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마을회관 앞에 주차 후에 골목길을 걸어 갔었다. 고샅 담장 너머에는 주렁주렁 오디가 달려있었고, 석탑 주변은 개망초가 지천이었다. 지금은 녹슨 철제 울타리도 석재로 바뀌었고 주변 정리가 되었다.
성황리 그 옛날에는 성황재 도는 동구밖 성황당에서 유래했을 지명이다. 조산과 당산목도 분명 함께 일가를 이루었을텐데.
탑골 성황당을 모시기전 고려시대에는 절집 터 절집 탑으로 인해 탑골로 불리었을 것이다.
지대석위에 하기단은 면석에는 양우주 탱주를 두고 통돌로 조성했다. 1면이 결실된 상기단 면석에는 탱주 하나 양우주를 모각하고 상부에 갑석을 얹혔다. 초층탑신괴임은 2단,탑신에는 양우주가 보이며, 3층 옥개석과 상륜은 결실되었다. 옥개석 물매는 급하며 층급은 3단, 고려 중기 석탑으로 보인다.
2015.02.14 ===================================================================================================
아래의 글은 2016년 다녀온 글이다.
예전 풍수지리서에서 읽은 이야기로는 의령은 지세가 솥단지(鼎) 형국이라 부자가 많이 배출되었으니 삼성 그룹 이병철, 효성그룹 조석래, 엘지(럭키,금성 그룹) 구회장 일가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그런 갑부에 대해서 관심 없다는 듯 성황리 초입 정자나무 아래 촌로들은 마을을 찾은 객에게 소나무와 석탑 위치를 친절하게 일러주셨다.
성황리 소나무
멀리서 잡은 나의 작품이다 ㅋ
천연기념물 359호인 성황리 소나무다.쉬고 싶고 기대고픈 우리의 나무 소나무 멋지지 않은가? 문화재청 자료를 옮겨온다.
"의령 성황리의 소나무는 마을 뒷산의 경사면에서 자라고 있으며, 나무의 나이는 300년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높이 13.5m, 둘레 4.8m의 크기로 1∼2.7m 높이에서 가지가 4개로 갈라져 옆으로 넓게 퍼졌으나, 그 가운데 하나는 죽어버렸다. 의령 성황리의 소나무에 대한 유래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북쪽에는 묘소가 있고, 마을 앞 산기슭에는 의령 남씨의 사당이 있어 이와 어떤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소나무와 30m 정도 떨어져 있는 다른 소나무의 가지가 맞닿으면 통일이 된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의령 성황리의 소나무는 마을을 지켜주고 보호하는 오래된 서낭나무로서 민속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으며 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도 크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성황리 삼층탑
마을 안길에서 방황하는 우리에게 촌부는 멀리 들길을 가르킨다. 마을을 벗어나 오디가 지천으로 달려 있는 뽕나무 아래서 유년의 추억에 젖어들며 입 가득 미각을 어쩌면 잊혀져가는 고향 맛을 듬뿍 느끼며 개망초가 널부르진 밭가운데에 자리한 삼층탑에 도착했다. 탑골 마을에 위치한 탑으로 2기단의 삼층 탑이다. 3층 몸돌과 상륜은 멸실되었다. 상기단에는 감실처럼 보이는 홈이 있으나 면석이 멸실된 모습이다.
탐방후 돌아오는 길 밭에서 김을 매던 할머님이 말을 걸어 오셨다. -어디서 오셨오. -.대구서 왔습니다. 할머니 가끔 사람들 찾아오나요? -.우짜다 한 번씩 옵니다. 1000년도 넘은 탑이니 자주오면 복 받을 겁니다. 정곡초교 / 중교리 석불좌상
완전한 형태일까? 중대석과 복련이 고운 상대석이 사라졌다고 생각되는 것은 왜인지...
동행한 님이 이마을 출신인 이병철 회장 모습과 닮게 복원되었다고 지적하시지만 높은 담 닫힌 대문 호암 이병철 생가터 보다 수인위에 공양한(?) 초교생들의 10원짜리 동전이 더욱 빛이 발하는 듯한 감정을 지울 수 없었다. 거신광배
덩쿨무늬와 불꽃무늬가 새겨진 주형 거신광배에는 화불도 보인다. 분실된 석불의 대좌
이렇게 두 분이 자리하고 계셨는데, 하루빨리 긴 만행길을 접으시길 기원한다 ()()()
2006.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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