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의 미답처로 남아 있던 일미사지一味寺址를 2002년 이후 처음 뵌 창녕향토사연구회 김량한 회장. 부회장인 우리카페 우포(성득용)님. 창녕으로 귀촌하신 산길나그네님과 함께 찾았다.
일미사지一味寺址 일미사지는 화왕산 남쪽 능선에 해당하는 석대산 남쪽 일매곡 에 위치한 사지로 고려 공민왕 재위시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여 개혁에 앞장섰던 승려 신돈이 태어났다는 사찰로 전한다. 이후 동국여지승람.여지도.범우고 등의 고서에서는 기록이 보이나 1852년 경상도 읍지에는 폐사되었다는 기록이 있어 19세기 후반 폐사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사지에는 있던 석조와 맷돌은 창녕박물관으로 올겨갔며 현재 사역에는 부도만 남아 있다.
사방댐
이미 답사했던 김량한님과 우포님 덕분에 일사천리로 부도를 뵈었다. 일매골길 32-7를 입력하면 계성면 사리 문암정으로 진입하여 마을 뒤쪽 민가에 이른다. 이 주소지를 지나 임도로 민가 2 곳을 지나면 좌측에 펜스와 사방댐이 보인다. 차량은 여기에 주차하면 된다.
진행방향 대숲 사이길
대숲이 끝나는 지점 평지(여름에는 잡초가 우거져 길이 보이지 않을 것 같다) 작은 개울을 건너 좌측 소나무가 보이는 길로 올라 간다.
개울 건너 10여미터 길을 막는 바위 2개(우포님이 나오는 지점)좌측으로 진입 (역시 여름에는 길이 없을 듯)
다시 개울 건너 오르막 위 민묘가 보인다. 민묘 앞에서 12시 방향 능선을 따라 내려오면 30여미터 아래에 부도가 보인다.
일미사지 사송당최백대선사지탑四松堂最栢大先師之塔
방형대좌 위에 탑신괴 상륜을 일석으로 조성한 2미터 이상의 큰 석종형 부도 탑신 상부 외곽을 평편하게 치석 후 중앙에 괴임을 두었으며, 위에 윤대를 올리고 보주로 장식한 조선 후기 부도이다. 부도의 유형이 눈에 익숙하다.
상륜부
사송당최백대선사지탑四松堂最栢大先師之塔 눈에 익숙한 부도이어서 비술산 주변 부도전을 찾아 보았더니, 청도 용천사 부도전 부도를 조성한 동일 장인 집단의 부도로 추정되었다. 잊고 있었지만 그곳에도 사송당최백선사四松堂最栢大先師부도가 있었다. 그외에 창녕 대흥사지 부도(청련암으로 이건), 달성 유가사 부도전, 용연사 부도전에 비슷한 유형의 부도가 봉안되어 있다. 청도 용천사 부도전(2009년 1월 6일) 앞쪽 우측 '사송당 최백 대사(四松堂最栢大師)', 우운당 진희 대사(友雲堂眞熙大士)', 청심당□□대사(淸心堂□□大士)' 부도, 뒷쪽 좌측 대허대사. 우측 회진대사 부도 청도 용천사 부도전(2009년)
청도 용천사 사송당부도를 비롯 모든 부도의 유형은 방형 지대석 위에 복련과 앙련이 조식된 하대석과 상대석을 조성한 후 위에 탑신을 올린 보습이다. 그렇다면 동시대에, 동일장인그룹의 작품 작례로 추측되는 일미사지 부도에도 지금은 결실되었지만 처음에는 상,하대석이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충분하지 않을까? 사송당 대사의 행적은 전하지 않는다 다만 청도 용천사가 임진왜란의 전화를 입은 후 1631년(인조9년) 조영대사(租英大師가 중창하였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용천사 중창 이후 17~18세기경 비슬산 자락의 사찰에서 주석한 선승이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청도 용천사 부도 상대석 명문 기사구월일 己巳九月日 개인적으로는 용천사 사세가 절정이었을 1749년으로 추정한다.
창녕박물관 일미사지 석조.맷돌
길을 안내해주신 김량한 회장님. 성득용부회장님, 함께한 정태욱 교수님께 거듭 감사 인사 드립니다.
2017.0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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