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논산시

논산...고운사지 부도

임병기(선과) 2014. 11. 7.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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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시 벌곡면 양산리  원불교 삼동원 입구에서 우측 길을 따라 진행하면 된다. 차단기가 있지만 운좋게도 공사차량 때문에 개방되어 있었다. 진입 도중에 자전거를 탄 젊은 분이 차를 세우고 방문 목적을 확인 후 정확히 부도 위치를 알려주었다. 신도비 앞에 주차하면 된다.

 

 

 

 

 

문경공 신독재 김집 신도비.

 

김집金集(선조 7년(1574)∼효종 7년(1656),자는 사강士剛, 호는 신독재愼獨齋, 시호는 문경文敬의  본관은 광산이며, 증조는 지례현감 김호, 조부는 대사헌 김계휘, 아버지는 형조참판 사계 김장생, 어머니는 첨지중추부사 조대건의 딸 창녕조씨, 배위는 문성공 율곡 이이의 따님 덕수이씨이다.

 

8살 때 송상현의 문하에서 글을 배웠으나 학통은 가학을 이어받았고, 18세 때 진사에 합격하였으나, 문장학을 좋아하지 않았고 성현의 학문에 전심하였다.  1610년(광해군 2년)에 헌릉참봉에 제수되었으나, 광해군의 문란한 정치로 은퇴하였다가 인조반정 후 부여현감을 거쳐 임피현령을 지내고, 동부승지·우부승지·공조참판·예조참판·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76세 때는 대임을 맡겨달라는 김상헌의 특청으로 이조판서에 임명되었고, 이 때 효종과 함께 북벌을 계획하기도 하였다. 80세에 좌참찬을 거쳐 81세에는 판중추부사에 임명되었으나, 임금의 각별한 배려에도 불구하고 늘 초야에 묻혀 도를 즐기고, 아버지의 학문을 이어받으려고 노력하였다. 위로 이이의 학문을 받아 예학을 일으킨 김장생을 이어받아, 그 학문을 송시열에게 전해주어 기호학파를 형성, 이황을 이어받은 영남학파와 더불어 조선 유학계의 쌍벽을 이루었다. 고종 20년(1883)에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문묘와 효종묘에 배향되었다.   연산의 돈암서원, 임피의 봉암서원, 옥천의 창주서원, 봉산의 문정서원, 부여의 부산서원, 광주의 월봉서원 등에 향사되었다.   저서로는 신독재문집.의례문해속 등이 있다.

 

묘비

 

1663년 이유태가 짓고 윤선거가 썼다.

 

 

김집 묘역. 아래에는 부인인 이율곡의 딸의 묘역이 자리하고 있다.

 

 

조선 중기 문신 김계휘가 1557년(명종 12) 윤원형에 의해 삭탈관직, 문외 출송을 당하자 연산 지역으로 퇴거해 와서 양산리 고운사 경내를 빌려 서재로 사용하고, 편액을 정회당이라 하였다. 그 후 효종이 고운사를 김집에게 사패지로 하사하자 현재의 자리로 옮겨 절을 개창하였다. 원래 고운사가 있던 곳은 구고운사지라하고, 수락리의 절 터는 고운사지로 전한다.사지에는 와편이 발견되며 부도 1기가 유존한다.

 

 

석종형 부도로 방형기단 위에 탑신을 올리고 상륜에는 보주를 표현하였다. 탑신에 당호는 없으며 특별한 조식도 없다. 주변에 여러기의 부도가 있었으나 외부로 반출되었다고 한다.

 

 

2014.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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