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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인천광역시

인천...시립 박물관

by 임병기(선과) 2016.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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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5일

우리카페 인천에 거주하는 오로라님과 함께 들린 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충청도 홍성지방의 매향비를 뵐려고 다시 왔습니다.

 

하지만

매향비는 수장고에 보관중이며

출타중인 담당자는 공문을 보내면 열람을 검토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럴때

저의 소속은 무엇으로 기재하면 좋겠습니까요?

 

사진을 부탁했지만

역시 동일한 절차를 거친 후에 메일로 송부한다는 이야기가 돌아왔습니다.

 

관계,학계, 재계에 인맥 없는 놈에게

오픈 할 까닭이 있겠나요?

(우리나라 매향비에 관한 종합적인 글을 써고 싶었는데  이제 접을렵니다)

 

예전에

태백석탄박물관 수장고에 보관중인 본적사지 석탑재(지금은 복원됨)는 쉽게 보았는데...


박물관 내외의 사진 몇 장 올립니다.

예전에 답사기 올렸다는 핑계로(사실은 게으름병)...

 


부도 일력루 헌납비 敷島 一力樓 獻納碑

신흥동(부도)에 있었던 유곽에서 사찰에 헌납한 비석이다.

술집 일력루에서 일본계 사찰 편조사遍照寺에 시주를 한 것을 기념하기위해 세운 비석으로 추정한다.

 


잠령공양탑(蠶靈供養塔).1926

인간에게 희생된 누에 영혼을 위로하고 누에 농사가 잘 되기를 기원하며 세운 탑.

결과적으로는 우리 농촌에서 행해진 수탈의 일면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된다.

 

 

일본화방공사 일행 조난지비 日本花房公使 一行 遭難之碑

1882년 일본공사 하나부사 요시타다와 일행이 월미도를 통해 조선을 탈출하기전, 인천 도호부 관아에서 머물렀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 1934년 세운 비석으로 2002년 발견되었다.

 

 

삼층석탑

일설에는 충남 보령에서 옮겨온 석탑이라고 전한다.

여러기 석탑 부재가 혼재되었 있으며,고려시대 석탑으로 추정한다.

 

 

원대철제범종 (元代鐵製梵鍾)

중국 범종 특유의 모습을 하고있는 높이 2.45m의 중국 원나라 범종으로 고려 충렬왕 25년(1299)에 만들었다. 종을 매다는 고리 역할을 하는 용뉴는 2마리용을 사실적으로 조각하여 살아 움직이는 것 같으며, 종의 어깨부분은 둥글고 위쪽으로는 덩굴무늬를 새겼다. 덩굴무늬 사이에는 8개의 구멍을 뚫어 우리 범종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종의 몸체에는 ‘황제만세, 중신천추’의 글자가 새겨 있으며, 정사각형 무늬를 종의 중간 띠 아래와 위에 새겼다. 종 입구는 8개의 반원 모양으로 곡선을 이루고 있으며, 그 사이사이에 8괘를 배치하였다. 원래 중국에 있던 것을 일본이 전쟁 막바지에 빼앗아 부평조평창에 옮겨 두었던 것을, 해방 후 발견하여 인천 시립박물관에 보관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명대철조범종(明代鐵製梵鍾)

종뉴에 사라의 얼굴모양이 조각되어 있고, 어깨에 8개의 구멍을 내고 사이사이에 운문을 새겼다.

숭정11년(1638년) 주조 일자와 풍조우순국태민안風調雨順國泰民安 명문이 있어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며 조성한 범종임을 알 수 있다.

다른 두 종과 함께 일제강점기에 중국에서 공출된 종이다.


 

송대철제범종 (宋代鐵製梵鍾)

종을 매다는 부분인 용뉴는 2마리의 용이 조각되어 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마모되기는 하였지만 아직도 웅장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종의 몸 윗부분에는 크고 작은 명문이 새겨 있으나, 마모가 심하여 글자를 확인하기 어렵다. 종의 입 부분은 8개의 반타원형을 이루고 있다. 입구와 몸체 사이에 용을 조각함으로써 전체적으로 단순하면서도 화려하고, 웅장하면서도 안정된 느낌을 주고 있다. 이 종은 몸체의 명문이 마모되어 정확한 제작연대를 알 수 없지만 형태와 의장 등을 고려해 볼 때, 중국 당나라 양식이 반영된 중국 송나라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청동관음보살좌상

이중의 앙련대좌 위에 윤왕좌를 취하고 있으며, 오른쪽 다리 위에 오른팔을 자연스럽게 올려놓았고 왼손은 바닥을 짚고 있다.
연주문 띠를 두른 보관을 쓰고 있는데, 윗부분이 결실되었다. 머리카락은 정수리 부분에서 크게 한 묶음으로 뭉쳐 올려 보계를 표현하였다. 보관 밑으로는 연잎처럼 생긴 둥근 여섯 개의 머리카락을 표현하였으며, 이마에는 백호가 뚜렷하다. 눈꼬리가 위로 올라간 큰 눈과 작은 입술의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가 보인다. 귀는 얼굴에 비해 짧은 편으로 귀밑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어깨와 맞닿는 부분에서 양쪽 모두 떨어져 나가고 없어 어깨 위에 하나의 원을 이루고 세 가닥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확인할 수 있다.

가슴부분에는 화려한 영락장식이 드리워져 있다.어깨 뒤로 두른 천의자락은 오른쪽 팔 위에 길게 드리워져 있으며 왼쪽자락은 왼팔을 타고 바닥에 닿아있다.대좌의 뒷면에는 양각으로 주조된 명문이 있는데, 이를 통하여 이 상이 조성된 곳은 경안리라는 곳이며 존명은 관음상임을 알 수 있다. 참여한 여러 시주자의 이름을 적혀 있지만, 명문의 일부가 손상되어 자세한 사항을 알 수 없고, 조성연대도 나와 있지 않다.  관음상은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이 중국에서 공출해온 것으로 부평 조병창에 있던 것을 광복 이후 우리 박물관에서 인수하였다.


 

 

 

 

 


목조여래좌상

양손이 훼손되어 수인은은 확인할 수 없다. 상체는 어깨를 다소 움츠리고 머리를 약간 앞으로 숙이고 있다. 나발에 육계가 솟아 있다. 방형 상호, 초승달 같은 눈썹, 가는 눈, 작은 코, 입에는 미소가 보인다.양 귀는 길어서 어깨까지 닿아 있다.  백호가 있으며 삼도가 뚜렷하다. 법의는 통견이다.옷주름은 일정한 두께를 가지며 좌우 균형을 이루는 형식이다. 특히 U자형으로 넓게 패인 앞가슴의 군의 띠 매듭은 좌우대칭 주름과 함께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있다. 결가부좌, 두 무릎은 비교적 양감을 잘 나타내고 있다.조선 초기 불상으로 전한다.

 

 

 


목조보살좌상

조선시대 목조보살상이다. 머리에는 관을 쓰고 있고, 관 사이로 나온 머리카락은 어깨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무표정한 상호, 신체는 머리에 비해 작게 표현되어 비례가 맞지 않는다. 양 어깨를 감싼 통견의 법의, 옷주름은 간단하게 처리하였다.왼손을 잃어버렸고 오른손은 손가락이 깨져서 정확한 모양을 알아보기가 어렵다.

 

 

 


향완


 

이 분들은

내마음 헤아릴련가?

 

2016.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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