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안성시

안성...봉덕사 목조여래좌상

임병기(선과) 2018. 7. 27.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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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보수 공사로 인해 임시 법당에 모셔져 있었다.

주지스님의 안내로 둘러보았으며,발원문은 도난당했다고 한다.

 

답사 후

자료 정리중에 찾은 현대불교에 연재된 최선일님의 기사에 의하면 목조여래좌상은 금문 金文 스님이 수화승으로 참여하여 봉안한 작품이라고 한다. 또한 동기사에 실린 발원문에 세차강희5년병오7월10일(歲次康熙五年丙午七月十日)조성 일자가 기록되어 있다.

강희 5년은 1666년이다.

 

 

목조석가여래좌상


1933년 조만해 스님이 평택 수도사에서 모셔왔다고 한다.

불상은 얼굴을 앞으로 약간 내밀어 구부정한 자세를 취하고, 신체와 얼굴이 1:0.35의 비율로 17세기 중반에 제작된 불상보다 신체에서 얼굴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 앞으로 숙인 머리에는 뾰족한 나발과 경계가 불분명한 육계가 표현되고, 정상부에 좁고 높은 원통형의 정상계주와 이마 위에 가늘고 좁은 반원형의 중간계주가 있다. 방형의 얼굴에 눈꼬리가 약간 위로 올라가 반쯤 뜬 눈, 콧등이 평평한 삼각형 코, 살짝 미소를 머금은 입을 하고 있다.

 

왼손은 엄지와 중지를 둥글게 맞대고, 오른손은 손가락을 펴고 바닥을 가리키는 항마촉지인을 취하고 있다. 바깥에 걸친 두꺼운 대의는 변형통견(?)으로, 대의자락이 오른쪽 어깨를 비스듬히 짧게 걸친 후, 팔꿈치와 복부를 지나 왼쪽 어깨로 넘어가고, 반대쪽 대의자락은 왼쪽 어깨를 완전히 덮고 내려와 하반신에 펼쳐져 있다. 

 

 

금문(金文)


17세기 후반에 호남의 색난(色難) 스님, 영남의 승호(勝湖) 스님 등과 같은 시기에 중부지방인 경기(京畿)와 영서(嶺西)에서 활동한 금문(金文)스님은 17세기 중반을 대표하는 혜희(惠熙, 慧熙) 스님의 계보에 속하는 조각승(彫刻僧)이다. 금문 스님은 스승 혜희와 마찬가지로 주로 나무로 불상을 제작하면서 불교공예품 등을 중수였다. 현재 금문 스님이 우두머리가 되어 만든 목조불상은 전국에 걸쳐 3건 20여 점이 조사되었다.


아직까지 금문 스님은 언제 태어나서 열반에 들었는지 등 조각승이 된 배경에 대한 기록이 전하지 않지만, 불상에서 발견된 발원문과 불화 화기 등을 통하여 스님의 활동 시기와 지역, 조각승의 계보, 불상 양식 등을 추정할 수 있다.  금문 스님이 제작한 가장 오래된 작품은 혜희 스님을 도와 1655년에 충북 보은 법주사 원통보전에 봉안한 목조관음보살삼존상이다. 그때 금문 스님은 불상 제작에 참여한 21명 가운데 17번째 언급되어 불상 제작에 보조적인 역할을 하였다.

 

스님은 1662년 정월에 인조의 손자이자 소현세자의 셋째아들인 경안군 이씨와 그의 부인 허씨, 경자생박씨(庚子生朴氏)와 노씨(盧氏), 윤씨(尹氏) 등의 만수무강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 궁인(宮人) 노예성(盧禮成)이 발원한 전남 순천 송광사 관음전 목조관음보살좌상을 혜희 스님과 만들었다.   이 시기 대부분의 중형불상을 최소한 5명 이상이 제작하지만, 이 보살상은 특이하게 두 명이 제작했다. 왕실에서 발원한 불상 제작에 혜희 스님이 금문 스님을 데리고 같이 작업한 것을 보면 가장 솜씨가 뛰어난 제자였을 것이다.

 

그 후 금문 스님은 수화승(우두머리)이 되어 제자들과 1666년에 경기 안성 봉덕사 봉안된 목조여래좌상을 제작하고, 1668년에 승일 스님이 제작한 경북 김천 직지사 비로전 석조비로자나삼존불좌상 제작에 참여하는데, 승일 스님은 혜희 스님과 조각승의 계보가 달라 금문 스님이 일시적으로 불상 작업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1676년에 혜희 스님이 수화승으로 제작한 전북 완주 대둔산 안심사 화장암 불상(김제 금복사 봉안) 제작에 부화승으로 참여하였다. 그리고 금문 스님은 1686년 4월에 수화승으로 강원 횡성 봉복사 반야암 관음보살좌상을 조성했다.   또한 금문 스님은 1701년에 서울 강남 봉은사 법왕루 목조불패를 새로 고치고, 1703년 5월에 경북 상주 운봉사 괘불(문경 김룡사 봉안) 조성 시 복장시주(腹藏施主)로 참여하였으며, 6월에 부산 기장 장안사 대웅전 석조삼세불좌상을 중수하면서 개금하였다.   금문 스님은 1706년에 경기 안성 칠장사 지장전 불상을 2월 2일에 시작하여 5월 21일에 완성하였다. 17~18세기에 새로 명부전에 불상을 30여 점을 봉안하는데, 13명의 조각승이 대략 세 달 반이 걸려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아직까지 금문 스님이 어느 지역 사찰에 주석했는지는 밝힐 수 없지만, 혜희 스님이 1650년경에 계룡산에 거주한 기록이 밝혀져 같은 지역에 머물렀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문헌을 통하여 금문 스님은 1635년경에 태어나 출가한 후 수련기를 거쳐 혜희 스님과 1655년에 충북 보은 법주사 원통보전 불상과 1662년에 순천 송광사 관음전 보살상을 조성하고, 1666년에 수화승으로 안성 봉덕사 봉안된 불상을 제작하였다. 또한 금문은 1668년에 수화승 승일(勝日) 스님과 경북 김천 직지사 비로전 불상을, 1676년에 수화승 혜희와 전북 완주 안심사 화장암 불상(김제 금복사 봉안)을 제작하였다.  이후 수화승으로 1686년에 강원 횡성군 봉복사 반야암(般若庵) 목조관음보살좌상(원주 구룡사 봉안)을 조성하고, 1701년에 서울 봉은사 목조불패를 개조하였으며, 1703년에 부산 기장 장안사 석조삼세불좌상을 중수ㆍ도금하였다.


그리고 금문 스님은 1706년에 경기 안성 칠장사 명부전 불상을 만들었다. 금문 스님은 주로 혜희 스님과 불상 제작에 참여하고, 혜희 스님이 살았던 충남 공주 계룡산 근방에 거주하면서 경기와 충청도 사찰이나 암자에 불상을 제작하였다. 1703년 이전에 종이품(從二品) 문무관의 품계에 해당하는 가선(嘉善)의 공명첩을 이름 앞에 쓴 것으로 보아 국가적인 사업에 참여하거나 국가에서 발급한 공명첩을 구매했을 가능성도 있다.

 

금문 스님의 조각승 계보는 법령(-1615-1641-)→혜희(-1640-1677-)→금문(-1655-1706-), 마일(-1655-1701-), 청윤(-1684-1716-)→세균(-1703-1730-), 여찬(-1706-1746-) 등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금문은 경기 안성, 충북 횡성, 전북 완주, 경북 김천, 부산 기장 등의 사찰이나 암자에 불상을 제작하거나 중수한 것으로 미루어 그의 활동 지역이 중부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활동하였음을 알 수 있다.

 

금문 스님이 제작한 불상은 바깥에 걸친 두꺼운 대의가 오른쪽 어깨에 걸쳐 완만한 사선을 그리며 늘어져 있고, 왼쪽 어깨에서 수직으로 내려오는 대의자락 상단에 사선 방향으로 접힌 부분이 표현되어 있다. 이러한 표현은 1684년에 마일이 제작한 불상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그러나 스승인 혜희 스님이 제작한 목조불상에서는 오른쪽에 걸친 대의자락의 끝자락이 완만하게 늘어졌고, 왼쪽 어깨에 수직으로 흘러내린 깃 부분 상단에 자연스럽게 접혀 있어 금문 스님이 불상 제작에서 다른 조형 감각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금문 스님이 제작한 불상은 하반신에 걸친 옷자락도 끝부분이 각진 형태를 하면서 복부에 앞으로 넓게 펼쳐진 옷자락 끝단이 S자형으로 처리되었다. 이러한 옷주름 처리는 같은 시기에 활동한 다른 조각승의 계보에서는 볼 수 없는 요소이다. 그밖에도 금문 스님은 암자에 봉안할 관음보살상을 주로 만들었고, 조선후기 불교조각사의 절정기를 이끌었던 경기와 충청을 대표하는 조각승이다.

 

금문과 그 계보 조각승이 제작했다고 추정되는 불상은 충북 괴산 개심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목조보살좌상, 충북 제천 무암사 목조여래좌상, 강릉 백운사 목조관음보살좌상, 경북 봉화 중대사 목조보살좌상, 경북 고령 반룡사 목조지장보살좌상, 경북 문경 대성암 목조보살좌상이나 혜국사 목조삼존불좌상 등으로, 이들 불상은 양식적으로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전반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안성시문화우유 분포지도(2005년)에는 위의 목조여래좌상 조성시기를 降熙五年(1911)으로 표기하여 수화승 금문스님의 활동시기와 맞지 않는다.

왜 그랬을까?

현대불교에 실린 발원문을 확인한 결과 강희오년康熙五年을 降熙五年으로 표기한 까닭이다.

 

 

불단 향좌측에 걸린 불화


주지스님께서 정조조에 조성한 군미어보살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짧은 식견으로는 처음 인지한 보살이다.

불화 뒤편에 화기가 있다고 하였지만 확인하지 못하였으며, 2005년 발간된 안성시문화유적분포지도에는 광서팔년 임오중하 조성 초파일(光緖八年壬午仲夏造成初八日) 화기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광서 팔년은 1882년으로 주지스님이 말씀하신 편년이 차이가 있다. 문화유적분포지도에서 언급된 불화가 군미어보살인지는 알 수 없다. 

 


사찰에서 야외 의식을 올릴 때 거는 도량장엄 사보살도.


1.경물권보살 警物券菩薩

2.정업색보살 定業色菩薩

3.조복애보살 調伏愛菩薩

4.군미어보살 群迷語菩薩

 

 


4.보경군미어보살 普警群迷語菩薩

 


보경군미어보살 普警群迷語菩薩

청정한 음성으로 깨달음을 주는 보살이라고 한다.

 

 

임시법당에 봉안한 목조여래와 불화 설명해주신 주지스님께 감사드립니다.


2018.07.20

(목조여래좌상. 금문스님에 관한 글은 현대불교에 실린 최선일님의 기사에서 발췌 정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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