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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종묘

임병기(선과) 2018. 6. 4.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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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宗廟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후 및 추존된 왕과 왕후의 신주를 모신 사당으로서 가장 정제되고 장엄한 건축물 중의 하나이다.

종묘는 태조 3년 (1394) 10월 조선 왕조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그해 12월에 착공하여 이듬해(1395) 9월에 완공 하였으며, 곧이어 개성으로부터 태조의 4대조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의 신주를 모셨다. 현재 정전에는 19실에 49위, 영녕전에는 16실에 34위의 신주가 모셔져 있고, 정전 뜰앞에 있는 공신당에는 정전에 계신 왕들의 공신 83위가 모셔져 있다.

 

 

하마비

지차 至此

대소인원하마비 大小人員下馬碑


 

강희(康熙) 2년 10월

강희 2년은 1663년(헌종 4년)이다.


 

앙부일구 대석

해시계인 앙부일구를 받쳤던 대석

세종16년 종묘동구에 설치했으나, 임진왜란의 전화를 입어 받침대만 남아 있었다.

1898년 전차궤도를 설치할 때 파묻혔으며, 1930년에 발굴되어 탑골공원에  옮겨 보존되어 오다가 2015년 종묘광장 정비를 하떼 옮겨 옴

 

 

종묘 어정 宗廟御井

종묘 정문 앞에 보존된 우물

임금이 종묘 행차시에 이 우물울을 마셨다고 한다.

 

 

관람시간

엄숙한 공간에 걸맞게 안내인과 동행하여 관람할 수 있다.


 

 

종묘 정문은 외대문(外大門) 또는 창엽문 蒼葉門라고도 한다.

정문은 궁궐 정문과는 달리 구조 형태가 아주 검박하고 단순하다.

 

 

삼도(三道)

세 가지 길은 하나로 어울려 주도로를 이룬다. 가운데의 높은 길인 신향로(神香路)는 신의 길인 신로(神路)와 향(香)·축(祝)·폐(幣)를 들여오는 향로(香路)가 합쳐진 길이며, 왼편은 세자의 길(世子路), 오른편은 왕의 길(御路)이다. 왼편이 오른편보다 상석이나 신이 바라보는 시선을 따랐다.

 

신로와 어로는 각각 역대 왕실의 신주를 모신 정전(正殿)의 신문과 어숙실(御肅室)이라고도 불리는 재궁(齋宮)의 남문을 향한다. 신은 정전 안 월대(月臺)의 신로를 따른다. 왕과 세자는 어숙실에서 목욕재개 후 제례를 위한 준비를 한다. 다시 서협문(西夾門)을 나서서는 정전의 동문으로 들어서 신들과 만나 제를 진행한다. 

 

 

지당 池塘

천원지방에 준하여 조성

왕들의 영혼을 모시는 경건한 공간으로 여겨 생동감 있는 물고기를 기르지 않는다고 한다.

 

 

향대청(香大廳)

종묘에 사용하는 향(香)·축(祝)·폐(幣)와 제사 예물을 보관하고, 제향에 나갈 헌관들이 대기하던 곳.

 

 

망묘루望廟樓

제향(祭享)때 임금이 머물면서 사당을 바라보며 선왕(先王)과 종묘사직을 생각한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망묘루는 건물 중 한 칸이 누마루로 되어 있다.

 

 

공민왕 신당 恭愍王 神堂

망묘루 동쪽에 있는 별당으로 고려 31대왕 공민왕을 위하여 종묘 창건시에 건립되었다고 전한다.

신당 내부에는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가 한자리에 있는 영정(影幀)과 준마도(駿馬圖)가 봉안되어 있다.
신당의 정식 명칭은 '고려 공민왕 영정 봉안지당(高麗 恭愍王 影幀 奉安之堂)'이다.

 

 

재궁(齋宮

 

 

재궁으로 이어지는 길

 

 

재궁(齋宮) 

임금이 제사를 준비하던 곳. 정전 동남쪽에 위치. 어숙실(御肅室)이라고도 함.

재궁 북쪽에는 임금이 머무는 어재실(御齋室), 동쪽에는 세자가 머물던 세자재실(世子齋室),서쪽에는 왕이 목욕하던 어목욕청이 있다.

  

 

어재실(御齋室)



어목욕청 御沐浴廳

 


소여小輿

종묘대제 때 임금이 궁궐에서 종묘 앞까지는 대여大輿를 타고 오며, 소여는 종묘안에서 이동시 사용된다. 

 

 

세자재실(世子齋室)

 


 삼도



종묘 남문


유교 사회에서는 왕이 나라를 세우고 궁실(宮室)을 영위하기 위해 반드시 종묘와 사직(社稷)을 세워 조상의 은덕에 보답하며 경천애지사상(敬天愛地思想)을 만백성에게 널리 알리고, 천지 신명에게 백성들의 생업인 농사가 잘되게 해 달라고 제사를 올렸던 것이다.


따라서, 왕이 도읍을 정하면 궁전 왼편에 종묘를 세우고 오른편에 사직을 세우게 하였다. 조선을 창건한 태조는 송경(松京 : 松都)에서 한양으로 천도한 뒤 현재의 종묘와 사직을 세웠다.


종묘의 건축은 중국의 제도를 본떠 궁궐의 좌변(左邊)에 두었다. 조선을 창건한 태조는 1394년(태조 3) 8월 종묘 터를 보았고, 9월 감산(坎山)을 주산(主山)으로 하는 임좌병향(壬坐丙向)한 그 곳에 종묘 터를 결정하였다. 12월부터 영건(營建)을 시작해 다음해 9월에 일차 영건이 끝났으며, 그 뒤 1546년(명종 1)까지 계속되었다.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자, 1604년(선조 37)부터 중건이 논의되어, 선조 41년 터를 닦고 기둥을 세우는 등 공사를 개시한 후 광해군이 즉위하던 해인 1608년 5월 중건되었다. 그 뒤 몇 차례의 개수와 증건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정전은 국보 제227호, 영녕전은 보물 제821호로 지정되었다

 


정전正殿


종묘 정전은 매칸마다 신위를 모신 신실인 감실 열아홉 칸, 신실 양 옆으로 각각 두 칸의 협실, 그리고 협실 양 끝에서 직각으로 앞으로 꺾여 나와 마치 신실을 좌·우에서 보위하는 듯한 형태를 취하고 있는 동·서월랑 다섯 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남문인 신문에서 보면 동서 109미터, 남북 69미터나 되는 묘정 월대가 넓게 펼쳐있고, 월대 가운데에는 신실로 통하는 긴 신로가 남북으로 나 있으며, 그 북쪽 끝에 상월대와 기단이 설치되어있다. 종묘 건축이 다른 건물과 다른 점은 건물 내부에 모실 신위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몇 차례에 걸쳐 건물을 옆으로 증축하여 길게 늘린 점에 있다.

 


종묘는 원래 정전(正殿)을 말하며, 태묘(太廟)라고도 한다. 태묘는 태조의 묘(廟)가 있기 때문이다. 역대 왕과 왕후는 사후에 그 신주를 일단 종묘에 봉안하였다.


공덕이 높아 세실(世室 : 종묘의 神室)로 모시기로 정한 제왕 이외의 신주는 일정한 때가 지나면 조묘(祧廟)인 영녕전(永寧殿)으로 옮겨 모셨다. 이것을 조천(祧遷)이라고 한다. 종묘 즉 정전에는 현재 19실(室)에 19위의 왕과 30위의 왕후의 신주를 모셔놓고 있다. 정전 서쪽에 있는 영녕전에는 정전에서 조천된 15위의 왕과 17위의 왕후, 그리고 의민황태자(懿愍皇太子)의 신주를 16실에 모셔 놓고 있다.


정전의 신실은 서쪽을 상(上)으로 해 제1실에 태조의 신주가 봉안되어 있다. 영녕전은 주나라의 제도를 본받아 정중(正中)에 추존조사왕(追尊祖四王)을 모시고 서쪽과 동쪽으로 구분, 서쪽을 상으로 차례대로 모시고 있다. 이것을 소목 제도(昭穆制度 : 신주를 모시는 차례로, 왼편을 昭, 오른편을 穆이라 하며, 天子는 1세를 가운데 모시고 2·4·6세를 소에, 3·5·7세를 목에 모시는 제도)라 한다.

 


정전 동문

재궁에서 정전으로 향하는 문


정면에 어판위대,세자판위대가 위치하며, 수복방, 전사청이 측면에 있다.

 


어판위대 御版位臺

임금이 제를 올리기 위해 정전으로 들어가기 전에 잠시 멈추어 예를 갖추는 곳

 


세자 판위대 世子版位臺

 


전사청(典祀廳)

 종묘제사에 사용하는 제수의 진찬 준비를 하던 곳으로, 뜰을 가운데 두고 그 주위로 건물을 ㅁ자형으로 배치하였다.

 


수복방(守僕房)
정전 동문의 담에 잇대어 북쪽 방향으로 지어진 4칸짜리 맞배지붕 건물. 수복(守僕)이란 조선시대 종묘서(宗廟署)나 향실을 관장하던 교서관을 비롯해 단(壇), 능(陵), 궁(宮) 등에 소속되어 청소하는 일을 담당한 잡직을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수복방이란 제사를 준비하는 관원들과 종묘를 지키고 청소하며 제사를 준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거처하는 곳


찬막대 饌幕臺

제례에 사용할 음식을 올려놓고 검사, 보관하던 장소로 천막을 둘렀던 것 같다.

 


희생단 犧牲壇

제례에 올릴 소,양,돼지를 검사하는 곳

제례에는 성칠체 腥七體라고 하여 소,양, 돼지의 일곱 부위를 각각 한근 씩 올렸다고 한다. 

 

   

 

정전 신위 봉안도

 

 


종묘 대제 宗廟 大祭


종묘제례 및 제례악은 2001년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 2008년부터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으로 관리되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인 종묘에서 개최되는 행사로 유형과 무형의 세계유산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문화유산이다. 종묘제례는 왕조의 조상에게 지내는 제사로 조선왕조의 제사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중요한 것이었기 때문에 종묘대제(宗廟大祭)라고 한다. 고대중국에서 비롯되어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고려와 조선조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유구한 역사를 이어 내려온 소중한 조상전래의 제례의식이다.


조선조에는 춘하추동 사계절과 섣달에 행하였으며 1969년 대동종약원에 의해 복원되어 지금은 매년 5월 첫째주 일요일에 봉행되고 있다.


종묘대제에는 종묘제례가 봉행되며 각 제사의례에 맞추어 경건한 분위기를 고양시키기 위한 음악과 무용으로서 종묘제례악이 따른다. 제례는 신을 맞이하는 영신례(迎神禮), 초헌, 아헌, 종헌례에 이어 음복례가 행해지고, 신을 보내 드리는 송신례(送神禮)를 갖춘 후에 축(祝)과 폐(幣)를 망료(望燎) 위에 불사르는 것으로 끝난다.


종묘제례악은 우리 고유의 음률로 왕조의 창업과 기상을 노래하고 있으며 모든 행사의 순서에 맞추어 춤과 음악이 조화를 이룬다. 엄숙한 제사 의례만큼이나 장엄미가 돋보이는 종합예술로 역사적·예술적 가치가 크며 동양에서도 드물게 남아 있는 고전음악이다.

 


공신당(좌). 칠사당(우)


공신당(功臣堂)
정전의 남쪽 신문으로 들어가면 동쪽에 위치한 정면 16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 시간이 흐르면서 정전이 증축된 것과 마찬가지로 공신당 또한 증축된 결과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국가와 왕실에 공을 세운 신하들을 기리고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왕의 생존시에 공로가 큰 신하들의 신위를 해당 임금의 묘정에 배향했는데, 제1대 태조의 공신 문충공(文忠公) 조준(趙浚)을 시작으로 제27대 순종의 공신 효문공(孝文公) 서정순(徐正淳)까지 모두 19명의 제왕 신위에 83위의 공신 위패가 모셔져 있다.


종묘의 공신당에 모셔지는 공신은 배향공신이라 해서 국가가 위난에 처했을 때 공을 세운 28종류의 공신과 성격이 다르다. 생전에 공적이 많은 사람을 해당 제왕이 세상을 떠난 뒤 선정한 건데, 이완용이 순종 묘정에 배향된 적도 있었다. 


정전과는 달리 영녕전에는 공신당이 없다. 태조의 4대조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는 추존왕이기 때문에 배향공신이 없는데, 영녕전에 모셔지는 후대 왕들이 공신을 데리고 들어가는 것은 조상에 대한 예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 그러나 공신당이 없다고 해도 엄연히 영녕전에 모셔진 임금의 배향공신까지 포함하여 총 92명을 종묘 배향공신으로 간주한다.


칠사당(七祀堂)
정전의 남쪽 신문으로 들어가면 서쪽에 위치한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 국행지신(國行之神 : 도로를 주관하는 신), 공려지신(公厲之神 : 후사가 없는 제후의 신), 국문지신(國門之神 : 출입을 주관하는 신), 중류지신(中霤之神 : 당실과 거처를 주관하는 신), 사조지신(司竈之神 : 음식의 일을 주관하는 신), 사호지신(司戶之神 : 출입을 주관하는 신), 사명지신(司命之神 : 사람의 선악에 따라 응보하는 신) 일곱 소신의 위패를 모시고 사계절에 나라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던 사당이다. 계절에 따라 봄에는 사명과 호, 여름에는 조, 가을에는 문과 여, 겨울에는 행과 중류를 모신다. 이들 중 사명과 여를 제외한 다섯 신은 따로 오사(五祀)라고 한다.

 

 


정전 서문

 


영년전 정문

 


영녕전(永寧殿)
보물 제821호. 정전에서 옮겨진 제왕과 왕후, 그리고 추존된 제왕과 왕후의 신주를 모시고 있는 별묘(別廟)로 정면 16칸, 측면 4칸의 건물. 세종 3년(1421) 5묘제의 관습에 따라 정전에서 나와야 하는 선조들의 신주를 모시기 위해 건립되었다. 간단하게 말하면 "조금 덜 중요한 왕들"의 위패가 모셔진 곳. 제왕의 신주 16위, 왕후의 신주 18위 총 34위가 모셔져 있다.

영녕전의 부재 처리나 건물 규모는 정전보다 약간 작지만 전반적인 공간 구성은 정전과 비슷하다.  

 

 


영녕전 동문

어판위대, 세자판위대가 있다.

 

 

영녕전 동문의 태극 문양 신방목

 

 


정전 악공청(樂工廳)
종묘제례시에 음악을 연주하는 악공들이 준비, 연습하고 대기하는 곳. 정전과 영녕전 바깥 서남쪽에 각각 있다.



우거진 숲, 시원한 바람, 정갈한 환경, 조용한 분위기 때문에 참배 내내 도심을 전혀 느끼지 못 했다.

왕의 위패를 모신 경건한 공간이어서 어쩔 수 없겠지만, 현재는 가이드와 동행하는 참배 시간이 1시간으로 너무 짦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1주일에 1번 쯤, 2시간으로 진행하는 코스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종묘제례악을  참관 할 기회는 있을려나.


2018.05.00

(종묘 홈페이지.다음백과사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나무위키을 참조,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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