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경주시

경주...골굴사 마애여래좌상

임병기(선과) 2018. 10. 29.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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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만에 다시 들렸다

너무 무심했구나.

 

2003.10.18 글을 가져왔다.

 

가던 길을 되돌아 나와 골굴암으로 향한다.
흔히들 중국의 돈황석굴에 비하지만 그건 사대의 발로일 뿐 그냥 우리의 흔치 않는 석굴사원으로 바라보자.

근래에 전통무예인 선무도로 널리 알려진 골굴암은 석회암 바위덩어리에 가람을 배치한 것으로 여기며 접근해보면 누구든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지금도 산중턱 마애불에 산화와 자연재해로부터 석불을 보호하기위해 차양막을 설치되어 있지만 입구의 안내문에 의하면 “조선시대 산수화가 겸재의 경주 석굴도 에는 목조전실이 있었다“라는 것으로 보아 당시에도 훼손이 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안내문을 지나면 얕은 동굴 안에 지장전이 보이며 관음굴 입구 산신각 앞에는 참으로 기분 좋은 글귀를 만난다.
산신각 뒤쪽의 전혀 남근석 같지 않는 바위와, 약간은 여근석을 닮은 바위를 설명하기를 “자손 귀한 집안의 부녀자들이 남근석에 참배하고 여근석을 소제한 후 그 위에 앉아 밤새워 기도하면 이날 부녀자의 여궁에 정수가 가득 고여
...“,

뭐 특별히 기분 좋은 글귀가 없다고요?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스님이 직접 쓴 안내문 마지막에 그 흔한 -주지-라는
말 대신에 산에 있는 중 즉 “山僧”이라는 말 어때요?

 

골굴암에서 가장 깊고 역사책에서도 법당굴로 명기한 자연 석굴 관음전을 지나면 본존불인 아미타 마애불이 오른쪽에 연화문의 두광, 긴 귀와 가슴부위의 습의, 백호 를 잃어버렸지만 소발, 두툼한 입술, 화염문 거신광을 갖춘 체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계신다.
바위의 재질로 보아 훼손이 우려되는 것은 함안의 방어산 마애약사여래불과 다를 바 없지만 통풍이 가능한 전각이 있어 다소 안심이 되며, 멸실되고 없는 오른쪽 수인이 항마촉지로 여겨지나 골굴암 측에서는 아미타불로 명기해 놓았다.

 

여타 책에서는 마애불로만 설명해지만 우리나라의 자연석굴의 시원이며 최초의 항마촉지 수인의 석불인 군위의 제2석굴암 본존불 역시 항마촉지의 수인이나 협시불로 인해 아미타불로 불려지니 크게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지 않은가. 마애불을 내려오면 얕은 석굴마다 전각 푯말을 세우고 보살과 부처를 모셔 두고 있어 바위 전체를 사찰로 생각한 나의 생각도 영 엉터리는 아닌 듯 하다.


머물고 싶지만 관광버스로 도착한 한무리의 참배객의 소란스러움이 싫어 긴 시간 머무르고 싶던 마음이 사라져 기림사로 길을 재촉한다. 덕동호를 감싸고도는 굽이 길을 지나며 예전의 도로를 거쳐 추령재를 넘어가야지 몇 번이나 다짐을 했음에도 우매한 이놈은 방향을 놓치고 터널을 지난다. 수없이 다녀온 길이라 익숙할 법도한데 괜히 설레며 불국사, 석굴암 이정표를 보고 장항리 마을을 지나 장항리사지로 향한다.

 

 

 

 

 

 

 

 

 

 

 

 

 

 

 

 

 

 

 

 

 

 

 

 

2018.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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