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순천시

순천...선암사 1불 2탑 3부도

임병기(선과) 2017. 2. 21.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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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1불 2탑 3부도

선암사 중수비 명문을 검색하면서 알게되었다.

더불어

선암사의 2기 마애불을 덧붙힌다.

 

 

선암사중수비명巖寺重修碑銘...출처/한국금석문종합영상정보시스템

 

승평부(昇平府) 조계산(曹溪山) 선암사(仙巖寺) 중수비명(重修碑銘)과 서(序)
우리 임금 24년 무인년(숙종 24, 1698년)에 선암사(仙巖寺) 약휴(若休, 호암(護岩)대사, 1664~1738년. 소요 태능의 손제자, 침굉 현변의 제자) 대사가 절의 북쪽에 원통각(圓通閣)을 만들고 이듬해에 성상(聖相) 1구를 만들었으며 또 3년에는 53불의 전단상(旃檀像)과 불화(53불탱)를 조성하였다. 다시 이듬해에는 대법당(大法堂)을 중수하고 아울러 오십전(五十殿)의 낡고 새는 기와를 바꾸었다. 일이 다 끝나자 문서를 가지고 와서 글을 청하였다.


우리 동방에는 산이 많은데 부처의 거주처가 바둑판처럼 많이 세워졌으니 그 맨 처음이 황룡사(皇龍寺, 경주에 있던 신라 창건의 웅장한 절)이다. 그 번성함은 신라의 자장(慈藏)과 도선(道詵) 두 국사(國師)가 선후하여 이룬 것이다. 고기를 보면 도선이 당나라에 공부하러 가서 대덕(大德)을 만나 비보(裨補)가 되는 곳을 모두 3천 5백 개소를 얻었다. 그중에 호남에 삼암(三巖)이 있으니 낭주(朗州)의 용암사(龍巖寺)와 희양(晞陽)의 운암사(雲巖寺)와 또 하나가 승평의 선암사이니 대개 가서 자리를 본 것이다. 선암사는 부의 치소(治所)에서 서쪽으로 40리이니 조계산(曹溪山의 호혈(虎穴)의 응달에 있는데 옆으로 세워 열 길이나 된다. 그 위에 옛날 선인의 도끼자루가 문드러진 자취가 있다고 한다.


여기에 큰 도량을 세워 그 동쪽에 철불(鐵佛) 한 구와 보탑(寶塔) 둘, 부도(浮圖) 셋이 있고 석종(石鐘)이 있어 높이 10여 척에 크기가 몇 아름이나 되었다. 빛은 괴이하여 항상되지 않아 송나라 원우(元祐) 연간(1086~1093년)에 절이 퇴락해져 의천(義天, 1054~1101년. 천태종을 창시하고 화엄종을 발전시킨 고려의 고승. 중국과 한국의 불교 전적을 모은 교장(敎藏)을 편찬하여 고려 불교의 높은 수준을 확립함) 대사가 중국에서 돌아와 슬퍼하며 복구하고 말하기를, “도선국사께서 법안(法眼)으로 삼계(三界)를 관찰하시고 그 기다림이 있어서인가” 라고 하셨다.


그뒤 365년이 지나 우리 선조(宣祖) 정유년(선조 30, 1597년)에 병란(정유재란)에 불타고 석종은 손상을 입었으나 오직 철불과 보탑과 부도와 문수전과 조계문만은 홀로 지탱하였다. 오래지 않아 경잠(敬岺)과 경준(敬俊)과 문정(文正) 세 노장이 복구하고자 하여 전각이며 당우며 누각이며 방장으로 둘러 쌌는데 대법당이 가운데 우뚝 선 것은 그 옛 모습을 고려한 것이다. 홀로 예전에 전이라 불러 엎어놓은 석종을 봉안한 것이 미륵전이었는데 지금 그 터에 대법당을 지었다. 약휴 대사에 이르러 그 공을 크게 모아 인연을 모아 전대를 털어 전후 8년 동안 무너지려 하는 것을 가지고 아직 마치지 않은 바를 추구하여 백 여 년 후에 처음처럼 화려하게 하도록 하고자 하는 것은 대개 정성된 마음에서 보호하여 대대로 흥성하게 함으로써 이전보다 빛나게 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모두 일컫기를 호암(護巖)대사라 하였다.


아아. 처음 만들기는 어렵고 이를 지키기도 쉽지 않다. 대사와 같은 이는 능히 지킬 수 있다고 할 것이다. 절에는 무리를 이루어 잔치하는 풍습이 있어 절기 때는 더욱 성행하였다. 근래에 침굉(枕肱, 1616~1684년. 이름은 현변(懸辯). 서산대사의 손제자, 소요 태능의 제자, 호암 약휴의 스승) 대선사(大禪師)가 묵언(默言) 모임을 만들어 풍습을 새롭게 하였다. (하략)


가의대부(嘉義大夫) 행승정원도승지(行承政院都承旨) 겸 경연참찬관(經筵參贊官) 춘추관수찬관(春秋館修撰官) 예문관직제학(藝文館直提學) 상서원정(尙瑞院正) 이진휴(李震休) 씀
가선대부(嘉善大夫) 사헌부대사헌(司憲府大司憲) 권규(權珪) 전액을 씀
선교랑(宣敎郎) 수사간원정언(守司諫院正言) 지제교(知製敎) 채팽윤(蔡彭胤) 지음

숭정기원후 80년 정해(숙종 33, 1707년) 임종월(6월) 일 세움

 

 

 

1불

각황전에 봉안된 철불이다. 훼손되어 보수하였기 때문에 원형을 알 수 없으며 개금된 상태이다.
나발에 육계가 높고 상호는 역삼각형에 가깝고, 눈두덩이 넓은 것이 특징이다. 삼도가 보이며 귓불이 두툼하다.

법의는 우견편단,가슴은 약간 불룩하며 무릎은 높다. 양 무릎 사이의 옷주름은 부채꼴로 형상화되었고, 대좌는 유실되었다.
고려 초기에 제작된 불상으로 추정된다.

 

 

선암사 선각마애약사여래좌상

볼륨감이 없는 불신, 원형의 두광을 표현하였고 소발에 계주가 높다

연화대좌위에 결가부좌이며 약합을 지물로 들고 있다.

 

 

 

 

광무팔년갑술삼월光武八年 甲戌 三月 . 1903년에 조성된 약사여래이다.

 

 

 

선암사 마애여래입상

 

 

대각암 초입에 계신다.

음각으로 새긴 여래상이며 나발, 육계가 솟아 있고 상호 원만하며 백호가 표현되었다. 눈과 입, 코 등이 균형 잡혀 있으나 눈꼬리가 치켜져 올라간 모습이다. 귀는 크게 묘사되었다. 법의는 우견편단으로  몸 전체를 덮고 있다. 목에는 삼도가 보이나 도식화되었고 가슴에는 만卍자가 음각되어있다 .오른손은 다리 밑으로 수직이 되게 내려뜨려 손가락을 편 수인이며  왼손은 팔을 굽혀에 붙여 중품인을 취하고 있다. 마애불 좌측에는 갑진삼월일甲辰三月日란 명문이 있으나 편년은 확인 되지 않는다. 조성시기는  고려후기로 전한다.

 


상호

 


만자문字紋

삼도 아래 가슴에 음각으로 새겼다.

본래부터 새겼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갑진삼월일甲辰三月日 명문

 

 

 

2탑


선암사동서삼층탑 

대웅전 중정 동서삼층석탑으로 거의  쌍탑에 가깝다. 지대석 위에 이중기단으로 하기단저석과 면석은 일석이며 갑석 상부에는 각호각의 괴임을 두었다. 감입식으로 결구한 상기단 면석에는 하기단 면석 처럼 양우주와 1개 탱주를 모각하였다. 부연을 표현한 갑석에도 각호각 괴임을 조출하였다. 탑신에는 양우주만 모각하였고, 옥개석과 더불어 하나의 돌이다. 옥개석 물매는 깊지 않으며 처마 하부는 수평이며 상부에는는 약간의 반전이 보인다. 옥개석에는 풍탁공이 있으며  상부에는 2단 괴임을 두었고 받침은 전층 4단이다.상륜에는 노반,앙련, 보주가 남아있다. 조성시기는 9세기로 전한다.

 


서탑 

 


서탑 상하기단

 


상기단 갑석

 

 

탑신과 상륜부



서탑

 

 

동탑

 


하기단.지대석

 


상기단 갑석.초층 탑신

 

 

탑신과 상륜



동탑

 

  

 

3부도

 

동부도

선암사 뒷편 차밭 중앙으로 난 길을 올라서면 동부도,북부도 이정표가 보인다. 동부도는 이정표에서 개울을 건너 50여미터 진행하여 좌측 길로 오르면 보인다.사찰경내의 3기 고려시대 부도 중 하나로 팔각원당형이다.


기단은 팔각 지대석 위에 안상이 조각된 괴임대를 마련한 하대석를 두었다. 아랫면에는 구름무늬, 윗면에는 1단의 팔각 괴임대를 마련하여 중대석의 앙련을 받치고 있다. 중대석과 상대석은 한 돌이며 물결무늬와 앙련이 장식되어 있다. 팔각 탑신은 상단이 좁아진 상촉하관형이고 문비, 봉황,·인왕상이 조각되어 있다. 뒷면에는 문고리가 달린 문짝을 조각해 두었다. 옥개석 낙수면의 팔각 우동마루 끝에는 귀꽃문이 장식되어 있다. 옥개석 상부에는 원형과 팔각 괴임을 두고 앙화를 올렸다. 위에 귀꽃이 표현된 팔각 보개를 올리고 상부에 화염보주를 표현하였다.

조성시기는고려 초기로 추정된다.

 


동부도

 


하대석,중대석과 상대석

중대석과 상대석은 한 돌이다.

 


탑신

 


상륜

 


탑신석 문비

 


탑신석 인왕상

 


탑신석 인왕과 봉황(?) 

 


동부도

 

 

북부도

부도 이정표가 가르키는 방향 산길을 따라 가면 경전을 설치해둔 휴식터가 있으며 약간 경사로를 오르면 된다.

동부도 처럼 팔각 원당형으로 선조암지 부도로도 불리운다. 하대석에는 사자상,구름무늬, 중대석과 상대석은 일석으로 중대석에는 안상, 상대석에는 연꽃문이 장식되어 있다. 상대석 상부 연화문이 조식된 높은 괴임돌 위에 탑신을 올렸으며  각면에 우주가 조각되었고 문비와 인왕상 등이 조각되어 있다. 옥개석은 낙수면의 합각선이 뚜렷하고  전각에는 귀꽃문이 장식되었다. 상륜부에는 앙화,보륜,·보개를 갖추고 있다. 동부도와 더불어 고려초기에 조성된 부도로  추정된다.

 


하대석

 


중대석과  상대석

 


탑신석. 문비와 인왕

 


상륜부

 


북부도

 

 

대각암 부도

대각암은 대각국사 의천(1055∼1101)이 선암사 암자에서 크게 깨달았다 해서 대각암이라고 전한다.

동부도,북부도와 동일한  8각원당형 부도이다.  방형 지대석에  8각 괴임대가 마련되고 각면에 안상을 새겼다. 하대석은 하단 괴임대를 돌리고 측면에는 운문으로 장식하였다. 중대석에는 이중의 괴임을 두고, 복련 위에 1구씩의 안상이 조각되었다. 상대석  8판 앙련이 둘러졌으며 상면에 3단의 괴임을 두었다. 탑신 각면에 우주가 모각되고 전후면에 문비와 자물쇠를 새겼다. 옥개석 낙수면에는  내림마루가 두텁게 표시되었으며  전각에는 귀꽃이 피어있다. 옥개석 상부에 팔각괴임을 두고 앙화,·보륜,화염보주로 장식하였다. 고려 초기의 부도로 추정한다..

 


지대석과 하대석

 


중대석

 


탑신석 문비

 


상륜부

 


바쁘게 서둘러 주마간산식 답사가 된 느낌이다.

주차장에서 부터  버스시간에 맞추어 3시간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자승자박의 업보를 결자해지하는 마음으로 만산홍엽의 가을 날  뚜벅이 답사를 도모해야겠다.


2017.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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