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그때는 충무이었지? 경상도 촌놈이 기차와 여객선을 처음 경험한 중학교 수학여행 그게 첫인연이었다. 그후 2000년 초반 3년을 창원에서 근무하면서 거제 출장길에 틈만 나면 돌아 다녔었다. 그즈음 미륵산에 미륵이 아니라 케블카가 하생한다는 소식에 울분을 토하며 반대운동에 동참한 후 다시는 통영을 찾지 않기로 했었다. 하지만 마눌, 가족들에 등쌀에 밀려 2011년 2박 3일 통영에 머문 후 오늘 다시 찾았다. 문화동 벅수 중학 동기 미륵산 산행과 도다리쑥국 하지만 산행과 중앙시장 투어보다는 근자에 인지한 세병관의 석인상과 시립박물관의 석불좌상을 뵙기 위한 봄 나들이 길이었다. 미륵산 케이블카 하생 후 민초들의 삶이 풍성해졌다는 이야기가 해풍에 실려오기도 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윤이상과 보리밭 동백림, 청마와 이영도, 유치진, 전혁림, 박경리, 김상옥, 김춘수 그들을 기억하게하는 통영땅이어서 나이를 잊고 설레이게 하는 길이었다.
보수중인 세병관
기삽석통旗揷石桶 (먼 단어가 이렇게 어렵노?) 영기와 장군기를 세우기 위해 깃대를 고정하는 커다란 두 개의 돌기둥으로 정조 10년(1786년)제142대 류진항 통제사가 세운 2기중의 1기이다.
강희40년 신사 유공성추시립康熙40年辛巳柳公星樞始立 통영지. 통영군지에 실려있는 숙종 27년(1701년) 제 77대 류성추 통제사가 조성한 석인상으로 2012년 세병관 보수 공사중에 발견되었다고 한다. 5기가 발견되었다고 하지만 1기는 훼손이 심한듯 전시되어 있지 않다. 오방 신앙의 하나로 중앙을 수호하는 황색기가 꽃힌 깃발을 든 석인상이었을 것이다. 세병관 석인상은 우리 민족의 방위 신앙의 하나로 조성된 군영 액막이 벅수로 생각된다. 이러한 군영 액막이 석인상은 여수 진남관과, 주변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다.
남 주작 석인상 가슴부분의 홈은 기를 끼운 흔적으로 보이며 실제로 기를 끼워 복원하였다
서 백호
동 청룡
북 현무 이분은 제주 돌하르방을 닯았다.
일렬로 줄세우기 보다는 각각의 방위에 세우면 어떨까? 2016.03.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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