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상주시

상주...초오리사지 삼층석탑

임병기(선과) 2019. 2. 27.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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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 상주 캠퍼스에서 수다사로 내려오는 길

문득 초오리가 생각나서 10년만에 다시 찾았다.


체육관 공사 때문인지 분위기가 낯설었다.

더구나 어린이 동산 처럼 꾸민 곳에 일본 양식의 석등 2개를 세워두었어니

기가 찰 노릇이다!

 

예전 글로 대신하며 사진 몇 장 올린다.

 

안타깝게도

무곡리와 안창리는 떠올리지 못하고 스쳐 지나왔다.

 

기억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 나의 장점이었는데...

 

 

옥개석 3개만 본래 부재이다.

그렇더라도 복원이 영...


 

 

 

 

 

 

 

2019.02.25 

 

아래는

 2009년 글이다.

 

 

오늘 마지막 답사지 공성면으로 향하는 언제나 그러했듯 발걸음이 무겁다.

공성면 초오리 사지에 위치 했던 탑을 1977년 옥산초교 교정으로 이건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교육부 주관으로 전국 학교에 위치한 문화재 목록을 작성하여 배포하여도 훌륭한 자료가 될 것인데 두드려봐도 메아리만 공허하더라.

 

 

문화재 총람 자료이다. "

일제시대에는 이 석탑이 온전하였다고 하며 일본인 경찰이 이 석탑을 도괴시키고 속에서 금색(金色)이 찬란한 사리장치(舍利裝置)를 훔쳐갔다고 한다. 현재 삼층석탑으로 복원된 이 석탑은 옥개석 3매만 원 탑재이고 나머지는 최근에 만들어진 것이다.

 

화강암제인 옥개(屋蓋)는 받침이 모두 4단이며 전(轉)·앙각 (仰角)이 뚜렷하다. 그리고 각 옥개의 상부에는 각형(角形)의 옥신받 침이 1단으로 마련되었다. 탑의 양식과 치석(治石), 조성 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 중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기단 면석과 갑석을 좁게 복원하여 기형의 석탑이 되었다.

몸돌도 폭이 아닌 높이로 비례(?)를 맞추었는지 키 큰 싱거운 모습으로 신라계열 석탑의 안정감은 물론이고 고려탑의 상승감과도 거리가 멀다.

 

 

교정의 100년 수령의 아카시 할배 나무. 옥산초교 졸업생에게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은 탯자리로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잊혀지지 않은 풍경, 사람, 고향이 남아 있음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우리 세대는 절감하고 있다.

 

 

공성면 무곡리 석탑.

마을 제일 안에 위치 하였다. 이탑은 복원하면서 잘못된 부분도 보이지만 문화재청의 설명 오류를 복사해서 옮긴 까닭에 인터넷상 모든 자료가 엉터리 같다. 

"탑신(塔身)의 1·2층 몸돌이 없어지긴 하였으나,그 외에는 완전한 3층 석탑으로 추정되는 부재를 갖추고 있었고, 1991년 탑을 복원하여 다시 세우면서 2층 기단(基壇)에 3층 탑신(塔身)이라는 구조를 갖추게 되었다. 탑신의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겼다. 두툼한 지붕돌은 네 귀퉁이가 치켜 올라갔으며, 밑면에 4단의 받침을 두었다. 남아 있던 부재들의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위의 문화재청 홈페이지 설명을 보고 처음에는 내가 잘못 본 줄 알았다. 무곡리 석탑은 1.2층 탑신이 아니라 2.3층 탑신이 멸실 되어 복원하였다.

 

 

1층 탑신. 본래의 몸돌로 문비가 새겨져 있다. 폭이 좁아 문비가 탑신에 비해 커 보인다.

자물쇠와 손잡이를 그렸는데 손잡이는 벽사 의미의 도깨비인가?

 

 

기단 안상으로는 영동 영국사, 경주 무장사지, 팔공산 기성동 석탑, 경북대 야외 박물관 석탑 안상처럼 큰 편에 속한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요? 예전 영국사의 뒤집힌 안상이 되살아 난 것 같다.

상주시청은박물관 신축도 좋지만  관내 문화유산에 대한 점검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요?

 

문화재청 소관 업무인지는 모르지만 자기 집안  재산을 주인이 모르면 어떻하나요? 바로 뒤집힌 안상을 재복원하였으면 좋겠습니다. 

 

 

하기단에도 안상이 있었다.

 

 

제모습을 갖추었다는 소식이 바람결에 전해오면 다시 찾겠습니다.

 

 

공성면 인창리 탑곡. 동선에는 포함되지 않았으나 비지정 문화재 위치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동행인의 도움으로 찾아 든 마을에는 추운 겨울 날씨 탓에 인적이 끊겨 온동내를 헤매었다. 결국 마을회관에 들려 할머니의 안내로 찾을 수 있었다.

 

-. 할머님. 마을에 탑을 보러 왔습니다.

-. 그 탑 안 팔 건데

-. ....(모르긴 해도 탑을 사려는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다)

 

 

주인이 출타중인 빈 집 담장 곁에서 사람이 그리웠다는 표정으로 우릴 반긴다. 화려했던 옛시절 영화가 그립지만 그보다도 더 서러운 것은 잊혀져 가고 있는 현실이라고 나직히 말을 건낸다. 이제 우리가 지켜 주어야 한다. 보호가 어렵다고 방치해서는 부끄러운 모습 아닌가?

 

 

단층기단에는 우주. 탱주가 모각되었다. 파손이 심한 기단 갑석위 초층 몸돌에는 깊게 감실히 파져 있으며 옥개받침이 네개인 초층 옥개석 상부는 멸실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마을 주민과 집주인의 동의를 구하여 박물관으로 이건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탑골 마을 느티나무 아래에서 작별을 고했다.

 

한파를 무릅쓰고 함께한 우리님들 즐거운 하루 였습니다.

 

2009.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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