을 조출하였습니다.

하대석 하단석의 별석으로 조성하였습니다.


 

팔각 중대석

면마다 공양상(?)을 봉안한 듯 보입니다.


 

상대석

앙련을 표현하였고, 하부에 2단 받침을 두었습니다.


 

광배

주형거신광으로 신광과 두광을 새기고

외연에는 좌우 대칭으로 상단에는 비천상, 하단에는 공양상을 표현하였으나, 안타깝게도 좌측 하단의 공양상은 시멘트로 보수하여 확인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작례는 흔치 않으며, 합천 청량사 석조여래좌상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광배 상단 화불


 

광배 배면

사진 촬영이 어려운 환경입니다.


 

육안으로는 구분할 수 없습니다.


(김환대님 제공)


광배 뒷면 천인상 입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 현재까지 알려진 배면불(보살,불도구)은 20분이며,문화유산자료실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아미타회상도.1849

광배 뒤편에 봉안

화기(棲山通度寺華嚴殿 大九品會中造成奉)에 의하면 양산 통도사 화엄전에 봉안하였던 불화입니다.

조성시대(道光二十九年己酉十) 도광 29년은 1849년 입니다

 

畵記

道光二十九年己酉十」月日梁山郡北嶺鷲」棲山通度寺華嚴殿」大九品會中造成奉」安于夲菴」證明秩」聖谷堂愼旻」晦山堂補慧」大雲堂奉冾」清潭堂遵一」布雲堂閏褧」誦呪秩」月峯堂有幸」龍岳堂正基」錦潭堂秀演」慈菴堂震玄」慈月堂快曄」嶋峯堂奉寬」誓度堂元贊」道訓」杜見」一願」金魚秩」錦庵堂天如」應月堂善和」彩宗」斗成」玩玘」都監大雲堂奉冾」別座性千」化主丹巖堂取善」獨辦大施主東來府」西部北下里居住」己酉生金氏」



아미타회상도(사진출처/문화재청)

 


현왕도 1919

화기에 의하면 1919년 물금 역전 미륵암에 모셨던 불화로 용화사의 전신이 미륵사인지는 확인하지 못햇습니다.

조성시기(應化二九四六」大正八年) 응화2946년은 1919년 입니다.

 

畵記

慶南梁山郡」勿禁驛前彌」勒庵佛事時」緣化秩」證明比丘」海曇致益」金魚比丘」楓湖慧察」華應享真」持殿允冾」誦呪」化主」比丘」◍◍◍◍」供司應允」奉茶◍◍」施主全佑燮」金商襟華」應化二九四六」大正八年」十月十二日點眼」奉安于」本壇」
 

 

2007년

2019년

다시 기회가 올까요?


되돌아 뵐 옛님은 끝도 없고...

 

2019.05.06

 

아래는

2007년 글

 

  

 

부산출장 귀사길. 계획에도 없었던 용화사.신흥사 대웅전 이정표가 눈에 들어와 급히 핸들을 돌렸다. 칠백리를 달려온 낙동강물이 지친 숨을 고르며 먼바다를 만나려는 강가 넓지 않는 소로을 거슬러 용화로 향했다. 봄날이든 여름날이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고운님과 걸어도 좋을 풍광이 펼쳐진 길 끝 정수장이 가로막고 있다.

 

근무자와 공사인부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느끼며 미로처럼 보이는 경부선 철길을 관통하는 터널을 거쳐 작은 절집 너무도 고즈넉해보이는 인적없는 용화 중정에 이른다. 고즈넉? 어림도 없었다.무자비하게(?)굉음을 내며 달려가는 기차 소음에 절집이 살아 있다는게 신기하다.

 

스님도 출타중인 빈절집에는 고양이가 주인이 되어 객을 친절히도 마중한다. 졸졸졸 뒤를 따르는 고양이는 법당문을 열자 재빨리 앞서 들어가 불상앞을 지킨다. 허튼짓 하다가는 그만두지 않을 태세이다. 용화사는 불쑥 강변에서 솟아난 불상을 모신 사찰로서, 대웅전 석조여래불을 마을사람들은 미륵님이라 부른다고 한다. 


 

최근에 일부 보수된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불상으로 알려진 석불은 항마촉지인, 거신광배는 화려하다.

유난히도 곱슬한 머리, 신체는 앞으로 기운듯 하다.

설명문에는 광배 뒷면에 하늘에서 하강하는 천인상 2구가 음각되어 있다고 하여 유심히 살펴도 눈으로 확인할 수 는 없었는데, 통일신라 불상 가운데 광배의 후면에 공양천인상이 조각된 것은 이 불상이 유일한  예로 알려져 있다.  


 

 

"불상은 원래 김해시 상동면 감로사지에 있었다가 용화사 근방의 낙동강변에 있던 것을 1947년 2월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고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높이 2.23㎝의 중형의 불상으로, 현재 보물 제491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좌는 지대석, 복련과 팔각 중대석, 앙련석을 놓은 상대석을 갖추었고 중대석에는 여래상과 공양천인상을 새겨놓았다. 

 

 

대웅전을 새로히 불사를 할 수 없다면 사진에 보이는 삼성각 뒷편 언덕에라도 전각을지어 소음에 지치고 철길 방음벽 때문에 시야가 막힌 석불에게 자리를 내어주면 좋겠다. 사는 사람의 편의가 가장 우선되는 시절이지만 천년넘게 자리를 지켜온 석불을 우리맘대로 구속할 수는 없지 않을까?

 

처음부터 나를 수행(?)하던 고양이가 보인다. 내가 절집을 나가는 것을 보고는 다시 중정으로 향한다.

득도한 나비가 분명해 보인다 ㅎㅎ

 

 

가장 수려한 위치에 자리하고서도 갖힌 용화사.

주출입동선이 있겠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언제쯤 저 불빛처럼 용화사에 빛이 들어 본래 모습으로 돌려줄 수 있을지... 

 

2007.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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