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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단양군

단양...황정리 기봉당대사 궤운 마애부도

by 임병기(선과) 2018.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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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군 대강면 황정리 마애부도

 

우리카페 남연님의 소개로 답사한 부산 금정산 마애부도 3기를 페북에 올린 후 페친들이 마애부도로 추정되는 현장을 여러 곳 알려주었다.

 

예천 용문사 마애부도. 예천군 학예사 이재환님이 소개

곡성 동림산 길상암지마애부도.불교문화유산연구소 한욱빈팀장님이 소개

단양 황정리 마애부도.송광사성보박물관 김태형 학예사님이 소개

 

용문사 마애부도, 곡성 길상암지 마애부도는 여러 자료와 몇몇분과 통화 후 위치를 확인하여 현장 답사를 마쳤다.

하지만, 황정리 마애부도는 소재지 확인이 쉽지 않았으며, 두어 곳에 단서가 될만한 자료가 있었다.

 

대강면사무소 홈페이지

"신선의 정원이란 뜻의 황정(黃庭), 남조천에 있는 선두실소(仙頭谷沼), 운선일곡(雲仙一曲)인 대은담 (大隱潭) 등에서 볼 수 있는 도가(道家)풍과 대흥사골과 미륵대, 불바우들 등으로 표출되는 불가 (佛家)풍의 두 경향이 뚜렷이 확인된다.

부두골 : 부도골. 대흥사 못미처 석벽에 사리굴을 조각하여 놓은 골. 사리굴이있는 곳을 ‘검푸재이’라고 함"

 

황정산 원통암 圓通庵(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

"원래는 폐사된 대흥사()의 부속암자였으나,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이다. 1353년(공민왕 2)에 나옹()이 창건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던 것을 1693년(숙종 19)에 의명()이 중창하였다. 1787년(정조 11) 이후에는 불교의 탄압으로 인하여 거의 폐허화되었다.

 

이에 1824년(순조 24)대연()이 중창의 뜻을 세워 춘담()의 재력과 달선()의 도움을 받아 퇴락한 당우들을 복원하였다. 그 뒤 다시 퇴락한 것을 1949년에 중창하였고, 1965년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원통암은 관세음보살의 육근원통()을 상징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옛날 이 암자 뒤의 절벽 석문()에서는 술이 흘러나왔는데, 욕심 많은 고을 태수가 하늘에서 내리는 술을 더 많이 나오게 하려고 구멍을 뚫자 술이 물로 변하여 버렸으므로 주민들이 원통한 일이라 하여 이 일대를 원통골 이라하고 암자를 원통암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법당과 산신각·요사채 등이 있으며, 법당 내에는 석가여래좌상과 탱화 등이 봉안되어 있다. 절의 입구를 금포정() 부도골()이라 하는데, 이 골짜기 어딘가에 암벽을 파고 사리()를 모셔둔 사리굴이 있다고 전한다. 이 밖에도 신보도사()라는 백발노인이 도를 닦아 불법의 이치를 깨쳤다고 전하는 굴이 있는데, 암벽에는 ‘(신보독서차동중)’이라는 일곱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 암벽과 마주보이는 곳에 배석대()가 있는데, 승려들이 이 배석대에 모여서 서로 도를 닦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암벽을 향하여 합장하면서 절하였다고 한다.『조선사찰사료』에 1826년에 동파()가 지은 「원통암중수기」가 전하고 있어 연혁을 아는 데 도움을 준다".

 

 

대강면사무소에 전화를 걸었더니

직원분께서 친절하게도 부도골 위치를 아시는 분과 확인 후 연락주겠다고 예상 외의 답을 주셨다.

반신반의한 내가 부끄럽게도 잠시 후 마을 주민과 통화한 직원분이 부도골의 정확한 위치는 모르지만 "황정리 348번지" 주변이며, 부도 유무는 주민들도 인지 못 하고 있다면서 전화를 주셨다( 이분의 성함을 확인하여 단양군청에 친절공무원으로 추천해야 했는데...)

 

지도와 로드뷰 검색를하였지만 찾기 힘들 것으로 생각되었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휴가 첫날, 완전치 못한 컨디션에 출발하여 황정리에서 탐문하였으나 모두들 금시 초문이라고 한다.

대흥사 종무소에 문의했지만 역시 처음 들었다는 답만 돌아왔다.

 

포기 할 수는 없고, 대흥사에서 내려와 348번지 부근을 뒤져 보기로 했다.

주소지 근처  길가에 사람이 보여 뒤따라 가서 부도골을 물었지만 황정리 토박이임에도 불구하고 지명은 들어보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찾는 부도 설명을 듣고서는 "부도는 모르지만 어제 자기가 본 것 같다"며 상세하게 길을 설명해주었다.

 

나는 또 길위에서 귀한 인연을 뵈었으니, 벌써 몇번째인가?

 

 

마애부도 위치

황정리 348번지 입력(도로변에서 안내 종료)

도로 우측 낙석표시판(대흥사 주차장 500미터전) . 맞은편 쇠사슬로 통제한 길로 진입하여 개울을 건넌다.

348번지 개인 사유지 가건물 우측 개울옆으로 진입하여 다시 개울을 건너면 넓은 길이 뚜렷함

 

낙석표시판에서 부도까지 약 300미터

쇠사슬부근 차량 1대 주차 공간 있음

 

 

낙석 표시판

 

 

낙석표시판 맞은편 진입로.쇠사슬로 통제

차량 1대 주차공간 유有

 

 

개울 통과

 

 

개인사유지 가건물(황정리 348번지)

우측 개울 방향으로 진입

 

 

개울 우측으로 건너면 넓은 옛길(?) 있음

 

 

길 모룽이를 돌아서면 암벽에 마애부도 위치

 

 

 

우리나라 마애부도중 가장 조형미가 뛰어난 부도 같다.

암벽 중앙 비갈 형태로 홈을 깊게 파고, 다시  중앙에 방형 부도홈, 가운데 사리공을 두었다.

비갈 위에는 연꽃(?)을 중앙에 표현하고 그 위에 범어를 새겼다.

일반 석종형 부도에는 남원 파근사지,팔공산 진불암 등의 부도 탑신에 범어를 새긴 작례가 있지만 마애부도는 유일한 사례 같다.

좌우에는 주인공 당호와 조성일자, 조성 장인(?)을 새겼으며, 외곽에는 빗물막이(?) 용도로 얕게 암벽을 파 내었다.


 

 

기봉당대사궤운영골지탑 奇峰堂大師軌雲靈骨之塔


기봉당 대사는 누구일까?

대흥사, 또는 원통암에서 주석하셨던 스님은 분명하겠지만, 원통암,대흥사 관련 자료에서는 궤운스님의 자취는 찾을 수 없었다.

학계와 단양지역 향토사학자들의 연구를 기대해본다.

 

 

무신이월 립 戊申二月 立

편수 황성대 片(?)手 黃聖大


무신 이월 戊申二月 은 언제일까?

1668년.1728년.1788년.1848년.1908년.1968년


원통암에 등장하는 기년은 아래와 같다

"1693년(숙종 19)에 의명()이 중창하였다. 1787년(정조 11) 이후에는 불교의 탄압으로 인하여 거의 폐허화되었다.

이에 1824년(순조 24)대연()이 중창의 뜻을 세워 춘담()의 재력과 달선()의 도움을 받아 퇴락한 당우들을 복원하였다. 그 뒤 다시 퇴락한 것을 1949년에 중창하였고, 1965년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참고로

희방사에 남아 있는 대흥사 동종은 1742년에 조성되었으며,대흥사는 1876년 왜군의 방화로 소실되었다.


그리고

부도에 편수를 새긴 사례도 유일무이한 경우로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깊고 정치하게 조성한 것은 기계로 작업한 느낌이며

편수가 스님이 아니고, 또한 본인의 이름을 새길 수 있는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면 20세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정확한 조성시기는 전문가 몫으로 남겨두겠다.


 

 

비갈 상부

연꽃(?)



범어도 새겨져 있다.

 

 

부도의 주인공을 추적중 대흥사 사적이 보여 다음에서 옮겨 왔다.


대흥사

단양군 대강면 황정리 황정산(黃庭山)에 있는 절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5교구 법주사의 말사이다.

현재의 대흥사는 조계종 원로회 의장이신 월탄(月誕) 스님이 폐사된 대흥사를 중창한 것으로 지금도 불사가 진행 중이다.

폐사된 대흥사는 646년(신라 선덕여왕 15년) 자장율사가 통도사와 함께  창건하였는데,한때는 건물이 200여 칸에 이르고, 10구가 넘는 불상과 오백나한상을 봉안하였으며 수도하는 승려가 천여 명이나 있었던 대규모 사찰이었다고 한다. 


1876년(고종 13년) 왜군들의 방화로 소실되었고, 그 후에 폐사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며, 대흥사의 부속 암자로 청련암,원통암,망월암,굴암 등이 있었는데, 지금은 황정산 중턱에 있는 원통암과 덕절산 사인암(舍人巖) 옆에 있는 청련암이 부속 암자가 아닌 독립 사찰로 남아 있다. 청련암은 1950년대에 대흥사의 대들보와 기둥을 옮겨 지은 것이라 한다. 대흥사가 폐사되자 대흥사에 봉안하였던 오백나한상은 금강산 유점사에 옮겨갔다고 전한다.


대흥사 폐사와 더불어 오백나한상은 금강산 유점사, 탱화와 잔존 목조부재는 청련암, 동종은 죽령 너머 풍기 희방사로 흘러 갔다.

 

 

청련암과 사인암

 

 

사인암 舍人巖

 

 

풍기 희방사 동종

 

동종 하부 명문.

乾隆七年 壬戌五月日 忠淸道 丹陽 南面 小白山  大興寺 大鍾三百斤入 山中碩德 大禪師涵信 老德笠會 綠化秩 片手海哲 片手楚符

건륭7년   임술5월일  충청도 단양 남면 소백산  대흥사  대종300근입  산중석덕 대선사함신 노덕입회 녹화질 편수해철 편수초부

1742년 소백산 대흥사에 봉안된 동종이다.


즉,이때에는 대흥사의 사세가 번창하였을 것이다.

 

 

 

인터넷상에 처음 소개되는 듯 하다.

단양군청, 대흥사에서는 충북에서 유일한 문화재인 마애부도를 홍보하고 많은 순례객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진입로 정비, 안내문 설치. 홈페이지 등재 등의 가시적인 조치를 취했으면 좋겠다.

 

2018,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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