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마누라와 동행기 (오류도 있지만 그대로 옮겨왔다) 군위읍내에서 소보면의 법주사로 방향을 잡으려다 어부인에게 자문을 구했더니 돌아올 길은 참배하지 말고 한 방향으로 가자고 하명하신다. 네네네!!! 할 수 없이 예전에 세 가지 보물, 즉 큰 가마솥, 단청물감의 재료인 흙그리고 맷돌이 있어 선방산 지보사(持寶寺)로 이름 지어진 절집으로 가는 길은 매미의 영향에서 벗어난 탓인지 가을 들판에 풍년가가 울리는 듯하다.좁은 소로를 따라 산길을 올라가며 차창에 비치는 시각적 즐거움만으로는 만추의 저무는 향을 가슴에 담지 못함이 아쉬운지 마누라는 창문을 열고 농익은 내음을 마음껏 포옹한다.
지보사를 내려오는 산길 옆에 크지 않은 과수원 밖에 내 눈엔 보이지 않았는데 마누라는 사과를 수확하여 차에 실고 있는 노부부를 보았던 모양이다. 저기 가면 사과를 싸게 살 수 있을 거라며 기어코 나를 끌고(?) 간다. 하지만 촌로들은 대구 농산물 시장에 출하한다며 완곡히 거절하지만 울 마누라 찰거머리가 되어 사과를 사기위해 대단한 수완을 발휘하는데 -할아버지예! 차에 실린 사과 집에 가지고 가서 상품분류 작업해서 또 박스에 포장해야 되잖아예. 그러니 상자채로 파이소- 지켜보는 내가 민망스러울 정도이다. 할아버지가 웃으시면서 반승낙을 하시자 날 보고 얼른 내리지 않고 뭐 하느냐는 식의 눈빛을 보낸다. 박봉의 남편 땜에 순하디 순한 사람이 저렇게 변했는데...
사과상자보다 더 많이 담긴 열과를 끙끙대며 들고 차에 싣고서는 만족한 표정이 얼굴 가득하고 콧노래까지 흥얼거린다.
석탑 순례기인지 공처가의 참담한 고백인지 모르겠군.... 쩝!!!
지보사 삼층석탑 산너머 극락사가 안태고향으로 전하며, 군위 읍내 절골로 옮겨갔다가 지보사로 돌아온 탑이라고 한다. 그런까닭 때문인지 지보사 중정이 아닌 사역 중심 배치에서 벗어나 자리하고 있다. 2층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린 전형적인 통일신라 따르고 있으나 전성기를 지나 장엄을 갖추었다. 하층기단 지대석위에 중대석,갑석으로 구성되었으며, 중석은 양우주. 탱주를 모각하고, 탱주사이에 사자상을 돋을 새김으로 새겼다 두터운 갑석 상면에는 물매가 있으며, 전각 반전이 희미하고, 상부에 각호각 3단 굄을 조출하였다. 상층기단 중석에는 양우주, 1개 탱주를 표현하였으며, 각각의 면에 2구씩 팔부신중을 봉안하였다. 갑석에는 부연이 있고, 물매는 희미하며, 중앙에 앙련이 조각된 방형 별석의 괴임을 올렸다. 탑신 탑신과 옥개석은 각각 일 석이며, 탑신에는 양우주가 모각되어 있다. 초층탑신에는 4면에 문비가 조각되어 있다. 옥개석 낙수면 물매는 크게 급하지 않으며, 전각의 반전도 날카롭지 않다. 층급받침은 전층 4단, 상부에 2단 탑신 상륜부 노반, 복발,앙화가 남아 있다. 일견 9세기 탑으로 보이나 개인적으로는 별석 굄, 문비, 층급 받침 등으로 고려전기 석탑으로 추정된다 (아직도 정확한 조성 년대를 두고 논란이 있는 듯 하다)
팔부중(다음백과사전) "명중팔부(冥衆八部)·천룡팔부(天龍八部)·팔부신장이라고도 한다. 인도의 고대에 불교 성립 이전부터 있던 여러 신인데, 불교에 수용되어 불법과 불국토 수호의 역할을 담당했다. 팔부신중은 〈법화경〉을 비롯한 〈무량수경〉·〈대반야경〉 등 여러 경전에 설명되어 있으므로 그 성립은 비교적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경전의 내용에 따라 여러 설이 있어 경전상으로도 여래팔부중과 사천왕에 소속된 팔부중으로 나누어지는데, 일반적으로 팔부중은 부처의 설법을 듣기 위해 모여든 여러 중생을 의미하는 여래팔부중을 말한다. 즉 천(天)·용·야차(夜叉)·건달바·아수라(阿修羅)·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摩睺羅伽)를 가리킨다. 그러나 사천왕에 소속된 팔부중은 건달바·비사사(毘舍闍)·구반다·벽협다(薛荔多)·용·부단나(富單那)·야차·나찰(羅刹) 등을 말한다. 여래팔부중과 사천왕팔부중 가운데 서로 일치되는 것은 건달바·용·야차뿐이다. 팔부중상은 원래 고대 인도 신들의 모습이 서역을 거쳐 중국과 우리나라로 들어오면서 점차 투구와 갑옷을 입은 무장한 모습으로 정형화되었다. 특히 건달바는 사자관(獅子冠)을 쓰고 손에는 삼차극(三叉戟)을 들고 있으며, 아수라는 다면다비상(多面多臂像)이고, 긴나라는 사람의 머리에 새의 몸과 날개를 가진 모습으로 표현된다. 우리나라의 팔부중상은 보통 무장형으로 자세나 지물(持物)에 일정한 규범이 없이 석탑의 기단부나 불화 등에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통일신라시대의 석굴암에 조각된 팔부중상이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동면
가루라.아수라
사자상
북면
마후라가.천신
사자상
서면
용.간나라 사자상
남면
건달바.아차
문비
각 4단의 촉개석 층급받침
상륜 노반.복발.앙화 3층 탑신은 후보물(?)
부도전
지보사 선방에 계시던 중 4대강 반대를 외치며 소신공양한 문수스님의 부도.
무염당(無染堂)부도 설마 성주산문 개종조는 아니겠지?
2018.09.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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