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후면 도진리 석류동천 초입 석류동문石榴洞門 석류동으로 들어가는 입구, 또는 석류동천의 시작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현재는 석류동문 암각 글씨 앞 다리를 건너기 전 우측으로 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예전에는 석류동문 계곡을 따라 진입로가 이어졌을 것이다.
동천 주변은 논, 둑 등으로 예전 모습은 아닐테지만 상류로 올라가면 수려한 풍광이 전개 되며 오랜세월 석회질(?) 암반을 뚫고 계곡물이 작은 폭포를 이루며 흘러 내리는 흔치 않은 장면을 볼 수 있다.
상류쪽 계곡 중앙 지주석砥柱石 지주중류砥柱中流를 상징한다. 지주砥柱는 중국 황하 중류에 있는 산으로, 중국 수경주水經注에 따르면, 우禹 임금이 치수治水를 할 때 산 언덕이 물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에 산의 좌우를 파냈다. 이렇게 해서 강물은 산의 양쪽으로 갈려 흘러가게 되었는데, 그 산의 모습이 물 속에 기둥처럼 솟아 있었으므로 지주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난세에도 의연하게 절개를 지키는 인물 또는 그러한 행위를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즉 지주중류는 곧은 절개, 지조, 임금에 대한 충성을 상징하며 그러한 인물의 신도비 등에는 구미의 길재 야은 묘소 앞 처럼 지주중류비砥柱中流碑를 세운다. 동일한 상징의 비석으로 경북 성주의 백세청풍비 등의 사례가 있으며, 백이숙제도 같은 의미이다. 비석 뿐만 아니라 전각에도 백세각, 청풍각 등의 당호를 사용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따라서 석류동천의 지주석은 특정인의 절개를 기리기 위한 비석이 아니며 계곡 중앙에 위치한 바위의 모습에서 유래된 듯 하다. 거연대居然臺 주자의 무이정사잡영武夷精舍雜詠 12수 중 첫수에서 거연아천석居然我泉石에서 유래하였으며 '물 과 돌이 어울린 자연에 편안하게 사는 사람이 된다.'는 의미이다. 朱熹주희〈武夷精舍雜詠무이정사잡영〉12首
정사(精舍) 12-1 琴書四十年 거문고와 책을 벗 한지 40년 幾作山中客 몇 번이나 산중의 객이 되었던가 一日茅棟成 어느 날 띠 집 하나를 완성하니 居然我泉石 확실히 나의 샘과 산이 되었네
인지당(仁智堂) 12-2 我慙仁知心 나는 인과 지의 마음에 부끄러운데 偶自愛山水 우연히 스스로 산수를 사랑하도다 蒼崖無古今 푸른 산악은 예나 지금이나 같고 碧澗日千里 푸른 시내는 날마다 천리에 있네
은구실(隱求室) 12-3 晨窓林影開 새벽 창에 숲 그림자 열리고 夜枕石泉響 밤중 베갯머리엔 샘물 소리 울리네. 隱居復何求 은거함에 다시 무엇을 구하며 無言道心長 말없는 가운데 도의 마음은 자라네
지숙료(止宿寮) 12-4 故人肯相尋 친구가 서로 찾는 것을 즐겨하여 共寄一茅宇 함께 띠 풀 집에 머물렀네. 山水爲留行 산수에 머물렀다 가니 無勞具鷄黍 힘쓰지 않아도 닭 모이를 갖추어주네.
석문오(石門塢) 12-5 朝開雲氣擁 아침이 열리면 구름 기운에 안기고 暮掩薜蘿深 해 질 녘이면 담쟁이 넝쿨 무성 하네 自笑晨門者 새벽 문에 기대어 홀로 웃는 이 那知孔氏心 어찌 공자님의 마음을 알까?
관선재(觀善齋) 12-6 負笈何方來 스승 찾아 어디에서 오셨는가? 今朝此同席 오늘 아침 자리를 함께 했네 日用無餘功 날마다 하는 공부로 다른 일 없이 相看俱努力 서로 격려하며 같이 노력할 뿐
한서관(寒棲館) 12-7 竹間彼何人 저 대숲에 서있는 이 게 누구인가 抱甕靡遺力 옹기를 안고 힘쓰기를 버리지 않네 遙夜更不眠 긴긴 밤 다시 잠 못 이루어 焚香坐看壁 향 피우고 앉아 벽만 처다 보네
만대정(晩對亭) 12-8 倚笻南山巓 지팡이에 의지해 남산 정상에 오르니 卻立有晩對 도리어 만대봉(晩對峰)이 서 있네 蒼峭矗寒空 푸르고 높게 차가운 하늘과 가지런한데 落日明影翠 저녁놀은 푸른 절벽을 선명하게 비추네
철적정(鐵笛亭) 12-9 何人轟鐵笛 어떤 사람이 철적을 요란하게 噴薄兩崖開 뿜어내어 양쪽 언덕을 열었네 千載留餘響 천년의 남은 소리 남아 있으니 猶疑笙鶴來 오히려 생황 부는 학이 오는 듯하네
조기(釣磯) 12-10 削成蒼石稜 깎아 세운 푸른 모서리 倒影寒潭碧 찬 못에 비쳐 푸르도다 永日靜垂竿 종일 조용히 낚시를 드리우니 兹心竟誰識 이 마음을 끝내 누가 알리
다조(茶竈) 12-11 仙翁遺石竈 선옹이 돌 아궁이 남겨 놓았으니 宛在水中央 완연히 물의 한 중앙에 있도다 飲罷方舟去 차를 다 마시고 배로 나아가려고 하니 茶烟裊細香 차 연기는 향기를 내며 하늘거리네
어정(漁艇) 12-12 出載長烟重 나갈 때는 무거운 안개를 오래 싣고 歸裝片月輕 돌아올 때는 가벼운 조각달을 싣고 오네 千巖猿鶴友 많은 바위는 원숭이와 학의 친구이고 愁絶棹歌聲 뱃노래 소리에 근심이 사라지네
석류동천石榴洞天. 원래 위치는 지주석 위쪽에 있었으나 계류를 정비하면서 계곡 밖으로 들어 내었다.
동천은 중국의 도교의 신선사상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널리 전파된 도교의 이상향을 뜻한다. 안동에는 석류동천石榴洞天 외에도 마고동천麻姑洞天, 운안동천雲安洞天, 도화동천桃花洞天, 용암동천龍巖洞天, 봉강동천鳳岡洞天이 있다고 한다. 석류동천은 율재(慄齋) 이수걸(李秀杰, 1877~1963)이 지은 "석류동기(石溜洞記)"에 따르면, 이곳을 예전에는 석퇴라고 불렀는데 빼어난 경치에 비하여 이름이 걸맞지 않으므로 당나라 시인 왕유(王維)의 시 "난가뢰(欒家瀨)"에서 삽삽추우중천천석류사 "颯颯秋雨中 淺淺石溜瀉'라는 구절에서 따와 ‘석류동’으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난가뢰欒家瀨...왕유王維
삽삽추우중 颯颯秋雨中 후두두 가을비는 내리고 천천석류사 淺淺石溜瀉 개울물은 소리내어 돌 사이를 흘러 내린다. 도파자상천 跳波自相濺 물살이 부딪쳐 물방울을 일으키고 백노경복하 白鷺驚復下 놀란 백로는 (날라 올랐다가) 다시 내려 앉는다.
지자체에서 관심을 갖고 정비를 하여 시민들에게 휴식공간 제공과 더불어 자연과 동화하여 살아가려는 선조들의 물아일여의 사상관과 지조와 절개 등 암각자에 새긴 상징성을 짚어보고, 선비정신을 되새겨 볼 수 있는 유용한 장소로 개발되었으면 좋을 것 같다. 따라서, 석류동천 암각바위를 제위치에 옮겨야 하며, 문화재 지정이 시급해 보인다. 2016.09.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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