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월성.석빙고 대부분 답사객이 그러하겠지만 마지막 들린지가 20년은 훌쩍 지나간 듯 하다. 오늘도 무장사지를 비롯 폐사지 몇몇 곳 답사를 위한 발걸음이지만 일전에 김환대님이 알려 준 석빙고 환풍구의 석탑옥개석을 확인하기 위해 잠시 들렸다.
반월성半月城 "둘레 2,400m. 사적 제16호. 현재 부분적으로 성벽과 성안의 건물지가 있다. 이 성은 모양이 반달 같다 하여 반월성(半月城)·신월성(新月城)이라고도 하며, 왕이 계신 곳이라 하여 재성(在城)이라고도 하는데, 성안이 넓고 자연경관이 좋아 궁성으로서의 좋은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101년(파사왕 22)에 쌓은 것으로 둘레는 1,423보(步)라고 되어 있다. 이 기록으로 미루어볼 때 궁성으로 월성을 쌓은 뒤 금성(金城)에서 이곳으로 도성을 옮겼음을 알 수 있다. 이 성은 신라 역대 왕들의 궁성이 되었으며 나라가 커짐에 따라 부근 일대가 편입되기도 하였는데, 특히 문무왕 때 안압지(雁鴨池)·임해전(臨海殿)·첨성대 일대가 편입, 확장되는 등 신라의 중심지였다. 동서길이 900m, 남북길이 260m이며 성 안의 면적은 약 19만3845㎡나 된다. 성벽의 동·서·북면은 대체로 흙과 돌로 기초를 다져 쌓고 그 위를 점토로 덮었으며, 남면은 절벽인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여 거의 쌓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동경잡기 東京雜記≫에 의하면 290년(유례왕 7) 큰 홍수로 인하여 월성이 무너져 이듬해 보수하였으며, 487년(소지왕 9) 다시 왕이 이곳으로 이거하였다고 한다. 원래 월성 안에는 남문과 북문격인 귀정문(歸正門)·북문·인화문(仁化門)·현덕문(玄德門)·무평문(武平門)·준례문(遵禮門) 등의 문과 월상루(月上樓)·망덕루(望德樓)·명학루(鳴鶴樓)·고루(鼓樓) 등의 누각, 왕이 정사를 돌보던 남당(南堂 : 都堂), 신하의 조하(朝賀)를 받고 사신을 접견하던 조원전(朝元殿), 삼궁(三宮 : 大宮·梁宮·沙梁宮)을 관할하던 내성(內省) 등 많은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지고, 1741년 월성 서쪽에서 이곳으로 옮겨 만든 석빙고(石氷庫, 보물 제66호)만 남아 있다. 또한, 경주석씨(慶州昔氏)의 시조를 모시는 숭신전(崇信殿)도 있었으나 1980년 석탈해왕릉(昔脫解王陵) 남쪽으로 옮겨졌다. 동쪽의 명활산성(明活山城), 서쪽의 서형산성(西兄山城, 일명 仙桃山城), 남쪽의 남산성(南山城), 북쪽의 북형산성(北兄山城)이 나성(羅城)으로 호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석탈해가 원래 호공(瓠公)의 거주지인 이곳을 거짓꾀를 부려 호공을 몰아내고 차지하였다는 전설이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발굴중
해자 垓子 석빙고. 반월성내에 위치.얼음을 보관하던 창고 "보물 제66호. 월성 북쪽의 성둑을 잘라서 남쪽에 입구를 내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바닥을 경사지게 하고 물이 밖으로 배출되도록 바닥 중앙에 배수로가 설치되었다. 내부는 동서로 홍예(虹霓: 무지개 모양의 문) 5개를 틀어올리고 홍예와 홍예 사이에 장대석을 걸쳐서 천장을 삼았고, 북쪽 벽은 수직으로 쌓았다. 홍예와 홍예 사이 천장에는 세 곳에 배기공을 설치하였는데, 현재 배기공 위에 덮어놓은 석재는 근래의 수리 때 석탑의 옥개석을 사용한 것으로 원래의 것은 아니다. 출입구는 높이 1.78m, 너비 2.01m로 만들고 계단을 설치하여 밑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이 빙고 옆에 있는 석비에 의하면, 1738년(영조 14) 당시 부윤이던 조명겸(趙明謙)이 목조의 빙고를 석조로 축조하였다는 내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고, 빙고 입구 이맛돌에는 ‘崇禎紀元後再辛酉移基改築(숭정기원후재신유이기개축)’이라 쓰여 있어 4년 뒤에 현위치로 옮겼음을 알 수 있다. 옮기기 전의 옛 위치는 서쪽에 남아 있다. 현재 영조 때 축조한 석빙고가 여러 곳에 남아 있으나, 그 중에서도 이 빙고가 가장 완전하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석빙고축조비
숭정기원후재신유추팔월이기개축 崇禎紀元後再辛酉秋八月移基改築 최초 설치:1738년 옮겨서 다시 축조:崇禎紀元後再辛酉(1741년)
석빙고 환기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석탑 옥개석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보호펜스를 월장하여 확인은 시도하지 않았지만 모호하다. 즉, 층급받침은 보이지 않으며,처마가 두텁고.3개 옥개석 크기가 거의 같아 보인다.
서라벌 이제는 옛인연을 찾을 시기가 점점 가까이 다가 오는 듯. 2018.1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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