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장흥군

장흥...천관산 탑산사.의상암지 석등

임병기(선과) 2015. 4. 21.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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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경남 남해로부터 연서가 날아 들었다.

남해 출신 고두현 시인과 함께 하는 문학기행 초청장이었다.

그곳에서

장흥 천관산 문학공원을 접했고, 장흥 출신 김영남 시인을 만나 막걸리 잔을 기울였었다.

 

오늘 문학공원을 경유하여 천관산 탑산사를 들렸다.

하지만 월출산 등반 일정 때문에 문학공원을 세세히 살펴보지 못한 아쉬움을 문학기행 저녁 남해 물건리 바닷가에서 김영남 시인이 직접 낭송했던 시를 떠올려 본다.

 

푸른 밤의 여로...김영남

 

-강진에서 마량까지-

 

 둥글다는 건 슬픈 거야.슬퍼서 둥글어지기도 하지만 저 보름달을 한번 품어보아라. 품고서 가을 한가운데 서 봐라.

 

 푸른 밤을 푸르게 가야 한다는 건 또 얼마나 슬픈 거고 내가 나를 아름 답게 잠재워야 하는 모습이냐. 그동안 난 이런 밤의 옥수수 잎도, 옥수수 잎에 붙어 우는 한 마리의 풀벌레도 되지 못했구나. 여기에서 나는 어머니를 매단 저 둥근 사상과 함께 강진의 밤을 걷는다, 강진을 떠나 칠량을 거쳐 코스모스와 만조의 밤안개를 데리고 걷는다, '무진기행'은 칠량의 전망대에 맡겨두고 내 부질없는 詩와 담뱃불만 데리고 걷는다. 걷다가 도요지 대구에서 추억의 손을 꺼내 보름달 같은 청자항아릴 하나 빚어 누구의 뜨락에 놓고 난 박처럼 푸른 눈을 욕심껏 떠본다.

 

  구두가 미리 알고 걸음을 멈추는 곳, 여긴 푸른 밤의 끝인 마량이야. 이 곳에 이르니 그리움이 죽고 달도 반쪽으로 죽는구나. 포구는 역시 슬픈 반달이야. 그러나 정말 둥근 것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출발하는 거고 내 고향도 바로 여기 부근이야. 

 

탑산사 주차장

 

답사 매니아들에게는 입문부터 익히 알려진 탑산사와 의상암지 석등이다.

하지만 접근성이 용이한 산너머 천관사에 비해 문학공원을 거쳐  3~40여분 등산해야하는 의상암지를 답사 동선에 넣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역시 그러하였으며 멀리 산아래서 바라보는 것으로 자위해야했었다.

 

 

남도 산사는 절로 가는 길도 색다르다. 영남지방의 소나무 길과 달리 초입부터 동백나무 군락이 시절을 희롱하고 있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릴 수 없겠지만 봄을 놓기 싫은 것이리.

어쩌랴

보내야만 동박새가 다시 돌아올터인데.

 

 

이른 아침

산길 위에 누운 붉은 입술의 그녀

.

.

.

내게도 아직 감성이 남아 있구나.

 

 

낙화...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하고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을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반야굴

절집이 가까운가 보다

 

 

탑산사 석축 

아침볕을 가득 안고 순례객을 포옹한다.

 

 

요사로 안내하여 따뜻한 차를 건내신 스님에게서 입수한 탑산사 유래이다.

탑산사는 호남 5대명산(지리.내장.월출.변산.천관산)으로 알려진 천관사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천관산은 "지제" "천풍" "불두 우두" 산이라고 부른다. 이는 화엄경에 일찍이 천관보살이 주석하는 산으로 천관산이 알려져 왔기 때문이다.

 

천관산에 자리한 탑산사는 800년(애장왕 1년) 통영화상이 창건하였다고 전하나,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되었다는 384년(고구려 소수림왕 2년)보다 무려 5백년 앞서 세웠다는 인도의 아육왕(BC268~BC263)탑이 탑산사 좌측편에 현종하여 불교의 남방도래설을 뒷받침하는 사찰이다.

 

탑산사는 우리나라에 화엄경 80권이 들어온 경로로 알려졌으며, 의상대사가 머물렀던 사찰이며, 천관보살신앙의 주도적 역활을 했던 사찰이며, 장보고와 신문왕(우징)에 관한 역사적 사실이 숨어 있는 곳이다. 현재의 사찰은 1745년 중건 이후 잦은 왜구의 침입과 한국동란의 병화를 입고 오늘에 이른다.

 

 

내부 수리중인 대웅전

삼존불을 비롯 나한상과 천관보살상은 임시로 요사에 모시고 있다.

 

장흥의 님께서

천관사 부처님 전에 올려 달라는 목련차를 스님께 전해드렸더니 요사로 안내하시어 귀한 님을 뵙게해 주셨다.

 

 

금동여래 입상

탑산사지 금동여래입상은 대좌부분이 떨어져나갔지만 불신과 대좌가 동일한 금속성분으로 확인되었다. 7세기 작품으로 추정되며 계란형 얼굴, 사발형 육계, 은행알눈 눈두덩, 길게 내려온 U자형 대의주름으로 수인은 시무외인, 여원인이다.금동불상 대좌 하단의 평면이 7각인 점도 주목된다

 

 

 

천관 보살상

 

 

천관보살상조성기

 

스님께서는

동문선(東文選)의 '천관산기(天冠山記)'와 보물 제523호로 지정된 석보상절을 보여주시며 천관사는 한국 불교와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들어온 곳의 최초 기록이라고 설명하셨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남해안으로 들어왔다는 구전설화는 많으나 명확한 근거와 문헌 기록을 확보하지 못하였다. 이번 한국기록원이 밝힌 '석보상절'의 문헌적 기록에 의하면 "아육왕(阿育王)은 아도세왕이 세운 탑에 있는 사리를 다 내어 금, 은, 유리, 파려로 만든 통과 병 8만4천개에 담아 8만4천 탑을 세우니 중국에는 19개이고 우리나라에는 천관산과 강원도 금강산에 이 탑이 있어 영험한 일이 있었다"라는 내용과 "아육왕이 세운 것이 려왕 마흔여섯째 해인 무진년(BC833년/약2천1백여년 전)이다"를 근거로 우리나라에 불교와 부처님사리의 전래시기를 추정하였다 한다."..2007년 7월18일 연합뉴스


 

그밖에도 탑산사의 현존하는 유물로는  보물 88호인 대흥사 박물관 소장 탑산사동종, 금동사리탑,광주박물관의 고려시대 반야심경 경판이 전해온다.

 

 

의상암지는 대웅전 좌측 길을 따라 잠시 오르면 닿는다.

 

 

아육왕탑

저 탑아래쪽에 의상암지가 자리하고 있다.

 

 

 

 

의상암지에 관한 정확한 내력은 전하지 않는다. 존재 위백규선생의 저서 지제지支堤誌(천관산의 다른 이름 지제산의 지리서)에 실린 선생의 아들 위도급(1745~1851)선생의 시 '탑암'이 전해온다.

 

아름다운 담장 끊어진 골자기 한없이 희기만 하네

물욕밖의 신선 산 곳  기세가 크기만 하다

푸른 전각의 바람 소리 옛이야기 전해오는데

바다에 뜬 돛단배 처마곁으로 다가오는듯 하네

 

 

의상암지

 

 

의상암지 석등 현재 대좌 일부와 화사석, 상륜이이 결실되었다.아래받침돌, 간주석, 지붕돌은 8각이며, 아래받침돌에는 복련을 표현했다.  고려 전기 작품으로 전한다.

 

 

 

 

 

 

떠남이 아쉽지만

나에게는 머무름도  사치려니

 

아~~~

 

 

2015.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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