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안동시

[스크랩] 안동 검무산 앤 신도청

임병기(선과) 2016. 4. 27.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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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

내고향마을 방천을 가득 채웠던 연초록의 향연



잊고 살았던

저 먼 곳의 추억을 들추어내는 왕버들



입석도 정겹게 마중을 나왔군.



신도청의 주산. 검무산


검무산은 산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큰 산이라고 거물산, 드리워진 검은 구름처럼 우뚝하다고 흑운산, 산의 모습이 마치 모자를 쓴 사람과 닮았다고 검모산, 현재는 검무산(劍舞山, 劍無山)으로 불리며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검무산 왼편 정산자락에는 안동 권씨의 가일마을이 600년 터를 잡고 있다. 세종 때 정랑을 지낸 참의공 권항이 입향조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의병장들을 배출했다.  그 가운데 병곡 권구(1672~1749)선생은 서애 류성룡과 갈암 이현일의 학맥을 계승하면서 평생을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처사로 보냈으나 학문과 인격이 뛰어나 안동 권문을 중흥시켰다.


그의 문집인 ‘병곡집’에 검무산에서 기우제를 지냈다는 제문이 실려있는 것으로 보아서 적어도 300년 이전부터 근방에 사는 사람들은 이 산을 검무산(劍舞山)으로 불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산이름에서 감지되듯이 이 산은 강한 기운을 가지고 있고 다양한 토템 신앙의 형태로 신성시됐음을 알 수 있다.


 육당 최남선 선생은 우리말 가운데 종교적 혹은 제의적 신성을 의미하는 말의 초성에 ‘ㅅ’이 많고 주음절이 ‘ㅅ.ㄹ’로 된 것이 많다고 했다. 하늘을 대표하는 것은 해이고 해는 신으로 여겨져 고대로부터 제천의식의 대상이었다.


 고대 하늘과 태양을 대행하는 새가 바로 수리 혹은 솔개였다. 신라 왕족의 왕관에 솔개문양이 올려지고, 동네 어귀마다 솔개로 솟대가 세워진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만큼 솔개는 선조들이 신성하게 여긴 새였다.


현재 대한민국의 경찰휘장이 바로 솔개 혹은 참수리이니 분명히 증명된다.
게다가 검(劍) 또한 권력의 상징이고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기물이다. 따라서 솔개처럼 영험한 모습을 한 산에 올라 제천의식을 행하였기에 산이름을 검무(劍舞)로 불렀을 가능성이 많다. 갑골문에 보이는 무(舞)와 무(無)는 유사한 글자로 춤추는 형태이기에 더욱 그렇다.




지난 밤

과음에 육신은 괴롭지만 청정한 봄기운에 발걸음을 재촉한다.



등산로 데크 설치는 현재 진행형



죽겄지?


이 와중에도

양규야. 손들어 했더니 순순히 ㅎㅎ


찬수왈!!!

-너 내얼굴 짜르고 찍었지?

-와?

-내가 평상시에 후배 고롭혔잖아!!

-짜슥!!!



청사 약도로서 3시방향에 정문을 기준으로 정면에 지하주차장 입구가 나오고 왼쪽 시계방향으로 주차장과 옥외화장실, 화랑마당, 대동마당, 동락관이 있습니다. 동락관에서 시계 방향으로 후문이 나오고 홍익관과 본청 의회 건물이 나란히 있으며 의회건물 왼쪽에 정문이 있습니다.

정면사진으로 위의 사진과 반대이다.

(1)안민관 (2)도의회 (3)홍익관 (4)동락관 (5)동문 (6)서문 (7)솟을삼문 (8)주차장

(9)지하주차장 입구 (10)새마을광장 (11)화랑마당 (12)옥외화장실




안민관.홍익관.동락관







오늘 하루

마부꾼 승환아!!

니는 이분위기를 모르지?

ㅋㅋ

쪼츰바리 한다고 욕봤다.




승환아!!

오데 갔노?



여개는 승환가 보이내!!!


쓰리 林임의 시작이었지?



고사리!!!


고사리 땜에

재길이 한테 못난 놈 되었다.


쓰리 林임의 두번째 비화!!



할미꽃 전설

예전에 내가 갈쳐 주었는데 이자뿌찌?


옛날 어느 마을에 3명의 손녀를 데리고 사는 할머니가 있었다. 마을에서는 손녀들 간에 우애가 좋고 할머니에 대한 효심도 깊어 부러움을 사는 집이었다. 시집갈 나이가 되어 손녀들은 순서대로 혼인을 했는데 얼굴이 잘 생긴 첫째와 둘째는 넉넉한 집안으로 출가를 했지만, 그렇지 못한 막내는 가난한 사내를 만났다. 첫째와 둘째가 번갈아 가며 할머니를 모시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손녀들의 구박이 심해졌다. 하는 수 없이 할머니는 막내 손녀에게로 갔다. 가난하지만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오순도순 사는 막내 손녀 부부는 할머니를 반갑게 맞아 주었고 극진히 모셨다.


그런데 너무 가난한 나머지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고 그 사실을 눈치챈 할머니는 ‘입이라도 하나 덜어 주자’는 생각으로 둘째 손녀네로 가려고 집을 나섰다. 때는 엄동설한이라 할머니는 멀리 가지 못하고 산중에 쓰러져 숨을 거두고 말았다. 막내 손녀 부부는 할머니를 찾아 헤맸지만 찾지 못한 채 이듬해 봄을 맞았다. 눈이 녹은 후에야 싸늘한 주검으로 변한 할머니를 찾을 수가 있었다. 슬픔에 빠진 막내 손녀 부부는 할머니를 돌아가신 곳 근처 햇볕이 잘 드는 곳에 묻어 드렸다.


얼마 후 그곳에서는 막내의 집 쪽을 향해 허리를 구부린 채 활짝 웃고 있는 붉은색 꽃이 피어났다. 마을 사람들은 이 꽃을 할머니의 넋이라 여겨 ‘할미꽃’이라 불렀다. 다른 의미로는 열매의 전체 모양이 할머니의 머리카락과 비슷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며, 그런 이유 때문인지 한방에서는 ‘백두옹(白頭翁)’이라고 한다.



애기똥풀

줄기를 꺽으면 애기똥 처럼 노란 액체가 나온단다.




안민관



홍익관



도의회




의회에서




검무산을 2번 등반한 승환!!!

이뿐 아줌씨랑 도청 마당에서 찐하게 허깅 했잔여?


쓰리 林임의 찬란한 비화?????



예천 용궁으로 옮겨


막걸리랑, 쇠주랑

순대랑, 오징어 불고기라으 닭발이랑...





여개서

이카마 안됍니다!!!



안내해준 병환 처장님. 옥성 국장님

너무 고마웠고

정을 듬뿍 느낀 하루였다.



도화앵화 꽃피는 봄

마치

무릉도원을 거닐듯 댕기 온 길


아~

호접몽!

호접몽!!

호접몽!!!


2016.04.16


출처 : 1828 산정무한
글쓴이 : 임병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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